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 서울 벤치마킹 투어 프로그램’은 더현대 서울을 통해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학생·소상공인·스타트업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카카오톡 더현대 서울 친구 추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데 이미 9월 말까지의 예약이 마감됐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투어 프로그램은 한 팀당 2명씩 5팀이 참여할 수 있어 총 10명이 진행할 수 있다. 1층 컨시어지 데스크에 집결해 더현대 서울 소속 직원이 소개하는 더현대 서울의 운영 노하우 등 설명을 들으며 지하 1층과 지하 2층, 6층을 40분가량 돌아보는 코스다. 더현대 서울에 ‘없는 것’
더현대 서울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2월 오픈했다. 유통업계 불모지로 불리는 여의도라는 지역과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였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화점 매출과 직결되는 3대 명품 브랜드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없다는 점 역시 약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매출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연매출 1조원 달성도 가능하다.
더현대 서울이라는 명칭에는 ‘백화점’과 ‘여의도’가 빠져 있다. 기존 백화점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트렌디한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와 여의도를 넘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목표를 담아 네이밍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또 이곳에는 ‘기둥’이 없다. 외부의 빨간 크레인과 전통 방패연을 닮은 천장이 지탱하고 있어 가능한 구조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인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 경의 유작으로,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의 자적색 기둥과 단청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외부의 빨간 크레인과 방패연을 모티브로 삼은 천장이 지탱하고 있다. 기둥이 없어 매장 공간을 넓게 활용하면서 탁 트인 개방감을 살릴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몰랐을 디테일
투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무심코 지나쳤던 더현대 서울 곳곳의 디테일과 숨은 기획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더현대 서울 하면 떠오르는 1층 인공 폭포 ‘워터폴가든(Waterfall)’은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을 콘셉트로 실내 공간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끔 조성했다. 캐나다를 기반으로 한 인테리어 디자인 그룹 버디 필렉(Burdi filek)이 설계한 것으로, 우뚝 솟은 나무가 돋보인다. “이 나무는 진짜일까요.” 투어를 진행한 더현대 서울 관계자의 질문에 참여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정답은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다. 나뭇가지와 나무 줄기는 진짜고 나뭇잎은 조화다. 폭포 근처 카페에 앉아 자세히 살펴보면 나뭇잎이 하나하나 묶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층 인공 폭포 가까이에 서면 상쾌한 향기가 난다. 향기 덕분에 숲속 분위기가 한층 더해지는데 이 역시 더현대 서울의 마케팅 포인트다. 향기를 통해 아웃사이드 인의 콘셉트를 더 명확히하기 위해 인공 폭포 주변에 더현대 서울 고유의 향기를 분사하는 자동 방향제를 설치해 놓았다.
조명을 활용한 디테일도 눈에 띈다. 조형물을 비추는 조명의 색상에도 의미를 담는다. 일례로 6월 13일은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이었는데 서울을 방문한 BTS의 팬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와 축하의 마음을 담아 조명의 색상을 보라색으로 조성했다. 또한 고개를 들어 하얀 벽을 올려다보면 수풀이 우거진 듯한 그림자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인공 폭포 위에 솟아 있는 나무의 그림자인가’ 생각하게 되는 이 그림자는 나무 모양의 조명을 의도적으로 비춘 것이다.
더현대 서울은 오로지 상품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은 여타 백화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꼭 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구석구석 둘러보며 머무르고 싶고 자주 오고 싶다는 끌림을 준다. 실제로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더현대 서울을 방문한 이들의 방문 목적은 ‘쇼핑’보다 ‘경험’에 치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한 데는 이곳의 공간 활용 방식도 한몫했다. 더현대 서울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타 백화점과 비교해 브랜드 밀집도가 30% 정도 낮다. 또한 전체 영업 면적(8만9000㎡)의 49%가 실내 정원을 비롯한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의 실내 정원에는 50여 종의 생화를 관리하는 4명의 전문 가드너가 상주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실내 공간이기 때문에 자동 급수 시스템을 도입할 수 없어 전문 가드너가 급수량 등을 관리하고 있다”며 “잘 관리되고 있는 정원의 관리법이 궁금해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에서도 투어를 신청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MZ의, MZ에 의한, MZ를 위한
더현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지하 1층과 2층이다. 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몇몇 매장에서는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도 볼 수 있다. 이곳의 타깃은 MZ세대다. 이들을 겨냥하기 위해 모든 것을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맞췄다. 잔잔한 노래가 나오던 1층과 달리 노래도 BTS와 피프티피프티 등 아이돌 그룹의 최신 곡이 흘러나온다.
지하 1층 식품관 ‘테이스티 로드(Tasty Seoul)’는 1만4545㎡(4400평) 규모로 한국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여 개 식음료(F&B)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이곳에도 1층에 적용된 아웃사이드 인의 콘셉트가 반영됐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면 마주 보이는 푸드트럭은 한강에서 열리는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을 모티브로 했다. 관계자는 트럭을 활용한 푸드코트는 추후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 2층은 그야말로 MZ세대의 놀이터다. 소형 백화점을 콘셉트로 해 다른 층에 올라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카페와 샐러드 전문점, 햄버거 가게 등도 함께 입점돼 있다. 2030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도 가득하다. 관계자는 “지하 1~2층을 기획할 때 주어졌던 미션은 ‘이곳을 임원들이 모르는 브랜드로 채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라운지(Creative Lounge)’에는 마뗑 킴(Matin Kim), 미스치프(MISCHIEF), 시에(SIE), 인사일런스(INSILENCE)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도매스틱 브랜드가 다수 포진돼 있다.
연일 끊이지 않는 팝업 스토어도 더현대 서울의 볼거리 중 하나다. 지하철 연결 통로 바로 앞에 자리한 지하 2층 ‘아이코닉 팝업존(Iconic Pop-up Zone)은’ 1년 치 예약이 연초에 모두 완료된다. 최근 온라인 RPG 게임 ‘디아블로4’부터 온라인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tvN 예능 ‘지구오락실’ 캐릭터 ‘토롱이’까지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것이라면 모두 이곳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지하 2층에는 VIP라고 할지라도 39세 이상은 입장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의뭉스러운 모양을 한 작품이 눈길을 끄는 이곳은 2030세대 VIP를 위한 라운지 ‘와이피하우스(YPHAUS)’다. 보통 VIP 라운지는 입구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와이피하우스는 입구부터 시선을 확 끈다. 스페인 산업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의 작품과 라운지 데스크가 오픈된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MZ세대 맞춤형 구조다. 이 라운지에서는 음료 주문과 픽업이 셀프 서비스로 이뤄진다. VIP가 움직여야 하는 이곳이 정녕 라운지가 맞나 싶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모바일과 비대면이 익숙한 2030세대이기 때문에 원활하게 운영된다고 한다.
이 투어 프로그램은 더현대 서울의 인기 요인이 궁금한 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코스다. 일반인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2030세대를 위한 VIP 라운지를 방문해 볼 수 있고 마케팅 포인트에 대한 설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달 전에나 예약해야 할 정도로 예약이 힘들다는 점과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브랜드 입점 과정 등 초창기부터 더현대 서울의 공간 기획에 참여한 이들의 히스토리와 같은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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