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4월 28일 강남역 먹자 거리 모습. 사진=한경비즈니스
4월 28일 강남역 먹자 거리 모습. 사진=한경비즈니스
강남역은 한국 상권의 ‘오늘’이다. 수십년간 잘 깔려진 인프라는 사람들이 강남을 찾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강남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이런 유·무형의 인프라는 회복의 에너지가 됐다. 서울 주요 상권 가운데 1년 전 거리 두기 해제 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숙제도 있다. ‘부활’을 이끌 성장 엔진이 없다. 인스타·유튜브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활용해 맛집을 찾아다니는 20대 젊은이들은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강남역 대로변 상가는 고금리 속 높은 월세에 ‘임대 문의’ 딱지가 붙은 곳이 태반이다. 퇴근길 발 디딜 틈이 없던 강남역 10번·11번 출입구는 예전처럼 복잡하지 않다. 강남역을 오늘의 상권으로 부르는 이유다. 기로에 선 강남역 상권을 돌아봤다.
◆회복 신호탄, 미용·의료 관광 러시
지난 4월 28일 금요일 퇴근 시간. 연휴를 앞둔 강남역 출입구 앞에는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일부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 잡았다.

줄이 길어지기 전 백반집을 찾았다. 사장 A 씨는 1년 사이 한 달 매출이 1000만원 이상 늘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술집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때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점심 밥장사를 시작했다”며 “재택근무도 풀리고 작년부터 입소문이 나며 이젠 밥장사만 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상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식점과 카페는 북적이고 ‘내 가게’를 열기 위해 강남역을 방문하는 사람도 늘었다. 부동산 중개인 B 씨는 “66㎡(20평) 이하의 소형 상가는 매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22%였던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올해 0%를 기록했다. 다 들어찼다는 얘기다.

상권의 회복세는 매출에서도 볼 수 있다. 빅 데이터 전문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강남역 상권의 월평균 매출은 2750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5%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월 2210억원) 수준을 뛰어넘었다.

병원과 식당·카페가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식당·카페 등 음식점 매출(약 600억원)은 작년 대비 88% 증가했다. 의료 매출은 올해 1분기 월평균 매출의 68%를 차지했다. 하늘길이 풀리며 미용·의료 쇼핑을 위해 외국인이 강남을 찾은 영향이다.

김유리 나이스지니데이타 연구원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매출이 크게 늘었다. 성형외과의 작년 2월 매출액이 약 285억원이었다면 올해 2월은 약 459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며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성형외과의 이익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인스타그래머블은 글쎄
강남역은 주거+오피스+번화가의 성격을 모두 갖춘 복합 상권이다. 4번·5번 출입구에는 대규모 오피스 사무지구가 10번·11번 출입구부터 신논현역까지는 대형 학원·옷가게·병원·술집·음식점 등 다양한 업종이 들어서 있다. 주거 인구도 상당하다. 소상공인 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서초롯데캐슬·푸르지오·래미안 등 브랜드 아파트를 비롯해 주상 복합 아파트와 빌라 등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4만 명 정도 된다.

교통 인프라도 좋다. 서울과 경기도를 연결하는 버스들이 이곳을 지나가며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신분당선의 환승역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 해 동안 승차 인원(지하철 2호선)은 4000만 명 정도 됐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3월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하차 인원(승차 인원+하차 인원)은 약 4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하철 2호선만 따졌는데도 서울시 인구(약 942만 명)의 절반이 강남역을 오간 셈이다.

다만 유동 인구는 예년만큼 회복하지 못했다. 올해 1분기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은 약 15만 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약 20만 명)과 비교하면 조금 덜 방문한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만들기 쉽지 않아 20대 젊은층의 유입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중개인 C 씨는 “서순라길·용리단길 등 타 지역에 ‘거리 상권’이 확장되면서 강남역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이 생긴 반면 강남역에는 SNS에 업로드하기 좋은 트렌디한 감성의 음식점이나 팝업스토어 등 콘텐츠가 없다”고 지적했다.

