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제연구원 ESG포럼...ESG 이슈에 따른 기업 이사진 재량 등 논의

"ESG 용어 진화 중...기업 이사진도 ESG 고려해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ESG라는 용어의 의미를 더 좁히거나 기후변화를 따로 이야기하자는 움직임도 나오는 등 ESG 용어도 계속 바뀌고 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자베스 풀먼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ESG: 지속가능성을 위한 경로'라는 주제로 열린 법제연구원 ESG 국제 컨퍼런스에서 제1세션 발표자로 나서 이 같이 말하고 ESG 용어의 변천에 대해 논했다.

풀먼 교수는 "ESG용어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고, 맥락에 따라서도 다르게 쓰이기 때문에 하나의 연구로 이를 증명하기 어렵다"라며 "사회 부문에서 직원을 강조한 EESG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으며 스탠포드에서는 G를 뺀 ES를 강조하고 있고, 가후변화는 따로 떼어 보자거나 생물다양성을 추가해야 한다는 등 ESG용어의 축소나 확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ESG압력이 작용하는 다양한 경로에 대해 설명했다. 정 교수는 "정부나 소비자들뿐 아니라 액티비스트, 자산운용사, 글로벌 규제 등에서 다양한 압력이 작용한다"라며 "특히 법이나 규제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만 지속가능성에 있어 법과 규제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어떤 방식의 압력이 ESG적으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정 교수는 "한국의 경우 오너십 구조가 컨트롤링 타입으로, 주요 주주가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라며 "또 한국 대기업의 수출주도적인 특성상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인권이나 공급망에 대해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이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데, 법이 여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서 2세션에서는 존 몰리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다양한 기업의 지배구조 형태에 대해 강연했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싱글 피크 스트럭처로 기업의 이사진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지만, 수탁자를 두는 비공익신탁의 경우 이사진과 함께 수탁자가 꼭대기에 있는 다중 피크 스트럭처가 만들어진다.

존 몰리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을 들었다. 페이스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콘텐츠를 감시하는 위원회를 두고 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신탁에서 자체적으로 기부를 받아 자금을 조달하고, 수탁자들이 지속적인 펀딩을 받기도 한다. 이 같은 파워와 독립성은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몰리 교수는 "수탁자가 신탁을 관리하게 하는 내부적인 지배구조가 필요하고, 외부 수탁자들이 자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인 구조가 필요하다"라며 "외부 수탁자들이 주주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리인 문제가 심화될 수 있으며, 페이스북의 경우 콘텐츠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자금 조달이나 마케팅, 브랜딩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몰리 교수는 회사에 따라 수탁자 중심의 외부지배구조가 맞는 경우가 있고, 창업자 중심의 전통적인 지배구조가 맞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몰리 교수는 "외부 지배구조를 만들게 되면 주주 이익에만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외부 이사회만큼 파워가 생기고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데 주주가 이 방향성을 지지한다면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제2세션의 강연자로 루루 란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몰리 교수의 모듈 중심 접근과는 달리 케이스 중심 접근을 취 했다. 루루 란 교수는 세퀴나, 셸, HC서지컬 스페셜리스츠 회사에 대한 판례에 주목했다. 이 세가지 사례 모두 기업의 이익창출 과정에서 이사진이 ESG를 고려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결론적으로 이사진들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취해야 하며, ESG 경영은 이사진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아 모두 소를 제기한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루루 란 교수는 "예컨대 셸의 경우 환경 액티비스트들의 소 제기를 통해 온실가스가 충분히 감축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소가 제기됐는데, 이사진들이 회사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판결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란 교수는 생각할 문제로 기업 이익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란 교수는 "전통적인 관습법에서 이사들은 주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 기업에 좋더라도 장기적으로 평판을 해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라며 "이에 따라 이사들은 주주 외에도 기업의 적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이사들의 재량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법의 정의"라고 말했다.

이후 토론자로 나선 안수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의 회사법상 이사의 의무에 대해 말씀드리면, ESG와 관련해 리스크 관리나 내부통제 관점에서 접근해왔다"라며 "한국에서도 법규 준수나 내부통제, 리스크 등을 고려할 때 이사의 주의의무라는 점에서 ESG를 고려할 충분한 제도는 마련돼 있다"라며 "ESG경영의 전략을 어떻게 짤지에 대해서는 이사회 경영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ESG를 어떤 의미로, 규모로, 방향으로 할지는 이사회 재랴으로 맡겨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는 "외부 투자자들은 이 같이 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다"라며 "법제에서 이사회가 ESG 이슈를 어느 정도 고려했는지를 이해관계자에게 공시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보인다"라며 "이사회 경영과 관련한 사항들이 어떤 규모로, 어떤 전략으로 하는지를 이해관계자들에 공개하고, ESG를 리스크 관리 측면뿐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공시와 소통 채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프리 고든 콜롬비아대 교수가 ESG논의로부터 기후 논의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강연했다. 고든 교수는 "기후변화를 ESG 항목의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라며 "전세계적인 기후 변화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직시하고 1.5도 이하로 지구 온도가 상승하도록 경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같은 이유로 ESG논의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의 입장 차이를 지적했다. 공급망 실사나 DE&I 등에 적극적인 유럽에 비해 미국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가 되고 있다. 고든 교수는 "동기부여 측면에서 ESG의 다른 이슈에 기후변화만큼의 중요성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라며 "정치, 경제적인 현실을 고려해야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목표들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