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순환 마을 - 경기 고양시 대화동

[ESG 리뷰]
“자원 순환 습관,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죠” [ESG 리뷰]
(사진설명) 황정원 대표와 주민들. 왼쪽 뒤부터 곽혜숙씨(72), 황정원 대표, 조현예(60) 씨, 왼쪽 앞부터 김순희(73) 씨, 조영숙(79) 씨. 사진=이승재 기자

경기 고양시 대화동 2273의 5.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작은 가게 같은 이곳이 경기도 대표 자원 순환 마을 커뮤니티센터다. 벽에는 ‘경기도 우리동네 순환거점(Zerowaste Space)’이라고 쓰여 있다. 바깥에는 우유 팩, 멸균 팩, 폐건전지를 받는 공간과 사용된 브리타 정수기 필터를 받는 곳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한쪽에 다양한 친환경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 숍과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의자가 놓여 있다.

바삐 움직이던 황정원(55) 대표가 반갑게 맞아 줬다. 이곳은 제로 웨이스트 숍이자 마을 내 교육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이 이뤄지는 재미공작소이기도 하고 중고 거래와 플리마켓 거점이면서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 들러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다. 황 대표는 “재미있는 것을 배우고 만드는 재미공작소이기도 하고 자원 순환 거점인 도토리상점이기도 하고 이름이 많아요”라며 웃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길가, 깨끗해진 비결

황 대표는 자기 소유의 건물 1층을 동네 주민과 함께 나누는 센터로 개방했다.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에 선정돼 주로 공방 수업을 진행하던 그는 2021년 어느 날 경기도청의 자원 순환 마을 공고를 보게 됐다. 황 대표는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인 데다 쓰레기 무단 투기가 많아 지저분한 지역이었다. 마을을 깨끗하게 할 필요성을 느껴 지원하게 됐다”며 “실제로 마을 주민이 모여 자원 순환 마을 지원 사업을 하면서 마을이 점차 깨끗해졌고 도에서 하는 교육을 통해 분리 배출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원 순환에 팔을 걷어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내미는 사진을 보니 자원 순환 마을 전후로 바뀐 길거리 모습이 확연했다. 예전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레기 봉투가 널려 있었다면 최근에는 단정하게 정비된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쓰레기 봉투가 있던 자리에 꽃을 심어 놓았다. 황 대표는 “꽃을 심으면 쓰레기를 덜 버리게 되는 심리적 효과가 있어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꽃을 심었다”며 “이와 함께 페트는 페트끼리 자원화할 수 있는 것은 분리 배출하자는 캠페인과 교육을 하면서 동네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주민 주도 자원 순환 마을 조성 사업을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이상 추진해 왔다. 2018년 자원 순환 기본법이 제정되고 자원 순환 기본 계획이 추진된 것을 감안하면 자원 순환에 대한 관심에 일찌감치 눈을 뜬 셈이다. 도는 분리 배출 체계 개선과 환경 교육, 에너지 절약 등 마을별 특성에 맞는 자원 순환과 관련한 주민 공동체 교육을 통해 주민 스스로 폐기물·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있다. 경기도 내 마을 쓰레기 및 자원 순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10명 이상의 주민 모임 혹은 주민 공동체, 기관, 사회적 협동조합 등이면 응모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화동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은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생활 속에서 자원 순환을 실천한 가장 좋은 사례였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자원 순환 교육 과정을 통해 모르는 것도 많이 알게 됐고 버려지는 물건을 되살리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벼룩시장(플리마켓)은 자기 집에선 쓰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교환·판매하는 것이라 눈길이 갔다. 지금도 황 대표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에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앞으로는 인근 초등학교와 연계해 학교 안에서 더 큰 규모로 열 계획이다. 한쪽에 제로 웨이스트 숍을 만든 것도 교육과 컨설팅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자원 순환 마을의 운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수익 사업을 모색하게 된 것. 황 대표와 자원 순환 교육을 함께 들은 김순희(79) 씨는 “분리 배출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분하는지 잘 몰랐는데 확실히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자원 순환 마을은 어떤 의미일까. 생활 속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이고 쓰레기 중 분리 배출돼 자원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재활용하도록 모으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황 대표는 말했다. 더구나 자원 순환 ‘마을’이 되려면 대표 한 사람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자원 순환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황 대표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청소, 담배꽁초 줍기, 페트병과 우유 팩 반납하기, 꽃 심기, 수세미 가꾸기, 벼룩시장 개최 등을 진행했다. 또 자원 순환과 관련한 수업을 진행했다. 자원으로 쓸 수 있는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나 자투리 천으로 파우치 등 새로운 물품을 탄생시키는 수업이다.

페트병 하나에 10원

2021년, 2022년에는 자원 순환 마을을 진행하면서 고양시와 함께 민간 합동 거버넌스 협력 사업인 자원 순환 가게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페트병을 가져오면 10원씩 쳐서 고양페이나 계좌에 넣어 주는 방식이다. 보통 4월에 시작하는 이 사업은 올해도 4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수거를 시작해 11월 말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아직 시작하기 전인데도 주민들이 속속 페트병을 가져와 한곳에 쌓아 뒀다. 포인트를 받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페트병을 모아 오겠다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져온 것이다. 대화동에서 처음 시작된 자원 순환 시범 사업은 지난해 7곳으로 늘었고 올해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제로 웨이스트 숍을 ‘도토리상점’, 제로 웨이스트에 참여하는 주민 모임을 ‘다람이 클럽’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가져오듯 재활용해 분리 배출할 수 있는 페트병 등 자원을 가져오고 재사용할 수 있는 물품도 나누자는 뜻이다.

세계의 대표적 자원 순환 마을로는 이탈리아 카판노리, 일본 도쿠시마현의 가미카쓰초 마을을 꼽을 수 있다. 카판노리는 유럽 내 제로 웨이스트의 선구자로, 지역 농장에서 우유를 직접 공급하면 지역 주민들이 우유를 셀프 리필로 구매함으로써 포장재 사용을 줄여 1년간 이 시스템을 통해 9만 개의 우유병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냈다. 가미카쓰초 마을은 일본에서 최초로 쓰레기 제로 마을을 선언하고 5종으로 80%의 쓰레기를 세분화해 배출, 20%의 폐기물만을 매립하고 있다.

대화동에서도 자원 순환 마을을 도입해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고양시의 생활 폐기물 수집·운반비 544억원, 소각비 148억원, 매립비 79억원 등 쓰레기 처리 비용이 상당했다. 고양시는 주민이 참여하는 자원 순환 가게 시범 운영 실시와 함께 플리마켓 개설, 지역 주민의 봉사 활동 활성화, 무인 회수기 도입 등으로 2022년 기준 771억원의 쓰레기 처리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인터뷰 도중 마을 사람들이 들러 제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가기도 하고 오늘 플리마켓이 취소됐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동네 사랑방이 된 것에 대해 힘든 점이 있는지 물으니 황 대표는 사람에게서 힘을 얻지만 어려운 것도 사람이라고 말했다. 마을 일에 참여하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소한 일로 마음이 돌아서고 상처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주민 공동체인 만큼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주민들이 최대한 참여하게 하는 데 의의를 둔다. 또 농촌 공동체와 달리 생업이 있는 이들이 많은 도시 공동체인 만큼 적게라도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고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나름의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자원 순환 마을의 비전을 묻자 황 대표는 “예전에는 스스로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했다면 이제는 마을 주민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귀 기울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행정복지센터에서 꽃밭 상자가 또 왔다며 곧 심으러 간다는 황 대표의 목소리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