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5개 입점할 수 있는 상가 중 4개 공실
상권 다양성 발목 잡던 업종제한 지난 4월15일 폐지
메인거리 임대료는 여전히 평당 25만원선

이대 정문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이대 정문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이대 앞에서 관광 버스를 본 게 거의 4년 만이네요.”

4월 25일 찾은 이화여대 앞에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이를 본 한 상인은 학교가 개강하면서 이대 앞에 활기가 돌지만 공실이 채워지려면 아직 멀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가는 기간. 이대앞은 수업과 시험이 끝난 학생들로 붐볐지만 거리의 활기가 상가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화여대 정문에서 나온 학생들 대부분이 곧장 역으로 향했다. 역부터 정문, 신촌기차역까지 이어지는 메인 상권은 ‘임대 문의’ 스티커가 붙은 공실이 가득했다.

신촌기차역에서 이대 정문을 지나 이화여대역까지 이어지는 메인 거리도 텅 비었다. 골목을 제외하고 메인 거리인 ‘이화여대길’ 1층 공실만 세었을 때 빈 점포가 35개였다. 이대 정문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1층부터 3층까지 통째로 비어 있었고 미용실·카페·옷가게 등 점포 5개가 입점해 있던 한 건물은 수선집 1개를 빼고는 나머지가 모두 문을 닫았다. 한때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던 라네즈·클리오 등 K-뷰티 매장도 모두 자리를 뺐다.
지난 25일 이화여대 앞에 관광버스가 지나가고 있다./김영은 기자
지난 25일 이화여대 앞에 관광버스가 지나가고 있다./김영은 기자
사드로 시작된 공실, 7년째 회복 안돼이대 상권이 공실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또 한 번 이대 상권을 덮쳤다.

여전히 높은 임대료도 상권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메인 거리인 이화여대길은 3.3㎡당 평균 임대료가 25만원 선이다. 33㎡(10평)짜리 가게의 한 달 임대료가 250만원인데 상권 자체가 죽어 선뜻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월세다. 골목 안쪽인 이화여대 3길, 5길, 7길은 3.3㎡당 평균 15만원이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메인 거리가 아닌 3, 5, 7길 임대인들은 한 달이나 두 달은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프리’를 내걸며 일단 공실을 채우려고 하는 의지가 크고 임대료를 협의할 의지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대 상권은 1980~1990년대 서울을 대표하는 패션·미용의 중심지였다. 스타벅스 등 커피 전문점과 미스터피자·미샤 등 유명 프랜차이즈점들이 1호점을 낼 정도였고 종로·명동과 함께 ‘강북 3대 상권’으로 꼽히던 시절도 있었다. 이랜드그룹도 여기에서 작은 가게로 출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홍대와 이태원 등 다른 상권들이 뜨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에 완공된 6612㎡(2000평)가 넘는 대형 쇼핑몰 신촌 민자 역사는 개장 후 입점률이 30%대에 그치면서 이대 상권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화여대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이화여대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한때 반짝 살아났던 때도 있었다. 이대 상권은 2014년부터 서서히 살아났다. 동력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특히 이대 정문의 배꽃(梨花) 문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중국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이때 이대 상권에는 한국의 유명 브랜드 화장품 로드숍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도 잠시, 2017년부터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면서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겼다.

쇼핑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패션과 화장품 중심이던 이대 상권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잘못된 행정도 이대 상권의 자생과 변화를 가로막았다. 서울시는 2013년 9월 ‘신촌지구 일대 지구단위계획 결정’을 통해 이대 일대에 대해 의류·잡화 소매점과 이·미용원을 권장 업종으로 정했다.

권장 업종인 의류와 잡화 소매점만 주차장 설치 기준을 완화하는 인센티브가 제공됐다. 바꿔 말하면 권장 용도로 사용하던 곳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주차장을 새로 만들어야 해야 했다. 사실상 입점할 수 있는 업종을 제한한 것이다.

시의 지구단위계획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무도 옷을 사러 이대에 가지 않았다. 이대 상권은 결국 특색 없는 상권으로 색깔을 잃어 갔고 이대 상권의 쇠락이 가속화됐다. 2018년부터 인근에 오피스텔이 대거 생기면서 품게 된 주거 수요 역시 흡수하지 못했다. 거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콘텐츠의 다양화를 행정이 제한한 것이다.
이화여대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이화여대 앞 상가가 텅 비어있다./김영은 기자
뒤늦게 업종 제한 풀어
“학생 돌아와도 텅텅”공실 천국 이대, 부활할 수 있을까[상권 리포트⑤]
올해 4월 15일 서대문구가 나서 이 같은 업종 제한을 풀면서 이대 상인들과 건물주들도 다시 기대감을 품고 있다. 메인 거리가 아닌 이화여대 3길, 5길, 7길 상인들과 임대인들도 상권 부흥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 이선용 이대357길 상인회장은 “업종 제한이 대폭 완화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유치하기 위해 서대문구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페스티벌·버스킹·1인 가구 커뮤니티 등 거주 인구와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구들이 이대 상권에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신촌상권은 회복세 접어들어전문가들 역시 이대 상권은 특히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이대 상권은 이미 침체기가 오래됐기 때문에 지자체가 나서 상권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견인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끼워 넣지 않으면 다른 상권처럼 자생적인 부활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이대 상권의 결제 금액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차츰 회복하고 있다. 2019년 이대 상권의 월평균 결제 금액은 89억원에서 2020년 65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2022년에는 81억원까지 회복했고 올해 1분기에는 86억원을 기록했다.

신촌 상권은 직장인들과 유동 인구, 대학생들의 꾸준한 수요가 이어지면서 회복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치로만 보면 상권 내 결제 금액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을 뛰어넘었다. 나이스지니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신촌 상권 내 월평균 결제 금액은 480억원이었는데 올해 1분기에는 500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과 2021년에는 385억원에 머물렀던 결제 금액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직까지 신촌 메인 거리도 공실이 꽤 있는 편이지만 1분기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생들의 수요가 특히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관광객들이 신촌까지 유입되면 곧 상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