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회장은 미국에서 MBA를 마친 이후 미국계 은행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한국에 돌아와 LG투자증권에 입사한 이후 국제금융팀장 등을 역임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쌓아 온 역량을 발휘했다. 국제금융팀을 이끌던 허 회장은 해외 주식 발행 등 주식자본시장(ECM) 관련 업무를 직접 전수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허 회장이 달러를 조달하며 위기를 극복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8년 허 회장은 한국 공기업과 중견 업의 주식 연계 채권을 해외 시장에서 발행해 달러를 조달했다. 한 푼의 달러가 귀하던 혹독한 시절, 한국 기업의 가치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세일즈 역량을 발휘하며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대표이사에 오른 2007년에는 모바일 시장 성장을 미리 예측하며 홈쇼핑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2010년 케이블 SO GS강남방송과 GS울산방송을 전격 매각했고 마련한 자금을 토대로 모바일 쇼핑에 투자했다. 당시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GS홈쇼핑이 홈쇼핑업계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내려 놓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업계 순위 변동이 생길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당시에는 좋은 채널 번호가 좋은 매출을 보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케이블 SO가 홈쇼핑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었다.
허 회장의 승부수는 통했다. 2014년 7300억원이었던 모바일 쇼핑 취급액은 2018년 2조원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모바일 매출 비율은 TV홈쇼핑을 뛰어넘었다. GS홈쇼핑은 케이블 SO 하나 없이 업계1위 자리를 지키는 홈쇼핑사로 거듭났다. 허 회장 취임 직전이던 2006년 1조9000억원이었던 취급액은 2018년 4조2000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당기순익은 512억원에서 1206억원으로 뛰었다.
허 회장은 GS의 핵심인 정유와 유통사업에도 미래 가치를 접목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 샌마테오에 설립한 GS퓨처스다. 유망한 기술 기업을 발굴해 그룹 계열사들에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가능하다면 M&A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GS리테일과 GS홈쇼핑 합병 역시 허 회장이 주도했다. 온라인 위주로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편의점과 홈쇼핑이라는 온·오프라인 쇼핑 플랫폼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GS그룹 유통 부문은 자산 9조원, 연간 취급액 15조원, 하루 거래 600만 건에 이르는 초대형 커머스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국의 유통 기업은 물론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 기업과도 겨룰 계획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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