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오래되다 못해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회색빛 동네, 젊은 창업가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저렴한 임차료, 서울 중심부라는 편리한 교통, 신도시에 질린 젊은이들이 구도심으로 눈을 돌리는 트렌드까지…. 네 가지 요소가 모이면 뜨는 동네의 성공 방정식이 된다. 사람이 몰린 곳에는 곧 자본도 몰린다. 자본이 덮친 거리는 임대료가 오르고 이를 버티지 못한 1세대 예술가들이 떠나며 곧 도시의 특색도 사라진다. 서울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예술과 자본의 함수 관계가 나타난다. 이런 과정을 목격한 뉴욕의 유명한 미술가인 알렉산드라 에스포지토는 뉴욕 예술가들을 ‘미생물’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다. 가장 지저분한 지역에 들어가 더러운 것들을 다 먹어 치우고 깨끗하게 해 놓으면 땅값이 올라 또다시 더러운 곳을 찾아 떠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의 골목들도 뜨고 지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발굴할 서울의 다음 거리는 어디일까.
무당과 떡볶이의 동네에서 ‘힙당동’으로, 신당동의 변신[상권 리포트⑦]
조선 시대에는 무당이 모여 살았고 1950년대 처음으로 떡볶이가 탄생한 동네. 뭔지 모르게 번잡하고 깔끔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거리. 신당동이 변신에 성공했다. 뜨는 상권이 갖춰야 할 요건을 하나하나 갖추며 ‘힙당동(힙+신당동)’으로 불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신당동을 바꿔 놓는 기점이 됐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때 매출이 주춤하더니 2021년부터는 다시 성장을 이어갔다.

빅데이터 전문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터에 따르면 신당동 상권이 속한 황학동의 월평균 매출액은 2019년 117억 5602만원에서 올해 1분기 168억3335만원으로 43% 늘었다. 같은 기간 을지로2·3가의 결제액 증가율(30%)을 훨씬 웃돈다. 점포당 월매출 역시 지난해 4분기 기준 3043만원으로 서울시 전체 평균(1624만원)보다 약 87% 높았다(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신당동의 재발견 역시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자리 잡은 젊은 창업가들이 스토리를 입히며 시작했다.

곡식 창고를 개조한 빵집 ‘심세정’과 카페 ‘아포테케리’가 신당동 싸전거리의 역사를 녹였고 신을 모시는 사당 콘셉트의 칵테일바 ‘주신당’이 들어서면서 신당동의 색깔이 뚜렷해졌다. 2030에게 레트로 감성으로 통하는 전통 시장 역시 신당동의 매력을 보여주는 콘텐츠다. 신당동 중앙시장 내에 젊은 창업가들이 차린 포장마차·이자카야·쌀국숫집 등 다양한 가게가 문을 열면서 동남아 야시장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새로운 맛집과 카페, 전통 시장의 변화로 신당동 상권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자 투자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무당과 떡볶이의 동네에서 ‘힙당동’으로, 신당동의 변신[상권 리포트⑦]
지난해 12월 뜨는 상권의 또 다른 요소가 추가됐다. 가수 이효리 씨가 한남동 빌딩을 팔고 신당동 빌딩을 매입한 것. ‘젊은 창업가들이 새로운 거리를 만들면 연예인들이 건물을 매입한다’는 공식이 신당에서도 성립된 셈이다. 이 건물은 신당 상권을 이루고 있는 12번 출입구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다산성곽길 상권이다. 이곳은 오래된 상가나 창고를 개조한 신당동 상권과 달리 단독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처음 진입한 1세대들의 가게가 입소문 나는 ‘상권의 1차 붐’ 이후 연예인 투자에 따라 2차 붐이 이어지는 ‘뜨는 상권의 법칙’이 신당동에도 통하는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온다.
무당촌이었던 신당동의 지역색을 녹여낸 주신당./티디티디
무당촌이었던 신당동의 지역색을 녹여낸 주신당./티디티디
임대료 평당 8만원에서 20만원으로 신당동 메인 상권은 신당역 12번 출입구 인근부터 서울 중앙시장까지다. 지금의 ‘힙당동’을 만든 주신당·디핀·하니칼국수·아포테케리·심세정이 모여 있는 퇴계로는 원래 쌀가게들이 모여 있어 ‘싸전거리’라고 불리던 길이다. 오래된 곡식 창고나 노후 건물을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모여 있고 인근에 주방거리가 있어 인쇄소 골목을 중심으로 발달한 을지로 상권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전통 시장인 서울중앙시장이 퇴계로와 11자로 평행하게 자리하고 있고 이 사이를 잇는 골목골목 역시 최근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며 상권을 확장해 가고 있다.

