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의 다시, 연결]
불혹, 나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안주연의 다시, 연결]
마흔이 되면서부터 나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나이에 사로잡혀 있으니 일도, 집에서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제 스스로 다스리기 힘드니 정신과 도움을 받아야 할지 고민도 됩니다.

흰머리가 왕창 나는 것도 당황스럽고 주름도 어색해 거울을 보지 않은 지도 꽤 됐습니다. 일을 끝내고 저녁 모임에 갈 때면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빠져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제가 분위기 좋다고 엉덩이 붙이고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명분 있는 자리는 지갑 열고 빠져 주든지, 슬그머니 나가든지 눈치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꼰대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도 듣다 보니 후배들에게 몇 마디 던진 것도 집에 와서 곱씹게 되고 먼저 조언을 구하지 않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은 아직 늙지 않았는데 거울 보면 그냥 중년이 서 있습니다.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또한 조금 더 어린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가 쉽지 않고 피해 의식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윤영(가명) 님, 안녕하세요.

윤영 님이 최근 느끼는 나이듦에 따른 당혹감과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솔직하게 얘기해 줘 고맙습니다.

한국은 직장에서도 나이를 확인하고 한 살이라도 위라면 존대하기도 하고 같은 출생 연도 안에서도 ‘빠른 생일’을 따지기도 하는, ‘나이주의’와 서열 질서가 강한 사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역 내의 평균 나잇대 그룹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구성원들은 소통하고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터에서는 ‘손윗사람이라면 의젓하고 너그러워야지’라든가 ‘손아랫사람은 눈치 빠르고 싹싹해야지’ 같은 서열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이 암묵적으로 강요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나이를 받아들이고 동료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처신하기 어려운 윤영 님의 고민을 다뤄 보겠습니다.

제가 그려본 윤영 님은 백화점에서 꾸준히 일하며 예쁘고 분위기 메이커이고 일도 잘한다고 주변에서 칭찬과 애정을 많이 받아 온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편지에 써 있듯이 백화점은 다들 외모와 나이에 신경을 쓰며 젊고 예쁜 사람이 잘나가는 권력 관계도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윤영 님도 흰머리와 주름살을 낯설고 어색하게 느끼고 관계에서도 나이 든 것을 의식하며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환경과 함께 윤영 님 개인은, 본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이 집단 내에서 자신의 존재·태도·행동 등이 인정받고 수용받고 있는지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도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린 윤영 님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 외로웠지만 친구들과 늘 같이 다니며 마음 붙이면서 지낸 것 같아요. 그런데 중학교 때 단짝 친구와 싸우고 친구들과 떨어져 윤영 님만 우울한 것 같고 서럽던 경험이 있었고 화해한 이후에도 그 상처가 크게 남아 친해도 ‘언제라도 멀어질 수 있구나’, ‘다 말해선 안 되겠구나’라는 방어적인 인간관계관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후 싸울 만한 일은 피하고 남의 말에 신경 쓰고 상처를 받지만 밖으로 티를 내지 않으면서 지내 온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욕 먹거나 튀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눈치를 보다 보니 속내를 드러내고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동료나 친구들이 ‘서운하다, 벽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윤영 님, 저는 이렇게 지내 온 날들의 뒤안길에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원없이 사랑받고 싶다’는 윤영 님의 깊은 욕구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민한 사춘기에 의지했던 친구들과 멀어지며 느낀 외로움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미움받지 않는’ 길을 택했지만 실제로 윤영 님이 마음 깊이 원한 것은 수용받고 사랑받는 일이 아닐까요. 미움받지 않는 것과 사랑받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 생각해 봤으면 해요.

윤영 님은 그간의 직장 생활에서 선배와 동료들에게 많이 인정받고 사랑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은연중에 그때 받은 사랑이 오직 윤영 님의 젊음과 외모 덕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음이 퇴색된 지금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불안해하고 비관하는 듯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윤영 님에게 20~30대에 직장에서 겪은 좋은 관계들과 들었던 좋은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해 내고 그 이유와 디테일들을 되새겨 보기를 제안합니다. 분명 여러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윤영 님은 그 안전함과 기분 좋음을 주로 기억하고 그 안에 담긴 윤영 님만의 개성과 영광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것 같거든요. 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뜨거운 20~30대를 거쳐 도착한 마흔의 모습 또한 흔쾌히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춘기를 재구성하는 이 작업을 혼자 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 시기에 자신을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던 선배들을 만나보면 어떨까요. “이제는 제가 선배가 돼 동료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해주고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배가 전에 내게 ‘잘한다’, ‘훌륭하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요.

차 한잔 함께 마시며 그때 함께 헤쳐 온 업무들, 나눴던 대화들, 풀어 온 갈등들을 구체적으로 짚어 보면 좋겠어요. 목소리 들으며 통화해도 좋고요. 선배와 동료들이 이야기해 주는 자신의 장점과 에피소드를 정리하다 보면 윤영 님 본인이 가진 고유한 능력과 매력들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과거가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면 윤영 님이 그토록 찾았던 안전과 수용을 어느 정도 이미 받았음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영 님에게 적절한 선배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선뜻 답하지 못하고 “선배가 아니라 그저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다”고 한 것은 아마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서일 것입니다. 선배라는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기에 영향력도 크고 그만큼 욕 먹을 가능성도 높은 자리니까요. 윤영 님에게 ‘선배’라고 하면 어렸을 때 본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싫어했던 모습이 떠오르기에 ‘꼰대 같아도 안 되고 눈치 없어도 안 된다’면서 스스로를 과도하게 검열했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충분히 수용되고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깊이 느낀 후에는 욕 먹고 비웃음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중년은 ‘주로 영향을 받는 나’에서 ‘영향을 주기도 하는 나’로 옮겨 가는 시기니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와 역할이 두렵지만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해 나가고 가까운 이에게 여리고 못난 모습도 조금씩 보여줄 때 ‘벽’이 사라지고 후배들과도 사랑을 주고받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삶의 직접적 변수가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나이는 그저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늘어가는 상수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자신의 나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의미화하는가 하는 관점이 변수입니다. 윤영 님은 지금 느끼는 어려움과 외로움 등을 ‘나이’ 때문이라고 인식하면 향후 삶은 계속 고통스럽게 됩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를 먹어 가니까요.

중요한 것은 윤영 님이 현 직장에서 쌓아 온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을 잘해 왔는지를 복기해 내고 이를 근간으로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전하며 관계를 점차 깊게 가져가는 겁니다. 관계를 쌓는 데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을 겁니다. 실패할 때도 스스로를 믿어 주세요. 윤영 님은 이미 충분히 잘해 내면서 걸어왔으니까요.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