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그린 워싱

[ESG 리뷰]
세부 감축 목표·계획·수단 없으면 그린 워싱
전력 사용량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한국 기업 A사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가 그린 워싱 논란에 휩싸여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RE100을 주관하는 클라이밋그룹이 A사가 RE100 심사 과정에서 해당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클라이밋그룹은 A사에 2045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는 약속과 LNG 발전소 건설 계획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국내외 환경 단체도 A사의 LNG 발전소 건설 소식을 듣고 RE100 가입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홍보 수단이자 그린 워싱이라며 비난했다.

탄소 배출권 및 배출량 추정과 관련한 그린 워싱 사례도 있다. 한국 기업 B사는 제품 예상 판매량에 따른 탄소 배출량에 맞춰 자발적 탄소 배출권 인증 기관인 베라(Verra)가 인증한 자연 기반의 고품질 탄소 배출권을 구매했다며 자사 제품이 탄소 중립 상품이라고 광고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B사의 광고를 과장 광고라고 판단했다.

B사가 해당 제품에 관한 탄소 배출량 전부를 상쇄할 배출권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기타 간접 배출(스코프 3) 일부에 대한 배출권을 구매한 것임에도 ‘탄소 중립’ 제품이라고 광고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환경 단체는 B사가 구입한 탄소 배출권이 진정한 탄소 감축에 기여한 사업 결과로 발행된 배출권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민간 인증만으로는 그 배출권의 유효성과 합리성을 검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구체적 감축 목표와 계획 미흡

비영리 단체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는 2월 ‘기업의 기후 책임 모니터’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 리더임을 자처하는 24개 글로벌 기업의 기후 대응 목표와 공약을 분석한 보고서다. 이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배출량의 4%를 차지한다.

보고서는 배출량 추적 및 공개 여부, 배출량 감축 목표, 감축 수단 및 실제 감축 성과 그리고 기여 또는 상쇄를 통해 감소한 배출량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공약으로 내세운 기후 전략은 모호하거나 신뢰성이 없으며 24곳 중 단 5곳만 일관성 있는 기후 전략 체계를 갖췄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보고서는 탄소 중립 목표 기한 내 탄소 배출량의 90%를 감축할 수 있는 전략과 운영 체계를 갖춘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구체적 감축 목표나 중간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43~48%의 탄소 배출량을 감축해야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가치 사슬 전반 감축량은 15~2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보고서는 많은 기업이 장황한 감축 계획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의류 기업 중 한 곳은 ‘더 지속 가능한 자재’를 사용한다고 명시했지만 어떤 자재가 이에 해당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업이 채택한 바이오 연료를 통한 에너지 전환도 실질적 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가 크지 않고 실제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조달하는 사례도 현저히 부족하며 많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구매 등을 통해 자사의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호주 산토스, 달성 방법 신뢰성으로 피소

탄소 중립 및 넷 제로에 대한 그린 워싱 사례로는 호주의 정유 회사인 산토스(Santos)를 상대로 2021년 8월에 제기된 가처분 신청이 있다. 호주의 주주행동주의 시민 단체인 애커(ACCR)는 산토스가 2020년 연례 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며 천연가스를 ‘클린 연료’라고 지칭하고 ‘클린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린 워싱이라고 주장했다. 산토스에 기망 행위 금지, 정정 보도 등을 청구하는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산토스가 천연가스를 추출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산토스의 넷 제로 계획이 의존하고 있는 탄소 포집 및 저장(CCS)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커는 산토스의 CCS 기술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가정에 의존하고 있고 소요되는 비용도 과다해 신뢰할 수 없는 만큼 소비자를 기망하거나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았지만 애커는 2022년 8월 산토스가 2021년 기후 변화 리포트에서 2030년까지 직간접 배출량(스코프 1·2)을 2019~2020년 대비 26~30% 감축하겠다고 기재한 부분 또한 그린 워싱이라고 지적하며 청구를 추가했다. 산토스는 CCS 기술을 적용해 천연가스에서 탄소를 제거해 만든 ‘블루 수소’를 판매함으로써 계획을 달성하겠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애커는 이것이 산토스의 자체적 배출량 감소가 아니라 ‘블루 수소’ 판매를 통해 소비자의 스코프 1·2 배출량을 감소시킴으로써 탄소 배출량 상쇄 효과를 누리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애커는 산토스가 생산하는 블루 수소에 대해 ‘청정(clean)’이나 ‘배출량 제로(zero emissions)’라는 수식어를 쓴 것 역시 그린 워싱이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토스가 블루 수소 생산 과정에서 스코프 1·2 배출량이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검찰, 토탈에너지스 기소

프랑스 소재 석유·천연가스 기업 토탈에너지스그룹도 2022년 3월 탄소 중립 계획 등을 과장했다는 지적을 받아 그린피스 프랑스를 비롯한 프랑스의 비영리 단체 4곳으로부터 소송당했다. 토탈에너지스는 2021년 5월부터 지속 가능한 기업 활동을 강조하며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캠페인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토탈에너지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토탈에너지스그룹이 발표한 계획이 일반 소비자 관점에서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당히 기술적인 내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러한 계획이 실현 불가능하며 모호한 계획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관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토탈에너지스는 석유나 석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적은 LNG를 활용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내세우는데 원고는 이것이 화석 에너지의 일종인 가스를 녹색 에너지로 위장하는 기망 행위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캠페인을 중단하라고 청구했다.

한편 프랑스 환경법을 보면 그 법에 따라 승인된 단체는 불공정한 상행위로 인해 자연·환경 보호와 관련한 침해가 발생하면 가해자에게 손실 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이 소송을 제기한 비영리 단체들은 이를 근거로 원고에 대한 손실 보상도 청구하고 있어 소송의 귀추가 주목된다.

나아가 2023년 1월 프랑스 검찰이 토탈에너지스를 그린 워싱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고 밝혔는데 토탈에너지스는 자사를 겨냥한 그린 워싱 주장이 모두 거짓이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제 궤도에 도달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글로벌 지침과 가이던스 중복 적용 필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검증 또는 인증받았더라도 그린 워싱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달성 가능한지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관인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에서 탄소 중립 인증을 받았더라도 그 기업의 감축 목표나 방법이 실제로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것이 아닌 것도 있어 비판이 제기됐다.

베라가 인증한 탄소 배출권도 시민 단체와 규제 당국의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소 저감에 대한 명확한 규범, 산정 방식과 기준이 모호해 기업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카본마켓워치는 기업의 탄소 중립 전략과 관련한 그린 워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유엔 고위 전문가 그룹의 권고 사항, 국제표준화기구(ISO) 넷 제로 가이드라인,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 가이던스 등 핵심 내용을 두루 적용할 것을 권장하는 만큼 기업의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부 감축 목표·계획·수단 없으면 그린 워싱
이소영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ESG랩 변호사·이연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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