거리가 붐비자 임대료도 올랐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신당역 인근 상권 임대료는 2019년 3.3㎡(1평)당 16만6200원에서 2022년 22만8000원으로 37% 올랐다. 신당동보다 먼저 뜬 을지로의 임대료는 같은 기간 27만9200원에서 25만1300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신당 전체가 아니라 싸전거리 임대료만 보면 상승률이 더 가파르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싸전거리가 속한 황학동 일대의 평균 임대료는 2019년 12만2485원에서 2022년 20만2525원으로 65.3% 뛰었다.

2019년 칵테일바 주신당을 개업한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는 “주신당을 계약할 때 66㎡(20평)대 상가의 평균 임대료가 8만~9만원 수준이었는데 최근 3.3㎡당 20만원에 계약한 가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신당 상권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초입에 와 있다”고 말했다.
무당과 떡볶이의 동네에서 ‘힙당동’으로, 신당동의 변신[상권 리포트⑦]
더블 역세권에 중앙시장까지 수요 탄탄
신당의 강점은 교통과 입지다. 2·6호선이 만나는 지하철역이 바로 앞에 있고 서울 주요 관광지인 동대문·청계천과도 가까워 향후 외국인 수요 역시 흡수할 수 있다. 을지로와 다른 신당동의 매력은 유동 인구의 다양성이다. 빌딩 숲 속 구도심인 인쇄소 골목에 자리 잡은 을지로 상권은 인근 직장인들과 힙한 가게들을 찾은 2030이 주요 타깃이다.

반면 신당동 상권은 소셜 미디어를 보고 맛집과 카페를 찾아오는 2030은 물론 중앙시장·동묘시장·풍물시장을 찾는 5060까지 모두 수용한다. 시장 유동 인구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트·오피스텔·주택가 주거 인구까지 포함하는 복합 상권이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포함한 627가구가 거주하는 청계두산위브더제니스가 싸전거리와 바로 붙어 있고 롯데캐슬 베네치아·황학아크로타워·황학코아루아파트·중구리버빌아파트·하늘드리움 2차아파트 등이 수많은 아파트가 상권을 둘러싸고 있다.

신당역 인근에는 오피스텔도 많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신당 중앙시장 인근 상권 거주자는 60대 여성이 가장 많았지만 메인 상권 바로 옆인 신당역 인근에는 20대 여성 거주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5월 4일 찾은 신당동에는 이처럼 다양한 요구의 소비자들이 장을 보기도 하고 카페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노포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며 신당동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콘텐츠의 다양성은 숙제
신당동 상권의 숙제는 콘텐츠의 다양성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신당동을 ‘제2의 성수동’이라고 부르지만 성수동에 비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맛집·카페·술집 등 외식 공간 위주의 상권이라 오랜 시간 유동 인구를 묶어 두기에는 ‘록인(rock-In)’효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는 “사람들의 하루 동선에는 선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카페를 간 다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편집숍과 문화 공간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중간을 채워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아직까지 신당동에는 없다”며 “신당동의 매력을 잘 유지하면서도 성수동처럼 문화적으로 소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많이 유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
“무당 모여 살던 신당동 역사 그대로 살려 핫플 됐죠”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티디티디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티디티디
2019년까지만 해도 신당동이 이렇게 떠들썩하지 않았다. 골목을 따라 시멘트로 바른 노후 상가가 이어져 있는 중구의 낡은 구도심과 다를 바 없었다. 그중에서도 싸전거리 한가운데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술집 하나가 그해 문을 열었다.

