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금기의 상징 로마노프가 300년사
남동생이 누나를, 남편이 부인을 유폐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부인이 남편을 죽인 피의 역사

[서평]
러시아 왕조사에 대한 특별한 이해
명화로 읽는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
나카노 교코 지음 | 이유라 역 | 한경arte | 1만6000원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넷째 책 ‘명화로 읽는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가 출간됐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의 후속작으로, 비극적 결말로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흥망성쇠를 명화와 함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합스부르크·부르봉·로마노프만큼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유럽 왕조는 없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유럽 역사의 실타래는 때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때로는 나폴레옹을 매듭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때 로마노프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해냈는지는 아쉽게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나폴레옹의 실각 뒤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가 있었고 예카테리나 대제는 루이 16세를 돕기 위해 오스트리아·스웨덴·스페인 등과 함께 반혁명파를 뒤에서 은밀히 지원하기도 했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이 책에서 로마노프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려진 명화를 선정해 소개하고 명화 속 인물에 얽힌 사건과 시대 배경을 알려준다. 그리고 로마노프가 계보도와 연표를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우며 러시아사를 어려워하는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친근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특유의 명화 소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나카노 교코는 독특한 명화 감상법,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관점,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수많은 팬을 사로잡고 있다. 명화 속 배경의 역사적 사실, 화가의 개인사, 그림 속 인물과 얽힌 이야기 등 역사·문화·예술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배경 지식은 일반 교양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는 역사와 미술을 알기 쉽게 동시에 배운다는 매력적인 콘셉트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나카노 교코의 현장감이 돋보이는 묘사는 소설의 한 장면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어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부여한다.

그동안 역사와 미술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가가기 주저했더라도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유럽사의 흐름을 익히고 미술에 대해 가져 왔던 선입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넷째 이야기의 주제인 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시조는 사실 러시아 태생이 아니다. 14세기 초 프로이센 땅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독일 귀족 코빌라 가문이 아들 대에서 코시킨 가문으로 성을 바꾸고 그 5세손인 로만 유리예비치가 자신의 이름 ‘로만’을 바탕 삼아 로마노프 가문으로 다시 변경한 것이 그 시초다.

로마노프 왕조의 첫 차르는 미하일 로마노프다. 그는 열일곱째 생일 전날인 1613년 7월 11일 마지못해 왕좌에 앉았다. 자신이 왜 선택됐는지 알고 있었고 앞으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역시 절실히 느끼며 치른 대관식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시조 루돌프 1세가 55세에 신성로마 황제에 선택됐을 때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었다.

루돌프와 미하일은 배후의 실세들에게 어차피 무능한 인간이고 꼭두각시 삼기에 적절하니 적당히 쓰다 버리면 된다며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엄청난 끈기와 저력을 발휘하며 운명이 선사한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미하일은 왕위에 오른 뒤 러시아정교회와의 제정 일치로 전제 정치를 유지, 강화했고 그의 치세 32년 동안 농노제와 신분제가 승인돼 중앙 집권이 강화됐다. 명실상부 근대 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진 미하일 로마노프 이후 국민들은 로마노프가를 완전히 받아들여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를 통치했다.

사실 우리에게 러시아 역사는 친숙하지 않다. 유럽은 러시아를 아시아로 본 반면 아시아는 러시아를 유럽으로 봤기 때문에 서로를 낯설게 생각했던 탓이 컸다. 우리에겐 지정학적으로 이웃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로마노프 왕조도 여느 왕조와 마찬가지로 투쟁과 반목이 있었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고뇌하는 군주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다만 러시아 특유의 잔혹한 면도 볼 수 있는데 남동생이 누나를, 남편이 부인을 유폐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부인이 남편을 죽이고 이룩한 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줘 더욱 궁금증을 자극한다.

또한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미지의 나라가 아니라 더 알고 싶은 나라로 다가올 것이다.

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