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규제로 저탄소→무탄소로 조선업 패러다임 전환
친환경 선박연료로 메탄올·암모니아·수소 주목
공격적인 저가 공세로 LNG선 이어 메탄올선도 맹추격

[스페셜 리포트]
현대미포조선이 2019년 건조한 메탄올 추진 PC선(5만 톤급). 사진=HD한국조선해양 제공
현대미포조선이 2019년 건조한 메탄올 추진 PC선(5만 톤급). 사진=HD한국조선해양 제공
조선업 경쟁 구도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일본 간 경쟁에서 한국·중국 간 경쟁으로 변화했다. 중국은 기술 난도가 높은 대형 시장에선 한국에 밀려 중형 조선 위주의 시장을 공략해 왔고 막대한 자국 수요와 저가 공세로 일본을 제치고 건조량 기준 1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 조선업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수주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품질과 기술력 고도화를 오랫동안 준비해 온 중국은 기존 주력인 벌크선에서 벗어나 한국의 주력인 고부가 가치 선박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의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가 독주하던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후발 주자인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LNG선, 1년 새 점유율 4배 껑충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 세계 LNG 운반선 발주량은 2021년 629만CGT(표준선 환산톤수)에서 2022년 1452만CGT로 약 131% 늘었다. 이 중 한국 조선업계가 전체의 70%(1012만CGT)를 수주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LNG 운반선 수주량을 2021년 46만CGT(7.6%)에서 2022년 440만CGT(30%)로 4배 정도 늘렸다. 업계는 중국이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물량 초과에 따른 반사 이익을 누리며 점유율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만큼 ‘양보다 질’에 집중해 고부가 가치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고부가 가치·친환경 선박 시장에선 점유율 1위를 차지해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LNG선 건조 기술력은 앞으로 몇 년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LNG선은 섭씨 영하 163도 이하로 온도를 유지하고 기체로 소실되는 양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만큼 진입 장벽이 높고 다년간의 건조 경험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LNG선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과 건조 경험을 갖고 있어 중국과 기술 격차는 약 7년으로 추산된다.

중국 국영조선그룹 CSSC의 계열 조선소인 후둥중화조선이 2016년 건조한 LNG 운반선 글래스톤호가 2018년 엔진 결함으로 호주 앞바다에서 멈춰선 사건은 중국의 LNG 건조 기술력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후둥중화조선이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그룹의 코스코 쉬핑 에너지 트랜스포테이션이 발주한 LNG 운반선을 진수하고 있다. 사진=CSSC 제공
후둥중화조선이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그룹의 코스코 쉬핑 에너지 트랜스포테이션이 발주한 LNG 운반선을 진수하고 있다. 사진=CSSC 제공
中 정부 지원 힘입어 공격 수주…“가격 경쟁력·추격 속도 무시 못 해”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LNG 운반선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수주의 질적 측면에서 중국에 크게 앞섰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최근 중국 조선 업체들의 LNG선 수주가 늘고 있어 기술 축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10% 점유율을 차지하던 일본 조선업계는 경쟁력 저하로 건조 포기를 선언하면서 LNG 운반선 시장은 한국과 중국의 2파전이 됐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은 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공격적인 수주에 나섰다.

LNG 운반선을 건조할 수 있는 중국 업체 수도 증가했다. 2021년까지는 후둥중화조선 1곳이 유일했지만 1년 만에 다롄조선과 장난조선 등 5곳으로 늘었다. 후둥중화조선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 가치 선박의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상하이 인근 창싱조선기지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완공되면 후둥중화조선의 LNG 운반선 생산 능력은 기존 연간 5~6척에서 10~12척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위협은 일정 수준 올라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조선소의 독주를 막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전히 자국 발주 물량 비율이 높아서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최근 대량 수주는 LNG 최대 수입국으로서 LNG 프로젝트에 투자를 늘리는 중국 자본의 영향력과 중국계 선사의 발주에 수혜를 본 것이고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던 발주에 따른 낙수 효과가 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변 애널리스트는 “최소 5년 이상 한국 조선소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친환경 게임체인저 ‘메탄올 추진선’에서도 격돌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친환경 추진 선박의 비율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LNG는 무탄소 연료 전환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화석 연료에 해당한다. 석탄과 석유 등 다른 화석 연료와 달리 연소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적게 배출해 청정 연료이자 미래 에너지로 인식돼 왔지만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현재 대세인 LNG의 시장 퇴출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400톤 이상의 선박은 IMO에서 정한 선박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지수(CII) 기준치를 충족해야 한다. 대상 선박은 기관 출력 제한 장치와 에너지 효율 개선 장치를 설치하고 저탄소 연료 사용·최적항로 운항 등을 통해 각 기준치를 맞춰야 한다.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조선 3사는 저탄소인 메탄올, 무탄소인 암모니아·수소연료 등 대체 연료 추진 선박에 대한 연구·개발(R&D)에 힘을 쏟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추진선 수주 실적에서 가장 앞서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메탄올 추진선 99척 가운데 54척(55%)을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했다.

세계 최대 선사 머스크는 2021년 8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HD현대중공업에 1만6000TEU급 메탄올 추진선 8척을 발주한 이후 추가 발주를 통해 총 19척을 발주했다. HD한국조선해양이 그간 머스크에서 수주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9척이 모두 인도돼 운항을 시작하면 연간 230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머스크 이후 메탄올 추진선에 대한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CMA CGM은 7000TEU급 컨테이너 LNG 추진선 4척을 삼성중공업에 발주해 2024년 12월 인도받을 예정이다.

韓 기술력 더 앞서는데…머스크는 저렴이 中 선택

메탄올 추진선은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이 한국보다 20% 정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수주에 뛰어들고 있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중국 다롄조선이 CMA CGM의 1만5000TEU급 메탄올 컨테이너선 6척 수주에 성공했고, 머스크도 최근 양쯔장조선과 8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한 건조 계약 의향서(ILO)를 체결했다.

총 14억 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이번 수주전에는 HD현대중공업도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HD현대중공업보다 척당 약 100억원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탄올은 기존 선박연료유에 비해 황산화물(SOx)은 99%, 질소산화물(NOx)은 80%, 온실가스는 최대 25%까지 줄일 수 있어 LNG를 잇는 친환경 선박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높은 압력과 극저온이 요구되는 LNG와 달리 메탄올은 상온과 일반적인 대기압에서도 저장‧이송이 쉽고 연료 공급(벙커링)도 항만의 기존 연료 설비를 간단히 개조해 활용할 수 있어 초기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선급 ABS에 따르면 메탄올 추진선의 성장률은 2028년까지 연평균 171%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저장과 취급이 용이하고 대기 오염 저감률이 비슷한 LNG를 대신해 메탄올을 연료로 선택하는 선사들이 늘고 있다.

다만 메탄올 추진선은 에너지 밀도가 낮아 연료 효율이 떨어져 연료탱크를 크게 만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과도기적 연료로 주목받았던 LNG는 엔진에서 완전 연소되지 않고 메탄이 배출되는 ‘메탄 슬립’ 현상으로 인해 최근 LNG 추진선 발주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이 빈틈을 메탄올 추진 선박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