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포퓰리즘법 폭주, 고비용 저효율 “줄여야”…지역 구도 타파·신인에 기회 “늘려야”

홍영식의 정치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의원 정수 10%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의원 정수 10% 감축을 주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한 의원 정수 10%를 감축하자는 제안은 미풍에 그쳤다. 의원을 늘리자는 야당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 방안에는 의원 증원이 빠졌지만 김진표 국회의장과 야당은 줄곧 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개특위에서 의원 감축 방안을 고수할 방침이다. 의원 감축과 증원 주장의 근거를 살펴본다.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의원 감축을 주장하는 측은 우선 민의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에 찬성하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고 70%에 달하는 결과도 있다. 김 대표의 제안은 이런 국민 정서를 대변한다. 의원 감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6대 국회 때 116명, 16대 국회 땐 26명을 줄인 적이 있다.

현재 한국의 의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들의 평균보다 적은 게 사실이다.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평균 국민 수가 한국은 17만 명으로 OECD 회원국(12만 명)보다 많다. 일본 27만 명, 미국 76만 명보다는 적지만 독일 11만 명, 프랑스 11만 명, 영국 10만 명보다는 많다.

하지만 단순 숫자로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게 의원 감축파들의 주장이다. 의원내각제가 뿌리박힌 유럽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볼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국회가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라는 점이다. 한국 국회의 경쟁력은 OECD 국가 가운데 26위로 꼴찌 수준이다(서울대 조사). 지난 20대 국회는 ‘신뢰하는 국가 사회 기관’ 조사에서 1.8%로 맨 하위를 기록했다. 수준 미달의 마구잡이 입법을 하다 보니 발의된 법안 가결률이 11%에 불과한 실정이다. 누리고 있는 보수와 특권을 보면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연봉, OECD 국가의 1.5배·사무실 넓이 4~5배

국내외 유수 기관의 조사 때마다 생산성은 낮은데 비해 한국 국회의 특권은 OECD 최상위다. 연봉만 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국민 1인당 국민소득(GNI) 대비 한국(세전 1억5426억원)은 3.36배로, 일본(2.31배)·미국(2.28배)·영국(2.03배)보다 많다. OECD 대부분의 국가가 2.1~2.5배 수준에 불과한데 비해 1.5배에 이른다. 유럽의 주요 나라들은 의원들에게 승용차 보조금도 없는 반면 우리는 유류 지원비 등 각종 명목의 경비가 지원된다.

한국 국회의원의 1인당 보좌진 수는 9명으로, 영국·독일·프랑스 등 OECD 주요 국가들의 2~5명에 비해 2~4배에 달한다. 일본은 보좌진이 3명이고 더 쓰려면 자비를 들여야 한다. 북유럽 나라들은 의원 2~4명이 비서 1명을 공유한다. 그러니 연봉 이외 경비도 이들 나라들보다 더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의원이 보좌진을 의원과 가족들의 개인 용무, 집안 행사 등 사적으로 활용하다가 문제가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족과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것을 막으니 동거남까지 등장한 판이다.

한국의 의원 사무실 넓이는 약 150㎡(45평) 규모로 일본과 유럽 국가들에 비해 4~5배 넓다. 영국은 중진 의원이 아니면 3~4명이 한 사무실에 칸막이를 쳐 놓고 사용한다. 이탈리아는 2020년 헌법을 개정해 상·하원 의원 수를 300명 넘게 줄였고 독일 의회는 지난 3월 하원 의원 정수를 106명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프랑스도 30% 감축을 추진하는 등 글로벌 추세도 주목할 만하다는 게 의원 감축을 내세우는 측의 주장이다. 점점 줄어드는 유권자 수도 고려해야 한다. 의원 정수를 줄이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 국회는 국회 개혁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든가 해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야당들은 의원 특권은 그대로 놔둔 채 오히려 의원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의원을 늘리는 대신 세비(보수)를 줄여 재정 지출 총액은 변함 없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원 보수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지금도 입법 남발, 규제·포퓰리즘 입법 폭주로 인한 폐해가 큰 것을 감안하면 의원을 줄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라는 것이다. 정치 과잉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회는 헌법에 정해진 정부 예산 심의권을 넘어 편성권까지 갖겠다고 달려드는 마당이다.

국정 감사 때마다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불러내면서 뒤로는 지역구 민원을 흥정하는 것을 보면 악성 로비스트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의원 보수를 동결한다고 해도 보좌진 수 감축 등 특권을 줄이지 않으면 연간 700억원 정도 더 들어간다. 의원 수가 증가하면 국고 부담 선거비용, 정당 보조금 등 국민의 부담도 덩달아 늘어난다. 게다가 선거 때마다 세비 30% 감축 공약을 제시해 놓고 지키지도 않고 오히려 더 올려 받는 것을 보면 ‘보수 총량 동결’ 약속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의원 증원 주장의 중심엔 비례대표가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내에 진출시켜 입법 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취지의 비례대표제는 한참 왜곡돼 있다고 의원 감축파들은 주장한다. 후보 선정부터 계파 보스의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이 벌어지고 시민 단체와 운동권 인사들의 자리 챙기기 용도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의원이 된 뒤엔 출신 직능 단체 이익만 대변하는 데 힘을 쏟고 차기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기 쉬운 곳을 골라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는 게 비례대표의 현주소다. 21대 총선 때는 위성 정당을 급조해 비례대표 금배지를 단 다음 거대 정당으로 옮겨 간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대대적인 제도 개혁이 없는 한 김기현 대표의 주장대로 이런 비례대표제는 줄이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양당 체제 극복 도움·민의 대변 통로 더 넓어져

하지만 의원 축소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수 정당의 원내 활동 폭을 넓혀 양당 체제를 극복하자는 게 의원 증원을 주장하는 김진표 의장과 야당의 핵심 논리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비례대표제 확대 등을 통해 지역 구도를 타파하자는 게 의원 증원의 또 다른 논리다. 의원이 대표하는 국민 숫자가 줄어들면 한 표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의원들이 유권자를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유권자가 의원을 직접 대면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갖게 돼 민의를 대변하는 통로도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와 의원 간 접촉면이 넓어지게 되면서 대의민주주의도 더 발달하게 된다는 논리다. 의원 수가 많아지면 그들이 누리는 특권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각계 전문가, 젊은 정치 지망생 등 신인에게도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넓어질 수 있다.

정치개혁특위가 마련한 선거구제 개편 방안 중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비례대표제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의원 수를 늘려야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고질적 지역주의 타파, 극단적인 양당 체제를 허물어 정치 발전을 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부정적 여론 때문에 의원 증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다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도 의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현행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