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세 번째).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세 번째). 사진=삼성전자 제공
미국 중앙은행(Fed)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아직 열어놓고 있지만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과 한국의 가팔랐던 긴축 사이클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유지할 것인가의 이슈가 남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차질 등으로 크게 치솟았던 물가가 정점을 지나 안정화되고 있고 통화 정책은 추가 긴축 가속보다 누적된 긴축 효과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피면서 관망하는 모드로 전환됐다. 금융 시장의 관심도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흐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촉발된 변동성으로 주식 시장은 연초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률(PER)이 12.8배까지 상승하는 등 추가로 상승하기에는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높아지면서 비싸졌다. Fed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다소 후퇴했고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음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업종과 종목들은 테마를 형성하면서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혁신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산업 등의 성과 우위가 두드러진다. 성장이 희소한 국면일수록 확실한 성장 모멘텀이 보이는 테마로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흐름은 자연스럽다. 최근 전 세계 증시에 유입되는 자금 흐름은 정체되고 있지만 기술 업종으로의 자금 유입은 뚜렷하다. AI 테마의 ‘미니 버블’ 논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 기술 등 성장주의 비율은 꾸준하게 높여 나가야 한다.미국, AI로 장착한 상위 7개 대형 성장주들 만의 랠리미국 증시의 강세는 대형 성장주인 혁신 테크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5월 26일까지 미국의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올해 9.5% 올랐지만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24.0%나 상승했다. 상승을 이끈 것은 시가 총액 상위 7개 기업인 대형 성장주(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엔비디아·테슬라·메타)들인데 이들은 S&P500 시가 총액 증가분의 약 99%를 기여했다. 7개 기업의 주가는 올해 평균 71.3% 급등했고12개월 선행 PER의 평균은 33.2배로 이익 전망의 약 35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시장은 횡보했다. 실제로 대형 성장주 중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만 편입된 다우산업지수는 연초 이후 오히려 0.2% 하락했다.

향후 미국의 경기 둔화 또는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경제와 주식 시장의 괴리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주식 시장과 경제는 구성이 많이 다르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IT 업종은 S&P500을 기준으로 시가 총액의 27.6%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액 기준으로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11개 업종 중 5위 수준이다. 경기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성장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IT를 비롯한 이익 전망이 확실한 성장주가 강세를 보이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점차 낮아지면서 성장주에는 골디락스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S&P500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전망은 예상과 달리 상향 수정되고 있다. 나스닥의 상향 수정 흐름은 더 강하다. AI 관련 성장 기대가 높은 나스닥지수는 이미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높아졌다. 나스닥의 12개월 선행 PER은 26.4배로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직전 고점인 26.7배에 근접했다. 이익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는 성장주에 관심이 더 쏠리는 이유다. 이들의 밸류에이션 멀티플은 오르고 있지만 이익 성장 기대는 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수년 만에 찾아온 성장 기회(AI)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은 조정이 나오더라도 굴하지 말고 성장주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경기와 기업 이익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고 성장의 희소성이 부각되는 국면에서는 실적이 확실한 혁신 테크 등 고퀄리티 성장주에 자금이 쏠린다. 미국은 특별히 중국이 첨단 산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면서 청정 기술 확대를 위해 필요한 광물 자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전략을 시행 중이다. 청정 기술(전기차·재생에너지), 컴퓨팅 관련 기술(반도체·양자컴퓨터), 생명공학(바이오) 등은 다른 것들과 융합됐을 때 역량이 확대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라는 의미에서 ‘전력 승수(force multiplier)’라고 표현할 만큼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압도적으로 확보해 미국의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 지원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형 성장주에 긍정적인 요인이다.일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엔화 약세 영향으로 33년 만에 최고치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가 1990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화 약세가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데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상사주를 높게 평가한 이후 일본 증시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벅셔해서웨이는 경제 블록화에 따라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 진영으로 나눠지면 자원을 확보한 기업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몇 년 전부터 일본 상사주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상장 기업들에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는 등 주주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일본 증시의 상승 배경에는 그 무엇보다 일본을 중국 견제의 핵심으로 놓고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는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첨단 산업과 군사력에서 중국에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인데 이를 위한 경쟁력의 핵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만과 한국 반도체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고 중국·대만 간 무력 충돌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을 아시아 반도체 기지로 삼는 전략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평가되던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매력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존재감도 다시 부각되는 중이다. 최근까지 대만과 한국 기업들은 초미세 공정 경쟁에 몰두했는데 기술 난도가 올라가면서 기술 고도화를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쟁의 흐름이 선단 공정 경쟁에서 후공정(패키징) 고도화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소부장 기술력을 바탕으로 후공정 고도화 경쟁력을 갖춘 일본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유가증권시장, 2차전지 쏠림 완화, 반도체와 삼성전자의 주도주 복귀2차전지의 쏠림 현상이 완화되는 과정에서 반도체가 주도주로 복귀하면서 유가증권시장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올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10조9000억원어치 샀는데 그중 삼성전자를 9조4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중국의 경제 지표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일부 외국인 자금도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와 관련 업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긍정적이다. 첫째, 작년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업계의 투자 축소와 감산 정책에 의한 재고 조정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올해 하반기는 스마트 기기 및 서버 교체 주기와도 맞물려 있어 반도체 시장의 하반기 실적 개선(턴어라운드)이 예상된다. 둘째, 미국 Fed의 긴축 강도 완화는 채권 금리 안정으로 이어져 혁신 테크 성장주들의 가치 평가(밸류에이션) 개선에 긍정적이다. 셋째, 챗GPT의 신드롬으로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이 보다 강력해졌다. 특히 컴퓨팅·데이터스토리지, 무선통신, 자동차 전자 장비 분야 등이 산업 규모와 성장성 측면에서 주목된다.

유가증권시장의 상승은 그동안 밸류에이션 급등이 주도했지만 최근 이익 전망(EPS)이 반등하고 있다. 밸류에이션이 반등하는 국면에서 주가는 상승하지만 이익 전망이 계속 하향 조정되기 때문에 실적을 고려하면 매수할 종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희소한 성장에 대한 꿈을 가진 개별주 랠리와 성장주 강세 그리고 코스닥의 상대적인 강세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익 전망이 반등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펀더멘털이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가 강해지면 반도체와 같은 경기 민감주가 강세를 보인다. 유가증권시장과 중대형주 중심의 강세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준 KB증권 WM투자전략본부장/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경제학박
*동 의견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소속 회사 (KB증권)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