기와를 얹은 목재 건물에 볏짚으로 외부를 장식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신당’이다. 주신당은 조선시대 무당촌이었던 신당동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간판도 페인트로 쓴 빨간 글씨에 ‘주신당’이라고만 써져 있고 부적같은 종이가 붙어 있어 언뜻 보면 점집인 줄 알고 지나칠 수 있다. 매장 내부 분위기는 더 신비롭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칵테일바 내부를 장식하고 있고 보라색·빨간색 등의 조명이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에도 점집 분위기의 족자나 아이템들이 가득하고 천장은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신당동을 단숨에 ‘힙당동’으로 바꿔 버린 이 매장은 식음료(F&B) 기업 티디티디가 2019년 개업했다. 티디티디가 2017년 동대문에 문을 연 ‘장프리고’ 이후 둘째로 개업한 업장이다. 장지호 티디티디 대표를 만나 신당동 상권의 과거와 미래를 물었다.
무당촌이었던 신당동의 지역색을 녹여낸 주신당./티디티디
무당촌이었던 신당동의 지역색을 녹여낸 주신당./티디티디
-신당동에 개업한 이유가 있나.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편과 입지다. 개인적으로는 2호선 라인을 가장 좋아한다. 첫째 업장이었던 동대문과 가까워야 관리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해 인근 상권을 다 돌았다. 2019년 ‘주신당’을 오픈할 때만 해도 신당동은 젊은층이 즐겨 찾는 상권은 아니었다. 이 일대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3개가 모여 있었는데 모두 창고를 개조해 만든 업장이라 젊은 세대가 매력을 느낄 만한 구도심이라고 생각했다. 인근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밀집해 있고 중앙시장도 있어 유동 인구가 충분하기 때문에 배후 수요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방 기기를 판매하던 66㎡(20평)대 상가가 월 임대료 178만원에 나와 얼른 계약했다.”

-주신당 콘셉트는 어떻게 고안해 냈나.
“지역 스토리를 녹이기 위해 신당동 역사부터 공부했다. 신당동 인근 광희문은 궁에서 시체가 나갈 때 쓰는 문이었고 이 때문에 조선시대 때부터 시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무당들이 모여 살면서 신당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아직도 신당동에는 점집이 많다. 지명을 따서 재미있게 풀기 위해 신당 콘셉트의 바를 차렸다.”

-브랜딩에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
“무속 신앙을 대중적으로 진지하지 않게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때 생각한 게 12지신이었다. 띠별 결속력이 높고 띠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인들과 12지신 만화를 보고 자란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무속 신앙의 콘셉트를 인테리어에만 차용한 것은 아니다. 12지신을 좌석과 칵테일 메뉴에도 연관시켜 브랜딩으로 풀어냈다. ‘원숭이 칵테일’, ‘양 칵테일’ 등 각 띠 이름을 딴 메뉴를 개발했다. 실제로 고객들마다 본인 출생 연도에 맞는 12지신 칵테일을 주문한다.”

-앞으로 사업을 더 키울 계획인가.
“싸전거리와 중앙시장을 잇는 브리지 상권에 새로운 카페 ‘메일룸’을 열었다. 옛 유럽의 메일룸 콘셉트를 딴 카페다. 또 전국에 지역 특색을 갖춘 주신당을 확대할 계획이다. 12지신에 맞게 주류를 소개하고 칵테일을 소비하는 문화를 전국적으로 보급해 한국의 칵테일 소비 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숙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 주신당에는 굿즈도 만들고 개별 룸도 만들어 사주와 타로마스터들을 두고 새로운 콘텐츠를 구성해 볼 계획이다.”

-신당동의 다음 숙제는 무엇인가.
“신당동만의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도 신당동을 관광 특구처럼 만들 계획이고 많이 지원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오래된 도보블록을 다시 깐다든가, 오래된 쌀가게의 간판을 바꿔 주는 식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신당동에 쌓인 세월에 매력을 느껴 찾아오는 젊은 세대의 발길을 끊을 수 있다. 지자체에서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하는 기획자들이 신당동의 매력을 살리면서 개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당동 상권의 수명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성수동처럼 천지개벽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 많아 등기가 없는 건물도 있고 정화조나 수도, 가스 문제를 풀기 어려운 곳들도 많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활발한 토지 거래나 빌딩 거래는 아직 이뤄지고 있지 않다. 합벽으로 돼 있거나 소유주가 여러 명인 빌딩도 많아 개발이 어려운 곳들도 있다. 신당동 상권의 수명이 이어지려면 개발보다 외식업 위주의 상업 공간이 편집숍이나 문화 공간 등으로 다양해져야 한다. 밥집과 술집 사이의 시간을 채워 줄 또 다른 콘텐츠가 필요하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