4월까지 명동 신세계백화점 외국인 매출 12배, 롯데백화점은 8배 늘어나
명동 상권 월 평균 결제액,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소규모 상가 공실률, 42.1%에서 21.5%까지 떨어져
명동에서 23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외국인 관광객과 재택근무가 끝난 명동 직장인들이 돌아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4월 24일과 27일 찾은 명동은 ‘한류 상권’의 명성을 완벽하게 되찾은 듯 보였다. 명동 메인 거리인 중앙로 상권에는 화려하게 불을 켠 노점상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중앙로와 골목 하나를 두고 있는 3번가 상권까지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였다.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백도 무거워졌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배 늘었다. 롯데백화점 역시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이 8.3배 증가했다. 올리브영은 3월 1일부터 31일까지 명동 내 5개 매장 매출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9배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영미권·동남아·일본인 관광객에 이어 중국인 관광객까지 명동을 찾으며 상권이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 고객은 주름 개선 기능성 제품, 영미권 고객은 선크림, 일본 고객은 치아 미백제를 많이 찾는다”며 “기존에는 마스크팩 일색이던 외국인 고객의 K-뷰티 장바구니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동의 부활은 숫자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빅 데이터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명동 상권의 평균 월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2019년 명동 상권을 방문한 이용객들의 월평균 지출액은 379억원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에는 281억원으로 약 25% 감소했는데 2021부터 차츰 회복세를 보이더니 올해 1분기에는 378억원을 찍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회복세가 나타난 것은 지난해 5월부터였다. 2022년 2월까지만 해도 276억원이었던 명동 상권의 결제 금액은 5월 340억원으로 늘었다. 4월 거리 두기 해제 효과가 5월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데이터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병원과 식당·카페였다. 올해 2월 명동에서 결제된 금액 중 38.7%가 음식 업종이었고 38.9%가 의료 업종이었다. 의료 업종 가운데는 피부과와 치과의 매출이 많았다. 절반 가까이 공실이던 상권은 소규모 상권부터 채워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명동 지역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42.1%였다. 거리를 걷다 보면 상가 10개 중 4개에 ‘임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1년이 지난 올해 1분기에 공실률은 21.5%까지 떨어졌다. 모든 건물에 불이 켜진 것은 아니다.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 40.9%에서 올해 1분기 37.6%로 여전히 회복세가 더뎠다. 실제로 명동 상권의 메인거리인 중앙거리에서는 공실인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골목 하나를 두고 있는 명동 2가로만 빠져도 1층 공실이 여전히 눈에 띄게 많았다. 3층짜리 상가 전체가 공실인 곳도 있었다.
명동 M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임대료가 많이 낮아져 메인 거리부터 임대 계약이 늘었다”며 “아직 코로나19 사태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명동4길(명동2가)까지 채워지고 나면 임대료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명동 지역은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으로 공실이 늘면서 임대료가 2019년 대비 절반 수준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9년 명동 상권 1층 상가의 임대료는 3.3㎡(1평)당 156만9300원에서 지난해 66만4000원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를 자랑했지만 지난해에는 강남역 9·10번 출입구 상권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까지 임대료가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대기업 매장들도 버텨내지 못했었다. H&M 국내 1호점인 명동눈스퀘어점이 문을 닫았고 4층 규모의 초대형 매장인 유니클로 명동중앙점도 10년 만에 폐점했다. 에잇세컨즈 명동본점·에이랜드·후아유 등 인근 매장들도 2020년부터 2021년 연이어 셔터를 내렸다.
로드숍 문 닫고 ‘블루보틀’, ‘아디다스’ 들어서 명동의 부활을 먼저 눈치챈 곳은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2020년 하반기 명동 애플스토어(애플스토어 3호점)가 공사에 들어가 지난해 문을 열었고 힙한 상권에만 들어선다는 블루보틀 역시 지난해 12월 명동에 아홉째 매장을 냈다. 올해 1월에는 아디다스가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명동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웠다. 아이다스코리아에 따르면 이 매장에는 하루 평균 2000명, 주말에는 4000명이 방문하고 있다. 그중 외국인의 비율이 70%다.
코로나19 사태로 임대료는 낮아지고 외국인이 돌아오는 틈을 놓치지 않고 명동 상권을 채운 것이다. 2019년부터 명동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정윤서(32)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외국인들에게 ‘명동 필수 코스’였던 이니스프리 카페가 작년 초 문을 닫으면서 명동의 쇠락을 체감했는데 1년 만에 다시 블루보틀과 아디다스처럼 더 크고 힙한 매장들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명동의 부활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이 명동 상권에 다시 주목한 이유는 명동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아디다스코리아 관계자는 “명동은 서울의 대표 관광 쇼핑지이자 국내 소비자와 해외 관광객 모두에게 익숙한 명소”라며 “브랜드 플래그십 레벨의 매장을 연 것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명동이 최초”라고 말했다.
임대료 조정, 돌아온 외국인과 함께 극적으로 부활한 명동 상권의 향후 과제는 콘텐츠다. 전문가들은 ‘K-뷰티 1번가’의 역할을 하던 명동이 이제 화장품 로드숍들의 몰락과 함께 정체성이 흐려진 만큼 다시 다양한 콘텐츠를 끌어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쇼핑 상권의 명성을 이어 가려면 다양한 패션 브랜드 입점도 필수다.
상권 전문가인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대형 상권의 킬러 콘텐츠는 단연 음식”이라며 “자연 발생적으로 임대료가 낮아지고 유동 인구가 바닥을 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 명동이 명성을 이어 가고 오래 머무르는 상권이 되려면 제대로 된 식당과 카페 등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획자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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