20대 직장인 D 씨는 “교통이 불편해도 인스타에 올라오거나 유튜브에 소개된 밥집을 주로 찾다 보니 강남역에 안 간 지 오래됐다. 놀러간다면 신논현역 쪽으로 간다”며 “라운지바(클럽)도 강남보다는 압구정로데오를 간다”고 말했다.

실제 20대의 소비액은 적었다. 나이스지니데이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강남역 상권 이용객의 월평균 비율은 20대 남성이 5%, 20대 여성이 11%로 조사됐다. 그 대신 소비 여력이 있는 중년층이 지갑을 열었다. 30대와 50대가 각각 전체의 26%씩을 지출했고 40대가 22%를 소비했다.

점심과 저녁 장사에 소비가 몰렸고 2차와 심야 술집은 발길이 뜸했다. 올해 3월 기준 강남역 상권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대 매출은 1%에 그쳤다. 점심(28.3%)과 저녁(30%)의 시간대에 절반이 넘는 손님이 방문했다.

일각에선 강남역은 ‘광고 상권’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개인 B 씨는 “강남역이 교통의 요지인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도 광고를 위해 입점한 업체들이 꽤 된다”며 “길 막히는 것도 광고에 도움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강남역 상권 비율은 개인보다 프랜차이즈가 높은데, 대기업뿐만 아니라 서가앤쿡·미즈컨테이너처럼 지방에서 메뉴 개발해 프랜차이즈 사업하려고 오는 사람도 많다”면서 “광역버스가 지나가고 학원·병원 등이 몰려 있어 잘 되면 소문도 빠르다. ‘줄 서 먹는다’는 소문만 나면 동일 브랜드를 논현·신사·교대 등으로 추가 출점하기 좋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임대료에 대기업 입점도 주춤
하지만 강남역 대로변은 대기업도 진출하기 쉽지 않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다르게 대로변 건물들은 휑한 모습이다. 최근 곳곳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지만 가게가 입점하는 대신 건물 유리문에 ‘임대 문의’라는 카드만 걸려 있다. 지오다노·카카오프랜드·러쉬 등 오랜 기간 강남역 대로변을 지킨 터줏대감도 있지만 에잇세컨즈 등 일부 브랜드는 규모를 줄여 인근 건물로 이동했다. 코로나19 사태와 고금리의 파도가 한국을 덮쳤지만 강남역 상권의 임대료는 오히려 더 뛰었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강남역 9·10번 출입구 대로변 임대료가 가장 크게 뛰었다. 2019년 3.3㎡당 54만원이던 임대료는 2022년 110만원이 됐다. 같은 기간 11번 출입구 역시 33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랐다. 강남역 대로변 상가의 평수가 100~300평인 점을 고려하면 한 달 임대료가 최대 3억3000만원 드는 셈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그동안 강남 대로변 건물 1층엔 대기업이 운영하는 옷가게와 화장품 가게가, 2층은 성형외과 등 병원이 입점하는 형태였는데 경기가 나빠지며 대기업이 입점을 꺼린다”면서 “올해들어 임대료는 더 올랐다. 대로변 상가의 임대료는 3.3㎡당 200~400만원으로 60평짜리 상가의 한 달 월세가 1억이 넘는다”고 귀뜸했다.

이와 비례해 공실률은 수직 상승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남대로의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2019년 1분기 3.8%에서 2023년 1분기 11.6%로 뛰었다.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역은 자본력 있는 건물주가 대부분이어서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조건에 맞는 세입자를 기다리는 ‘배짱’ 장사를 한다. 건물주로서도 임대료를 내리면 괜히 건물 값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먹자 골목 상권도 월세가 올라가면서 4억~5억원 하던 권리금은 2억원으로 떨어졌고 무권리도 많다”며 “임대료가 오르고 랜드마크 격의 콘텐츠가 없다면 강남 상권의 업그레이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남역 11번 출구 대로변에 위치한 1층 상가에 ‘임대 문의’ 카드가 붙여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강남역 11번 출구 대로변에 위치한 1층 상가에 ‘임대 문의’ 카드가 붙여있다. 사진=한경비즈니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