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역 앞. 송해 길의 끝자락이다.
종로3가역 앞. 송해 길의 끝자락이다.
찰나의 계절이라는 초여름 밤,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이라면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 것. 대학 때 편의점 앞의 둥근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캔맥주와 소주를 종이컵에 섞어 마시며 밤새워 수다를 떨곤 했다. 하지만 편의점은 휴게 음식점으로 분류돼 음주하다 걸리면 점주가 최대 5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아마 맥주 캔을 따는 순간 주인이 부리나케 나와 말릴 것이다. 그러면 청춘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곳에는 오후 5시쯤이 되면 치킨집 테이블이 하나둘씩 펼쳐진다. 빨간색, 파란색, 흰색….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00개쯤 될까. 종로3가역 5번 출입구 앞에는 ‘송해길’이라는 푯말이 있다. 송해 할아버지 제2의 고향이라 그를 기념해 만든 길이다. 뒤로는 낙원악기상가가 있는데 상가 근처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500여 개의 야외 테이블은 낙원상가 입구 앞 골목에 끝없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골목 양 옆으로 포장마차 노점 테이블이 이어져있다.
골목 양 옆으로 포장마차 노점 테이블이 이어져있다.
인스타그램의 #종로3가포차거리 #핫플
이 골목의 정확한 명칭은 ‘돈화문로’다. 별다른 명칭은 없다. ‘종로3가 포차거리’라고만 부른다. 송해길은 낙원상가 앞에서 종로2가 육의전 빌딩까지, 탑골공원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 엄밀히 말하면 포차거리가 아니다. 이곳은 5번 출입구부터 3번 출입구까지 약 200m의 이름 없는 골목이다. 골목 양쪽 길에 노점이 빽빽하다. 골목이지만 양쪽이 20m 정도 되는 넓이라 답답한 느낌은 없다. 인스타그램에는 #종삼 #종로3가포차거리 #노상포차 등의 해시태그를 적은 게시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저녁을 먹은 뒤 오후 8시쯤에는 이미 만석이다. 앉을 곳이 없어 골목의 끝에서 끝까지 두어 번은 걸어야 한다. 자리를 찾다 마주친 네댓 명의 여자들은 이제 막 만난 듯 상기된 얼굴로 “메인 스트리트에 앉아야 돼”라며 여기저기를 훑었다. 기다리거나 헤매고 싶지 않다면 오후 5시에는 와야 한다.
저녁 8시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저녁 8시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을지로3가의 노가리 골목 전체가 만선호프를 중심으로 형성됐지만 종로3가 포차거리는 가게 팻말이 모두 다르다. 메뉴들은 다 비슷하다. 산낙지·멍게·골뱅이무침·닭발·오뎅탕 같은 것들이다. 가격대는 1만원 후반에서 3만원 사이다. 카드는 안 되는 가게도 있다. 안주도, 가격도 모두 비슷하니 친절한 곳으로 가 기분이라도 좋으면 됐다. 한 가게는 테이블에 앉으니 2인은 안 받는다고 한다. 다른 곳은 2만원 이상인 안주를 2개 이상 시켜야 했다. 결국 ‘메인 스트리트’에는 앉지 못하고 포장마차 안에 떡볶이를 올려 두는 기다란 철판을 테이블로 쓴 구석 자리에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조용히 소주 한잔 마시던 거리가 헌팅의 메카로종로3가 포차거리가 생긴 것은 2009년 오세훈 시장의 도시환경개발정비사업 이후다. 원래는 종로3가역 1호선 부근, 지금의 1번 출입구 근처가 노점 거리였다. 오 전 시장은 ‘걷기 편한 종로거리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600여 개의 노점상들을 철거, 이주시켰다. 그때 밀려난 상인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것이다. 종로3가 포장마차 ‘철이네’ 주인은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종로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간단히 소주 한잔 마시러 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지금은 이태원·홍대·강남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그의 옆에서 32년 단골손님이 서빙을 돕고 있었다.
양푼 냄비에 담긴 오뎅탕. 가격은 1만5000원이다.
양푼 냄비에 담긴 오뎅탕. 가격은 1만5000원이다.
오뎅탕과 청하 한 병을 시키니 기본 안주로 오이와 당근이 나온다. 양푼 냄비에 담긴 오뎅탕을 국자로 떠 종이컵에 덜어 마시면 된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고 화장실을 가려면 종로3가역까지 다시 되돌아 걸어가야 하지만 좋다. 맨바닥에 의자를 두고 노닥거리기만 할 뿐이지만 왠지 낭만적이다. 둘이서 온 손님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이 기다란 철판에 붙어 앉아 있었다. 간간이 접힌 테이블이 골목에 세워져 있었는데 주인에게 물어보니 예약한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예약은 사장님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 자리를 맡아 달라고 하면 된다. 그 시간에는 손님을 받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기 때문에 노쇼는 절대 금물이다.

흰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사람, 겨우 지탱할 것이 끈 하나뿐인 홀터넥 원피스를 입은 사람,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서로를 개의치 않는다. “제가 아까부터 봤는데...”와 “안녕하세요. 우리도 셋이 왔는데..”하며 헌팅 제안을 하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개똥 철학을 논하거나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부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어울린다.

윤제나 기자 ze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