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드림웍스 첫투자 시작으로 미국 사업 확장
2000년대 들어서며 식품·물류 쪽으로 경쟁력 강화 박차
미국 현지 직원 수, 삼성전자·현대차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CJ)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진=CJ)
CJ그룹이 콘텐츠, 식품과 함께 공을 들인 부분은 ‘물류’다. 한국에서 대한통운을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경험은 미국 시장에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M&A를 통해 물류 사업을 강화한 것도 미국 사업 안정화의 포인트다. 성공 키워드 3-물류 사업의 경험CJ그룹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물류를 택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른바 ‘초국경 택배’는 전 세계 시장 규모만 10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CJ대한통운은 2018년 6월 미국 물류회사 ‘DSC 로지스틱스’를 약 2300억원에 인수했다. DSC는 1960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설립됐고 2018년 당시 미국 전역에서 5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CJ그룹은 DSC의 지역적·산업적 강점과 CJ대한통운의 첨단 물류 솔루션을 결합하면 현지 시장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인수에 나섰다.

이후 2020년 2월 미국법인 CJ 로지스틱스 USA와 통합돼 ‘CJ로지스틱스 아메리카’로 재출범했다. CJ는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각각의 법인이 보유해 온 인력과 물류 인프라, 플랫폼을 합쳤다. CJ 로지스틱스 아메리카는 미국과 캐나다를 걸쳐 280만㎡ 규모의 물류 창고와 운송·포워딩 사업을 위한 70여 개의 사업장을 확보하고 있다.

통합 법인을 통해 CJ대한통운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심의 기존 영업 방식을 탈피하고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CJ로지스틱스 아메리카의 지난해 매출은 1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인수 전 DSC 매출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물류의 성과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의 결과다. CJ로지스틱스 아메리카는 먼저 미국을 중심으로 제공해 온 물류 서비스를 북미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국·북미 간 운송은 물론 인접 국가를 오가는 복합 운송 서비스까지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단거리 운송, 장거리 운송, 컨테이너 운송, 냉동·냉장 화물 운송을 포함해 생산 공장에서 물류센터까지 운송하는 조달 물류 등을 24시간 제공한다.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CJ 로지스틱스 아메리카 물류센터. (사진=CJ)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CJ 로지스틱스 아메리카 물류센터. (사진=CJ)
키워드 4. 현지화의 결과, 미국 직원만 1만2000명 미국 사업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한 투자와 함께 빠른 현지화 전략이 있었다.

비비고는 현지화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한국 만두에서 핵심 재료인 돼지고기를 빼버린 게 대표적 사례다. 닭고기를 선호하는 현지 특성을 고려해 돼지고기를 닭고기로 변경했다. 여기에 실란트로(고수) 등 현지 식문화 반영한 재료로 다양한 만두 제품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현지화 사례로 꼽힌다.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만두도 판매, 다양한 수요층을 흡수하고 있다.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개발한 ‘치킨&실란트로 만두’는 출시 직후부터 만두 시장 1위에 올라 현재까지도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크기도 바꿨다. 현지인 입맛에 맞춰 만두소를 구성하고 만두 크기부터 포장까지 신경 썼다. 이 또한 해외 각지 식문화를 파악하고 이를 식품에 적용한 마케팅의 힘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미국에 만두를 선보일 때 한국 판매 제품보다 작은 한입 크기의 ‘비비고 미니완탕’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투자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CJ제일제당은 미국을 겨냥해 기술 개발(R&D)과 인프라에 투자하며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 미국 식품 기업인 애니천(2005년), 옴니(2009년), TMI(2013년), 카히키(2019년), 슈완스(2019년) 등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이를 통해 미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현지 생산 기지를 확보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플러튼과 뉴욕 브루클린 생산 기지에 이어 뉴저지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며 제품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했다. 최근에는 미국 캔자스 주 살리나의 슈완스 피자 공장을 약 4만㎡ 증설해 총 9만㎡의 피자 공장을 구축하게 됐다. 축구 경기장 약 12개 크기다. CJ그룹은 앞으로도 미국에서 투자를 이어 갈 예정이다.

CJ그룹이 미국 사업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M&A, 생산 인프라 확대 등에 투입한 금액은 총 6조2000억원에 이른다. 총 29개 주에서 22개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미국 사업 매출은 6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 동안 약 8배 성장한 수치다. 현지 직원 수는 1만2000명으로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 중 삼성전자·현대차에 이어 셋째로 큰 규모다.

