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이재웅 창업자가 설립… 2014년 카카오 합병됐지만 시장점유율은 계속 내리막

[비즈니스 포커스]
2013년  5월 합병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세훈 전 다음커뮤케이션 대표(왼쪽)와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사진=연합뉴스)
2013년 5월 합병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세훈 전 다음커뮤케이션 대표(왼쪽)와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사진=연합뉴스)
‘다음카카오’에서 ‘다음’이 사라진 지 8년. 카카오가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렸다. 다음을 사내 독립 기업(CIC)으로 분리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달았다. 다음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점유율은 네이버에 밀린 지 오래지만 다음의 역사는 곧 한국 포털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이제는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다음의 역사를 짚어 봤다.

①‘즐거운 실험’의 시작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벤처기업 ‘다음’을 세운 것은 1995년 2월의 일이다. ‘다음’이 한국의 포털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한국 최초로 시작한 다음의 무료 웹메일 서비스 ‘한메일넷’ 덕분이었다. 이 한메일은 이제 막 뿌리 내리기 시작한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대표하는 ‘국민 메일’로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메일 계정이 ‘한메일’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1999년 가입자 300만 명을 돌파한 다음은 독일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에서 60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포털 ‘다음’에 2000년대는 전성기였다. 다음의 인터넷 카페는 당시 인터넷을 대표하는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공통된 목적을 가진 인터넷 카페의 개설로 다음에는 저절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다음은 뉴스 서비스와 웹툰 등 지금의 한국 포털이 서비스하는 모든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한국형 포털’로 진화했다. 한때 다음은 한국 시장에서 미국 검색 엔진인 ‘야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4년 다음은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며 ‘즐거운 실험’을 시작한다. 기업의 본사를 서울에 두는 게 당연한 시대에 경기권도 아닌 제주도로 옮기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구성원들이 직책이나 직급 대신 서로를 ‘~님’으로 부르는 다음의 기업 문화는 지금 한국의 스타트업을 생각나게 한다.
전환점 맞은 ‘토종 포털’… 다음의 28년사

②네이버에 밀리고 카카오 품에 안겨

하지만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짐은 2000년대 초 나타났다. 다음은 2002년 ‘온라인 우표제’를 도입하면서 e메일 유료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크게 이탈했다. 다음으로서는 뼈 아픈 실책이었다.

이후 네이버가 ‘지식인’ 등을 통해 2005년 검색 엔진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은 포털 서비스가 PC에서 모바일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검색 엔진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8년 이재용 창업자는 악화된 실적에 책임지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음이 택한 것은 카카오와의 인수·합병(M&A)이었다. 2014년 당시 37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톡은 다음과의 합병으로 포털과 연계해 비즈니스를 확장하려고 했다. 양 사는 사명을 ‘다음카카오’로 정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2015년, 다음카카오가 사명에서 다음을 떼어내고 ‘카카오’로 변경하면서 카카오 내에 있던 다음 DNA 지우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아직 카카오의 법적 본사는 제주도의 ‘구 다음 본사’지만 이제 제주 본사는 사회 공헌, 인재 육성 등에 더 치중하는 듯하다. 여기에 지난해 판교에 문을 연 카카오의 신사옥 ‘카카오아지트’에 주요 계열사들이 몰려 있어 사실상 이곳이 집결지 역할을 맡고 있다.

다음카카오의 사명에서 다음이 지워진 후 이재웅 창업자는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즐거운 실험이 일단락되고 회사 이름은 소멸되지만 그 문화, 그 DNA 그리고 그 문화와 DNA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벤처 역사의 한 장이 저무는 순간이었다.
2015년 제주시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카카오 본사에서 카카오 관계자들이 돌하르방의 CI를 'daum kakao'에서 'kakao'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5년 제주시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카카오 본사에서 카카오 관계자들이 돌하르방의 CI를 'daum kakao'에서 'kakao'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③포털 역할의 재정립…다음의 운명은

8년 후, 이재웅 창업자가 언급한 ‘즐거운 실험’의 지속 여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카카오는 다음을 CIC로 분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는 포털 다음 사업을 담당하는 CIC를 5월 15일 설립한다. 신속하고 독자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한 조직 체계를 확립해 다음 서비스만의 목표를 수립하고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규 서비스를 출시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기술 선도적 서비스로 거듭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결정은 5월 4일 카카오가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공교롭게도 1분기 실적에서 다음이 속한 포털 부문의 매출이 상당히 부진했다. 1분기 포털비즈의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5%,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836억원에 그쳤다.

물론 카카오의 설명대로 “경기 회복 지연에 따른 광고주들의 보수적인 마케팅 집행 기조와 계절적 비수기가 겹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CIC 분리 결정은 카카오가 결국 ‘다음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결과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실적 발표 날,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투자총괄대표가 “경쟁력이 낮다고 생각되는 사업을 일부 정리해 손익이 일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다음의 매각설이 재차 불거지기도 했다. 카카오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포털이 제공하는 정보는 지나친 광고로 인해 신뢰도를 잃었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이미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플랫폼에 검색을 의존한 지 오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구글’이 ‘오픈AI’를 장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빙’의 기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네이버 역시 이러한 조짐을 파악하고 하반기 출시될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에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모바일 시대가 포털에 새로운 판도를 열었듯이 앞으로는 AI가 포털의 생태계를 바꿔 갈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털 ‘다음’에는 지금이 체질 개선을 통해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