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전세의 기억과 익숙함의 함정, 그리고 반성[EDITOR's LETTER]
셋방 살던 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집주인들은 무서웠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에게 막 뭐라고 하기도 하고 저와 동생은 떠든다고 혼도 자주 났습니다. 애들이 떠드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미취학 아동들이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그렇게 몇 번 집을 옮겨 다니면서 부모님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나름 성숙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 마당이 있는 집을 사 이사한 날 부모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철이 들고 생각해 보니 전세는 참 이상한 제도였습니다. 본질적으로 전세 제도는 사금융입니다. 집을 빌려 쓰지만 그 대가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목돈을 빌려주는 제도지요. 일반적으로 채권자가 갑, 채무자가 을이지만 전세만큼은 항상 채무자인 집주인이 갑인 이상한 금융 거래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한 제도지만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는 순기능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몇 번 전셋집을 옮긴 것은 저축의 과정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전세를 얻고 아버지는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저축했습니다. 은행은 높은 금리로 돈을 불려줬지요. 그 과정을 반복한 끝에 결국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은 당연했고요.

고금리와 임금 인상, 인구 증가와 집값 상승 등의 조건이 맞아떨어지며 1970년대 이후 전세는 내 집 마련에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전세 대출 같은 것은 없던 시절입니다. 그다음 세대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습니다.

전세는 그래서 친숙하고, 또 익숙했습니다. 익숙함은 일반적으로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인지 전세에 대한 선호는 이후 오랜 기간 지속됐습니다. 매달 나가는 월세에 대한 반감이 동반된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전세가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전제 조건들이 모조리 파괴됐습니다. 전세의 비극을 예고한 셈이지요. 두 자릿수에 가까운 고금리, 급격한 임금 인상은 오래전 끝났습니다. 인구는 증가가 아니라 감소로 돌아섰지요. 저축이 아니라 전세 대출로 보증금을 냈습니다.

이 전세 자금 대출이라는 정책적 트리거는 2000년대 말 등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갭 투자 또는 갭 투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세입자들에게는 은행에서 빚을 내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유도했습니다. 한때 이 자금이 20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 자금의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는 10여 년간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위험 신호 하나를 놓치게 만든 셈이지요.

결국 어느 순간 전세 사다리의 조건 중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마저 최근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정리하면 저금리 시대로의 전환, 전세 대출 등 비극의 씨앗을 품은 정책, 집값 불멸의 신화, 한국은행의 정보 미공개 등이 어우러져 전세의 비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경제를 다루는 기자로서 반성도 했습니다. 전세에 대한 선호에 따라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점을 말입니다. 그 피해를 아파트에 갈 돈이 없어 다세대 주택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은 더욱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전세의 비극을 다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사는 젊은 세대가 마지막 희망마저 잃지 않게 하는 게 정부와 정치의 역할일 것입니다. 시대착오적 전세 제도를 개편하고 전세 사기와 역전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여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서둘러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 더 이상 젊은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을 막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