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와 개념은 특정 방향의 해석을 유도하는 강력한 자력(磁力)을 지닌다. 그래서 벤저민 리 월프(Benjamin Lee Whorf)는 “언어는 단순히 경험을 전달하는 장치가 아니라 경험을 정의하는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온난화나 기후 위기라는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일상적 날씨 변화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전편에서 의료 사고, 의료 과실이라는 용어들이 어떤 편향과 위험성을 띠는지 진단해 봤다. 오늘은 그 연장으로 ‘부작용’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비뚤어진 지각의 틀 거리로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하버드 의과대학의 제리 아본 박사는 부작용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면서 의료 약물·치료·기기로 인한 피해를 심각한 위협이 아닌 무시해도 될 불편 정도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2007년). 같은 맥락에서 ‘정신과 약물의 위험과 혜택’의 저자 존 케인도 “약물의 유해한 효과를 부작용이라는 사소한 틀에 가둠으로써 위험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방심을 야기할 수 있다(2017년)”고 지적한다.
그래서 베일러 의과대학의 하딥 싱 박사는 부작용이라는 용어가 거의 ‘무해하다’는 말과 동일시돼 의료 과오나 시스템 장애 등 각종 피해 전체를 한꺼번에 덮는 거대한 덮개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부작용이란 개념의 오용과 남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피터 프로노보스트 박사는 이같이 말한다. “우리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의료 재해를 ‘부작용’ 또는 ‘합병증’이라고 부르면서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피해를 축소 표현한다. 그러면서 의료 행위자의 책임을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고가 재발되는 시스템을 영속화한다(2019년).”
이런 측면에서 ‘부작용’이란 용어는 환자의 심리적 조작을 유도하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볼 수 있다. ‘의료적 가스라이팅’은 의료 전문가가 환자의 증상이나 염려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거나 과도한 불안에 기인한 오판으로 인식시키는 의료적 심리 조작이다.
부작용이 아니라 유해 작용이다
여기에 한국만의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개념 자체가 잘못 설정됐고 사용법 또한 부적절한 것이다. 본래 부작용(副作用)은 부정적인 작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약물·의료 기기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부수적인, 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모든 효과를 지칭한다.
<표1>처럼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한 효과’ 역시 부작용의 범주에 속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부작용을 의약품 등의 정상 용량 용법에 따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모든 의도되지 않은 효과’라고 명백히 서술한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부작용은 <표1>의 B, 유해 작용(adverse event)에 해당한다. 유해 작용은 치료나 약물 투여, 기기 사용 시 발생하는 원하지 않는 해로운 효과다. 따라서 부작용이 아닌 유해 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약물 전문가 데이비드 그린스타인 박사는 이렇게 경고한다. “약물의 주요 효과와는 별개의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효과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많은 부작용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유해 작용이라는 용어가 약물의 위험한 영향을 전달하는 정확한 표현이다(2019년).”
이처럼 선명히 부각돼 할 유해성이 일본과 한국에서는 부작용이란 모호한 개념 뒤에 긴 시간 은폐돼 왔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슬그머니 새 용어를 제시했다. 이른바 ‘이상 사례’라는 어처구니없는 변종 어휘였다.
‘이상 사례’라는 난센스
식약처의 ‘이상 사례’ 설명은 이렇다. “의약품 등의 투여 사용 중 발생한 바람직하지 않고 의도되지 아니한 징후, 증상 또는 질병을 말하며 당해 의약품 등과 반드시 인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 서술 내용을 기준으로 삼으면 누가 봐도 유해 반응으로 명명됨이 지당하다. 그리고 유해 작용, 유해 사례, 유해 반응이란 용어들은 이미 다수 연구 논문에서 쓰여 왔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혼란을 야기한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상 사례’와 ‘약물 이상 반응’'이라는 더 혼란스러운 용어를 도입해 버린 것이다.
한국 식약처가 ‘이상 사례’라는 수상한 어휘를 제조 유통하는 사이 미국 FDA는 유해 작용 개념을 오히려 확장 정비했다. “의약품 또는 의료 기기 사용과 관련된 비우호적이고 원하지 않은 의학적 발생 또는 경험으로 부작용, 약물 상호 작용, 알레르기 반응 또는 의료 기기 오작동과 같이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광범위한 사건을 포함한다.”
‘아’다르고 ‘어’다르다. 왜 굳이 ‘유해’라는 단순하고 정확한 용어를 기피하고 소화제로 인한 더부룩함 같은 현상에나 쓰일 법한 부작용이란 용어, 또 안마기 스위치 오작동이나 연상시킬 법한 ‘이상 사례’라는 대체 용어를 쓸 이유가 없다.
과연 누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벌이는 어설픈 언어의 곡예인지, 이상 사례라는 교란성 용어 선택도 모자라 “당해 의약품 등과 반드시 인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사족(蛇足)은 또 누구를 위한 해명인 것인지….
축소형 개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
‘부작용’과 ‘이상 사례’ 같은 축소형 용어들과 정반대로 실제 발생하는 의료 유해 사례들의 규모와 피해 범위는 매우 심각하다. 일례로 미국 FDA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약 270만 명이 약물 유해 작용으로 입원해 연간 40조원아 넘는 손실을 봤다고 한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그중 100만 건 이상의 심각한 부상 또는 사망이 포함돼 있고 병원 입원 환자의 5~10%가 약물 유해 작용(ADR)을 경험한다(2018년)는 사실이다. 유럽도 상황은 유사하다. 유럽연합(EU)의 약물 유해 작용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250만 건 이상의 유해 사례가 보고됐다.
유해 작용은 약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인공심장판막·인공관절·인공 실리콘 등 인체 삽입형 의료 기기들은 ‘부작용’ 또는 ’이상 사례’ 같은 왜소한 용어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삽입형 의료 기기는 유해 작용 빈도 상위 품목에 해당한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전체 유해 사례 7337건 중 실리콘 인공 유방이 5502건으로 75%를 차지했고 2위는 인공 관절의 감염과 위치 이동으로 드러났다(메디게이트, 2018년 10월 29일).
이에 따라 의약품과 함께 의료 기기 유해 사례는 각국 정부의 주요 의료 기관이 체계적으로 수집해 오고 있다. <표2>는 주요 국가가 수집한 의료 기기 관련 유해 사례 보고 건수를 집계한 것이다. 통계의 유의미성을 고려해 코로나19 대유행 직전 혹은 초입 상황까지의 집계만 봤다. 놀랍게도 한국의 의료 기기 유해 사례는 2019년 기준 5만2000건으로 캐나다의 3.3배, 일본의 3.1배, 호주의 2.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더욱 경각심을 높이는 대목은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의료 기기 중대 유해 사례(사망과 장애 등 환자에게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전체 유해 사례 대비 62%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중 7193건(8.9%)은 사망 사례다.
의약품은 의료 기기 유해 사례보다 휠씬 많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평균 25만7000건을 기록한다. 이 중 장애나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 중대 유해 사례는 8만743건이고 그중 사망 사례는 8.9%에 해당하는 7193건에 달한다(메디칼업저버, 2020년 10월 12일).
이런 심각한 국민의 피해를 목도하고서도 ‘부작용’과 ‘이상 사례’라는 철부지 개념들을 계속 사용할 것인가. 식약처는 이런 면책성 용어로 의료 산업계의 이익 보호에만 전념할 것인가.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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