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 생활용품 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 경영난으로 파산 보호 신청
[케이스 스터디] 미국 홈 퍼니싱계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주방·욕실 용품 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BB&B는 2021년 밈 주식(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탄 주식)의 대표 종목이기도 했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등장 이후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며 뒤처진 탓이다.재정난이 심화하자 1000개 이상의 매장을 폐쇄하고 직원을 감원하는 등 구조 조정에 나섰지만 수익성 개선에 실패했다. 2021년 뒤늦게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하고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소비자들이 외면하며 경영난에 빠졌다. BB&B, 연방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BB&B는 최근 미국 뉴저지 주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파산 보호 신청에 따라 당초 5월 9일 개최될 예정이던 특별 주주 총회도 취소됐다.
BB&B는 성명서를 통해 “현재 확보한 2억4000만 달러의 자금으로 영업을 종료할 때까지 정상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매장과 웹사이트는 폐쇄 직전까지 계속 이용할 수 있고 직원 급여 등을 포함해 직원과 파트너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파산법 11조는 한국의 법정 관리와 유사한 프로그램이다. 부채 상환 여력이 없는 기업의 채무 이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절차다. 기업의 자발적인 신청으로 시작되고 법원 결정에 따라 회생 기간에 기업의 경영 참여도 일부 허용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매각 절차를 밟는 파산법 7조(챕터7)와 다른 방식이다.
앞서 사모펀드 ‘식스스트리트파트너스’는 BB&B에 2억4000만 달러를 빌려 줬다. BB&B는 이 금액을 활용해 모든 매장을 폐쇄하는 시점인 6월 30일까지 360개 BB&B 매장과 120개의 바이바이베이비(buybuy BABY) 매장을 계속 열어 놓을 계획이다.
수 고브 BB&B 대표는 “수백만 고객들의 대학 진학, 결혼, 내 집 마련, 출산에 이르기까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이정표마다 우리가 있었다”며 “직원·고객·파트너·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커뮤니티에 감사한다. 모든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위해 계속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4월 25일(현지 시간)에는 미국 나스닥 상장 폐지도 통보받았고 5월 3일부터 주식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BB&B는 지난해 말 44억 달러(약 5조8000억원)의 자산과 52억 달러(약 7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1971년 탄생부터 2023년 파산 보호 신청까지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푸에르토리코·캐나다·멕시코 등에도 진출해 총 1만40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인 BB&B는 1971년 시작됐다. 공동 창업자인 워런 아이젠버그과 레너드 파인스타인이 미국 뉴욕 주와 뉴저지 주에서 소규모 매장을 오픈한 것이 그 시작이다.
설립 초기에는 ‘베드앤드배스’로 시작했지만 사업 규모를 확대하면서 1987년 ‘베드배스앤드비욘드’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아이젠버그와 파인스타인은 백화점의 변화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1970년대 미국의 주요 백화점들은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매장을 개편했다. 당시 전문점의 성장으로 고객을 그러모을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했던 백화점은 ‘패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저가부터 고가의 패셩 상품을 대거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생활용품 매장은 패션 매장에 자리를 뺏기게 됐다.
아이젠버그와 파인스타인은 기존에 백화점에서 생활용품을 구매해 온 고객들이 새로운 매장을 찾을 것이라고 판단, 회사를 설립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회사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 호황에 따라 여피족(1980년대 젊은 부자)이 늘어나며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70년 5234달러에서 1980년 1만2575달러로 크게 늘었다.
BB&B는 타 점포보다 많은 잡화 수, 저가 정책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 또한 고객이 매장에 자주 들를 수 있도록 쿠폰을 발행하고 세일도 수시로 진행했다. BB&B는 1992년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했다.
매장은 2000년대 311개로 늘어났다. BB&B는 2010년 1100개, 2017년 1500개까지 매장 수를 늘리며 미국 홈 퍼니싱업계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커머스의 성장이 BB&B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아마존이 유통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인터넷 서점 서비스로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든 아마존은 2000년대까지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마존은 1998년 6억 달러에서 1999년 16억 달러로 성장, 처음으로 두 자릿수 매출을 기록했다. 이후 2005년 85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매출 증가 속도는 더딘 편이었다.
2010년대 미국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아마존의 매출은 2010년 342억 달러에서 2015년 1070억 달러로 급증했고 2018년 2329억 달러, 2019년 2805억 달러, 2020년 3861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아마존은 ‘최저가 보장’ 전략으로 고객을 그러모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아마존에서 특정 제품을 구매했는데 며칠 뒤 해당 제품의 가격이 떨어졌다면 차액을 환불해 준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인건비 등을 이유로 시도하지 못하는 공격적인 가격 정책도 아마존의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
고객을 아마존에 빼앗긴 BB&B의 경영난은 2018년 수치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매출액 규모는 전년과 유사했지만 1억3722만 달러(약 18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9년에도 6억1380만 달러(약 8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실적 악화가 이어지자 구조 조정 등에 나서며 2020년 순손실 규모를 1억5077만 달러(약 2000억원)로 줄였지만 2021년 다시 순손실액이 5억5962만 달러(약 7400억원)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하는 자체 브랜드(PB) 확장 전략은 회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19년 PB 확장 전략을 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판매는 안 되고 공급망도 원활하지 않아 비어 있는 전시장도 늘어 갔다. 이는 현금 흐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2020년 말 주가가 하락하자 경영진은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이는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거래 규모를 줄이며 위기가 증폭되는 악순환에 들어갔다.
BB&B는 2021년 11월 뒤늦게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정 용품과 유아 용품 등을 중심으로 온라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조직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리더급 임원들을 새로 선임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지난해 연간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적자 규모는 더 커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마존의 공습에도 미국 할인점 코스트코는 커클랜드 등 강력한 PB와 낮은 가격에 제품을 소싱하는 능력, 수십 년 된 협력사들과의 신뢰 등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BB&B 같은 브랜드가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핫도그 값이 오르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말할 정도로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창업자의 철학과 수십 년 축적한 PB 운용 능력이 결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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