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하이저부시, 트랜스젠더 마케팅 시행하자 주 고객층 반발…시가 총액 10% 사라져
[글로벌 현장] 미국 맥주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절대 강자’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I)의 시가 총액이 최근 10% 넘게 사라졌다.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다. 발단은 사소한 마케팅 실수 때문이다. 맥주 애호가들이 집단 반발하며 참담한 결과를 빚어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핵심 소비층 반발 간과한 맥주 업체
ABI는 버드와이저·버드라이트·스텔라아르투아·코로나·호가든 등을 생산·유통하는 대표적인 주류 업체다. ABI의 지난 4월 맥주 판매량은 약 10% 감소했다. 버드라이트만 놓고 보면 매출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4월 마지막 주 판매량은 작년 동기 대비 23.3% 쪼그라들었다. 5월 첫 주 하락률은 23.6%로 악화했다.
그 중심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스타 트랜스젠더인 딜런 멀바니 씨와 관련된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멀바니 씨의 얼굴을 넣어 특수 제작한 맥주 캔을 보낸 게 알려지자 맥주를 즐겨 마시는 남성 소비자들이 대거 이탈했다.
멀바니 씨는 틱톡 팔로워만 1000만여 명을 확보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로, 코미니언 겸 배우다. 직접 운영하는 팟캐스트 ‘소녀의 시대(Days of Girlhood)’ 시리즈는 10억 뷰를 넘어섰다.
멀바니 씨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 속 오드리 헵번처럼 꾸미고 나온 틱톡 영상에서 “여성이 된 지 1년이 됐는데 버드라이트가 최고의 선물을 보내줬다”고 자랑했다.
맥주 최대 소비층인 보수 성향의 남성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개리에 버드라이트 보이콧(구입 거부)을 선언하는 유명인이 잇따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판매처마다 팔리지 않은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버드라이트를 보여주는 장면이 수차례 전파를 탔다.
ABI의 마이클 두커리스 최고경영자(CEO)는 긴급 진화를 시도했다. 그는 “특별한 캔을 제작해 인플루언서에게 보냈을 뿐 공식 광고나 협찬이 아니었다”며 “(마케팅 목적의) 특수 캔 제작은 오랫동안 해 온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멀바니 씨뿐만 아니라 다른 인플루언서 수백 명에게도 같은 마케팅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두커리스 CEO는 “보이콧 때문에 매출 타격을 입은 배달 운전사와 도·소매 업체 등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버드라이트 광고를 종전 대비 3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마케팅 담당 간부 두 명에 대해선 휴직 처분했다.
그러자 이번엔 성 소수자 옹호론자들이 발끈했다. ABI 맥주를 모두 치우겠다는 성 소수자 전용 술집이 급증했다.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에게 굴복했다는 게 이유다. 성 소수자에 반대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 모두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주의 깊지 않았던 마케팅 전략이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각인되고 있다.
유명인 재능에만 의존했던 아디다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도 큰 위기를 겪고 있다. 힙합 가수인 ‘칸예(칸예 웨스트)’와 잘못된 만남을 가졌던 게 화근이다.
아디다스는 2013년부터 칸예 가수와 공동으로 ‘이지’ 신발과 의류를 생산해 왔다. 이지 매출은 전체의 약 10%. 아디다스가 작년에 총 24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지 라인 매출만 20억 달러에 달했다. 고가의 운동화인 ‘이지 부스트’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이지 라인이 파트너인 칸예 가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였다는 것. 작은 실수가 제품 이미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칸예 가수는 실제로 수차례 말실수를 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유대인을 혐오하고 나치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던 게 대표적이다. 작년 10월 자신의 SNS에 뜬금없이 “유대인들에게 데스콘(death con) 3를 내리겠다”는 글을 띄웠다. 데스콘은 미군 방어 태세를 가리키는 데프콘에서 따온 말로, ‘다 없애겠다’는 식의 증오 표현이란 해석이 나왔다. 12월에는 유튜브에 출연해 “히틀러가 마이크와 고속도로를 발명했다”며 “나치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논란이 커지자 칸예 가수와 협업해 온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갭 등이 칸예 가수를 공개 비판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아디다스도 결국 칸예 가수와의 협업 중단을 선언했다. 소비자들이 집단 반발할 움직임을 보여서다.
그 직후부터 아디다스 실적은 악화 일로다. 작년 4분기 영업 손실이 7억2400만 유로에 달했다. 올해 1분기엔 간신히 이익을 냈지만 6000만 유로에 그쳤다. 작년 동기 대비 86% 급락한 수치다. 이익률은 1년 만에 8.2%에서 1.1%로 급전직하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이지 제품 재고도 골칫거리다. 폐기하자니 물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원가 기준으로 3억~5억 달러어치나 된다는 게 자체 추산이다. 라벨을 떼고 가격을 낮춰 판매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소비자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게 고민이다.
논란이 길어지면서 최근 신용 등급마저 하락했다. 무디스는 아디다스의 신용 등급을 종전 A2에서 A3로 낮췄다.
마크 코언 컬럼비아대 교수는 “유명한 개인의 재능과 인기에 의존하는 마케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유명인들의 돌발 행동이 기업 가치와 맞지 않을 때마다 기업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든 작든 비용을 투입한 마케팅이 역풍을 맞은 케이스는 적지 않다. 2017년 펩시의 콜라 광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광고 내용은 이랬다. 인기 모델 켄달 제너 씨가 시위대의 맨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제너 씨는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관에게 펩시 한 캔을 건넨다. 통합과 평화의 선물이란 메시지다. 경찰관이 활짝 웃으며 펩시를 받자 시위대 등 주변 사람 모두가 환호한다.
광고의 결과는 참담했다. 역효과만 냈다. 인권 단체들은 “펩시가 시위를 즐거운 파티처럼 묘사했다”며 “콜라 한 캔으로 상황이 반전되길 기대했느냐”고 비판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이끌었던 엘 헌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폄훼하는 광고”라며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딸인 버니스 킹은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아버지가 펩시 한 캔의 힘을 알았더라면…”이라고 꼬집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펩시는 광고를 내리는 한편 즉각 사과 성명을 냈다.
세안제·보디워시 등으로 유명한 도브 역시 같은 해 비슷한 사고를 저질렀다. 여성 3명이 도브 세안제를 사용하면서 다른 인종으로 바뀌는 내용의 3초짜리 홍보 동영상에서다. 인종에 관계없이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양성도 나타내자는 포석이었다.
문제는 여성 인종의 순서였다. 흑인 여성이 세안제를 쓴 뒤 백인 여성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백인 여성이 흑인보다 깨끗하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인종 차별적 홍보 영상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페이스북 등에서 ‘도브를 보이콧하자’는 해시태그가 유행처럼 번졌다.
도브는 황급히 동영상을 삭제한 뒤 “유색 인종에 대해 사려 깊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브랜드 전문가인 드루브 마헤시와리 아웃소스 창업자는 “인종 등 민감한 이슈를 포함한 마케팅을 실행한다면 준비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사전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며 “마케팅 규모가 크든 작든 디테일에 주목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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