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매장, 운영 종료…롯데·신라·신세계서 다 빠져

끌로에. (사진=끌로에 홈페이지)
끌로에. (사진=끌로에 홈페이지)
명품의 새로운 무대는 한국입니다. 외신에서는 서울이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일본 도쿄에 이어 명품업계의 새 투자처가 됐다고 전했고요. 브랜드들은 앞다퉈 한국 시장에 직진출하려고 나서고 있습니다. 로에베, 지방시, 몽클레르, 셀린느 등이 연달아 국내 패션회사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했죠. 직접 한국 시장에 제품을 팔겠다는 전략입니다.

그중 하나가 1952년 설립된 프랑스 명품 브랜드 '끌로에'입니다. 가비 아기옹이 만든 브랜드로, 그리스어로 '푸른 새싹'이라는 뜻이 있습니다.1970년대에는 여성스러운 디자인에 보헤미안 디테일을 추가한 끌로에 제품들이 인기를 얻으며 유명인이 선호하는 브랜드라는 수식어도 얻게 됐습니다. 특히, 미국 배우에서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프랑스 유명 배우 브리짓 바르도 등이 끌로에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설립 33년 만인 1985년 글로벌 명품 회사인 리치몬드 그룹에 인수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끌로에가 배출해 낸 디자이너로는 칼 라거펠트, 스텔라 맥카트니, 피비 파일로 등이 있죠.

한국에는 2004년 들어왔습니다. 한섬을 통해 국내에서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당시 한섬의 신규 브랜드 론칭팀은 수입 브랜드 라인업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와 접촉했는데, 그 성과가 바로 '끌로에'였습니다. 이후 백화점 매장을 오픈하면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끌로에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2017년부터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관리했습니다. 끌로에가 한섬과의 계약을 끝내고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판권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최근까지도 특별한 변화 없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끌로에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최근 끌로에를 보유한 리치몬드 그룹이 마음을 바꿨습니다. 돌연 직진출을 결정한 것인데요. 이달 말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계약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면세점에도 매장 운영을 종료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현재 끌로에 매장이 있는 곳은 롯데면세점 본점과 제주점, HDC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본점 등인데 이달 말까지만 운영한다고 합니다.

다만 온라인에서는 올해 말까지 판매가 계속됩니다. 매장 공간만 내어주는 백화점과 달리, 면세점에서는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사입해 자체적으로 재고를 관리합니다. 통상 3개월 전에 판매치를 예상하고 적정 수량을 들여오는 방식인데요. 이 때문에, 끌로에가 면세점과의 계약을 끝내고 매장을 철수하면 남은 재고는 모두 면세점이 떠안게 됩니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고를 소진해야 한다는 뜻이죠.

소비자들에겐 좋은 소식입니다. 빨리 재고를 없애야 하는 회사는 보통 할인판매를 시작하거든요. 업계 관계자는 "아직 할인율을 정하지 않았지만 할인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끌로에에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끌로에가 한국 기업 도움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죠. 혼자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도 많습니다. 한국 기업보다 대응 속도가 느리고, 의사 결정도 빠르지 못한 게 원인입니다.

실제로 이랜드와의 계약을 끝내고 2008년 한국법인을 세운 푸마는 당시 연간 기준 2000억원대의 매출을 유지해 왔지만 직진출 전환 이후 실적이 크게 악화되면서 1000억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뉴욕 하이엔드 브랜드 코치는 2012년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계약 종료 후 한국법인 '코우치코리아리미티드'를 설립했지만 직진출 직전 700억원대의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최근까지도 당시 매출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죠.

지방시·돌체앤가바나 등도 직진출 이후 매출이 줄었고 골든구스와 롱샴도 고전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망·마케팅·가격 정책 등 현지화에 필요한 다양한 요인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직진출 전략이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죠. 지난 몇 년간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를 늘려오면서 브랜드에 대한 취향이나 소비 기준도 생겼고요. 명품이라고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끌로에가 직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