식품 사업의 성장은 CJ 해외사업 전체 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 사업 매출은 총 5조1811억원을 기록했고 이 중 약 80%인 4조356억원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미국 법인은 2018년 해외 법인 중 최초로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5년 연속 흑자 폭을 늘려 가고 있다. 해외 첫 진출국인 미국에서 2004년부터 직영 형태로 발판을 다져오다 2009년 이후 가맹점 위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CJ그룹 글로벌 사업 연 매출(공시 기준)은 2017년 7조1616억원에서 2022년 16조9422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미주 지역 매출은 1조1698억원에서 8조2854억원으로 약 7배 늘었다. CJ그룹의 전체 글로벌 사업 매출에서 미주 지역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16%에서 지난해 49%까지 확대됐다. 미주 지역 매출 연평균 성장률은 48%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CJ의 미국 도전기글로벌 시장 중에서도 미국은 CJ그룹이 오랜 기간 동안 공들여 온 주력 국가다. 미국을 타깃으로 한 CJ의 도전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3월 이재현 당시 제일제당 상무는 누나인 이미경 이사와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 2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만화 영화를 총지휘했던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드림웍스SKG’의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도전이었다.

이 상무가 콘텐츠에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문화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 것도 이때다. CJ는 드림웍스 설립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본격적으로 콘텐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제일제당의 자산 규모는 1조8000억원, 매출은 2조3000억원(1996년 기준)에 불과했다. 3억 달러는 당시 환율로 2300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매출의 10분의 1에 달하는 과감한 투자였다.

업계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식품회사의 콘텐츠 투자가 기업의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규모가 커 회사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CJ그룹이 한국 식품회사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금의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초석이 됐다.
이재현 회장(사진 가운데)이 미국 LA에서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한 모습. (사진=CJ)
이재현 회장(사진 가운데)이 미국 LA에서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한 모습. (사진=CJ)
2000년대 들어서는 식품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기업과의 인수·합병(M&A)을 시작했다. 2005년 소규모 식품회사 ‘애니천’을 인수하고 미국 LA에 뚜레쥬르 1호점을 열었다. 애니천은 내추럴 푸드 마켓(일체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 식품 시장)에서 편의 식품과 소스 제품을 보유한 기업이다. 2009년에는 미국 냉동식품 업체 옴니를 인수했다.

이 회장은 2012년 3월 CJ그룹 신입 사원들의 아이디어 경연 행사 ‘CJ 온리원페어’에서 “10년 전부터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그간의 노력으로 한식 세계화가 시작됐고 10년 후 한식이 글로벌 식문화의 주요 카테고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며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3년 개봉된 ‘설국열차’ 역시 콘텐츠로 미국 내 입지를 굳히려는 CJ의 노력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설국열차’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만큼 할리우드 스타들이 다수 출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해외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어 좌초될 뻔했다. 이때 CJ ENM이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설국열차’와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 CJ의 투자와 노력은 2019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 감독의 ‘기생충’이 호명되는 찬란한 순간으로 이어졌다.

1995년 시작된 CJ 미주 사업이 급격한 성장세로 진입한 시기는 2018년이다. 미국 뚜레쥬르는 2018년부터 흑자 전환됐고 슈완스 인수를 통해 비비고 등 CJ의 식품 브랜드를 공급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을 다수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해 연말 미국 LA에서 그룹 주요 경영진을 소집해 글로벌 경영 전략 회의를 열었다. 그는 “식품·문화·바이오·물류 등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글로벌 영토를 얼마나 확장하느냐에 CJ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했다.

미국을 향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2021년 미래 성장 동력을 4대 성장 엔진인 컬처·플랫폼·웰니스·서스테이너빌러티로 제시했다. 컬처와 플랫폼에서는 우리 드라마·영화·음악 등 콘텐츠는 물론 한국의 식문화까지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영역에서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이 회장이 구상하는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도약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무대다.

만두로 미국 내 입지를 확보한 CJ제일제당은 만두·가공밥·치킨·K-소스·김치·김·롤 등을 글로벌 7대 전략 제품(GSP : Global Strategic Product)으로 선정했다. ‘비비고’ 제품 현지화에 초점을 맞춰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할 계획이다.

K-푸드 육성에도 박차를 가한다. 떡볶이·핫도그 등 최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거리 음식을 ‘K-스트리트 푸드(K-Street Food)’로 글로벌 브랜드화해 6월부터 미국에서 신제품을 출시한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그룹 중기 비전 발표 이후 미주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미국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확장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한국 푸드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CJ의 철학이자 사업의 목표”라며 “만두 하나로 시작했지만 K-푸드·아시안·에스닉까지 아우르는 최고의 식품 기업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자 CJ의 꿈”이라고 밝혔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