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가의 헨리 7세부터 윈저가의 찰스 3세까지
영국 다섯 왕조의 역사를 명화로 만나다

[서평]
찰스 3세가 이어 쓰게 된 영국 왕가의 역사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나카노 교코 지음 | 조사연 역 | 한경arte | 1만6000원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가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로 돌아왔다. 한 가문의 이름으로 오랜 기간 통치됐던 전작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나 프랑스의 부르봉가(‘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와 달리 이번 책에서는 영국의 튜더·스튜어트·하노버·작센코부르크고타·윈저 등 다섯 왕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다섯 가문의 성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의 가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문이 단절될 때마다 옅게나마 피가 섞인 방계로 왕위를 계승하며 현재의 윈저까지 명맥을 이어 왔다. 적어도 하노버가에서 현재(윈저)까지는 완전한 직계 혈통이고 가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5월 6일 찰스 3세가 대관식을 치르고 윈저 왕가의 다섯째 왕이 됐다. 모친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이후 70년 만의 대관식으로 찰스 3세는 ‘섬김 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맹세하며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영국 입헌군주제 원칙을 이었다. 튜더가의 헨리 7세부터 윈저가의 찰스 3세까지 변방의 이류 국가에 불과하던 섬나라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거쳐 현대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기까지 어떤 인물들이 있었을까.

이혼을 위해 나라의 종교를 바꾼 헨리 8세, 단 9일간 왕위에 올랐던 제인 그레이, 해적 여왕 엘리자베스 1세, 폭군에서 순교자가 된 찰스 1세,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 8세…. 이야기의 나라 영국답게 역대 영국 군주들은 각양각색의 개성을 자랑한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나 프랑스의 부르봉가 등 유럽의 강력한 왕가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동안 영국 왕실이 현재 진행형 역사를 쓸 수 있었던 이유로 저자는 유연성과 대범함을 꼽는다. 영국 왕가는 전통 의식이 강한 합스부르크나 부르봉이라면 절대 바꾸지 않았을 가문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또는 칠전팔기의 고난 끝에 그때그때의 군주와 의회가 협의해 변경하면서 시대를 극복해 왔다. 또한 동시대 유럽은 대부분 남자에게만 왕위를 물려주는 ‘살리카 법’을 적용했지만 영국은 왕녀의 왕위 계승이 가능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국은 ‘여왕의 시대에 번영한다’는 징크스가 있을만큼 걸출한 여왕들이 탄생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이 시대에 그림은 초상화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정치적 수단으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는 일찍부터 처녀왕으로 자신을 신격화하는 이미지 전략을 세워 많은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고 판화나 서적의 삽화, 지도, 트럼프 그림에도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군주로서의 위엄과 업적을 담은 ‘엘리자베스 1세의 아르마다 초상화’는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고 난 뒤 그린 그림이다.

당시 어느 누구도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무적 함대를 영국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한 상황에도 엘리자베스는 ‘나는 매우 약한 여자에 불과하지만 가슴에는 영국 왕의 마음을 품고 있다. 모두와 생사를 함께하겠다’는 격문을 띄워 영국 해군의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군주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림 중심에 있는 엘리자베스의 등 뒤에 걸린 두 장의 그림 중 왼쪽은 만 안쪽에서 대치하고 있는 영국과 에스파냐의 군대, 오른쪽에는 폭풍에 침몰하는 적군을 그린 그림이다. 중심의 엘리자베스는 세계의 바다가 다 내 것이라는 양 지구본 위에 손을 얹은 채 타고난 위엄과 당찬 기운으로 상대를 자연스럽게 압도한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그림을 보게 된다면 같은 그림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영국의 다섯 왕가를 대표하는 인물과 관련된 12점의 명화 및 그와 연관된 다수의 명화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명화 속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가 역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시대적 배경과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화는 절대 왕정 시대의 엄숙하고 화려한 왕실의 모습을 그려낸 유화 위주의 회화에서 윌리엄 호가스의 ‘남해 거품 사건’, 제임스 길레이의 ‘조지 3세 풍자화’와 같은 무너져가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풍자하는 작품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 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윤혜림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