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해도 비트코인은 72%라는 놀라운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겨울)’에서 해빙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상자산이 새로운 자산군으로 자리 잡아 가고 이용자가 다양한 투자법을 접함에 따라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거래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온체인 이용자 세분화 전략’이 대두되고 있다.
소매업과 은행업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 세분화는 오랫동안 검증된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반면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술의 고유한 투명성 덕분에 이용자의 보유 자산, 거래 습관, 상품 선호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를 토대로 거래소는 신규 이용자 확보와 기존 이용자 유지를 위해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체이널리시스는 지갑 사용 기간(2020년 1월 1일 기준)과 보유 자산(1만, 1000만 달러 기준)이라는 두 가지 주요 특성을 기반으로 이용자의 지갑을 초기 리테일, 초기 전문가, 초기 기관, 후기 리테일, 후기 전문가, 후기 기관의 여섯 가지 세그먼트로 분류했다.
세그먼트 분류 결과 후기 리테일 지갑은 거래에 사용된 대부분의 지갑을 포함하지만 지갑당 평균 자산 보유량은 가장 적다. 반면 후발 주자 그룹인 후기 전문가 지갑과 후기 기관 지갑은 대부분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투자자가 급증한 것을 반영하듯 후기 전문가 지갑의 수는 초기 리테일 지갑을 넘어섰다.
거래소는 주로 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므로 각 세그먼트에서 거래소로 더 많은 돈을 이체할수록 거래소의 수익은 높아진다. 따라서 ‘총 송금액’을 살펴보면 어떤 세그먼트가 거래소에 가장 가치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후기 기관 지갑은 이용자 층이 매우 작지만 거래소 송금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후기 리테일 지갑은 자산 보유량이 적어 거래소 수익 창출 기여도는 낮았다. 초기 기관 지갑 또한 자산은 상당했지만 이용자 수가 적어 기여도는 낮았다.
세분화 모델을 검증하기 위해 체이널리시스는 2022년 11월 폐쇄 직전까지 FTX 거래소의 실제 온체인 데이터를 활용했다. 흥미롭게도 FTX의 이용자 층은 개인 지갑의 전반적인 상황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후기 리테일 지갑이 FTX 이용자 기반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반면 후기 전문가 지갑은 이용자 활동 측면에서 꾸준히 2위를 차지하며 초기 리테일 지갑을 앞질렀다. 이는 FTX가 가상자산에 상당히 투자한 신규 투자자를 많이 끌어들이는 독특한 이용자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개인보다 뒤늦게 진입한 기관이 ‘큰손’FTX에 유입된 자금을 살펴보면 가상자산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후기 기관 지갑이 큰 역할을 했다. 이용자 비율이 0.1%로 제일 낮았지만 FTX 총 유입액의 30%를 차지했다. 반면 가장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후기 리테일 지갑은 FTX 송금액 비율이 7.6%에 불과했다. 후기 리테일 지갑이 많았지만 자산 보유량이 대체로 작아 거래소에 기여하는 바가 적었다.
거래소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용자가 플랫폼 사용을 중단하는 비율인 이탈률이다. 초기 리테일 지갑의 이탈률은 주당 15.7%로 가장 높은 이탈률을 보였는데 둘째로 높은 수치인 후기 기관 지갑의 3.8%를 크게 웃돌았다. 후기 전문가 지갑과 후기 리테일 지갑의 이탈률은 각각 0.6%와 0.4%로 가장 낮았고 전체적으로 지갑의 자산 보유량 수준과 관계없이 FTX의 후기 지갑 이용자는 초기 지갑 이용자에 비해 충성도가 높았다.
유입량과 이탈률을 바탕으로 계산한 각 세그먼트의 ‘평생 예상 유입액’은 거래소가 잠재적 수익을 예측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초기 리테일 지갑은 주 평균 유입액이 초기 전문가 지갑보다 많으므로 FTX에 조금 더 가치 있는 이용자 그룹으로 보였지만 후자의 이탈률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거의 5배 더 많은 가상자산을 FTX에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 이용자 간 세분화된 마케팅 전략 펼쳐야
이러한 인사이트는 이용자 확보와 유지 전략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신규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FTX가 에어드랍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세분화 전략을 사용하면 각 세그먼트의 예상 유입량에 따라 각 지갑에 다른 보상을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이용자의 유지율을 높이고자 한다면 높은 이탈률을 보이는 초기 리테일 지갑 세그먼트에 집중하는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 초기 리테일 지갑은 높은 주 평균 유입액을 가지고 있어 이탈률을 조금만 개선해도 상당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고유한 투명성은 다른 자산군이나 기술 산업 분야와 비교할 때 가상자산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 중 하나다. 온체인 데이터로 이용자를 세분화함으로써 거래소는 마케팅, 상품 개발 리소스를 최상의 효율로 배치해 각 이용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세분화의 힘은 오더북 활동 및 기타 이용자 정보와 같은 거래소의 독점 데이터와 결합할 때 더욱 증폭될 것이다.
가상자산 산업이 계속 급성장하고 전통적인 웹2.0 기업들이 웹3.0 모델로 전환함에 따라 온체인 데이터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장에서 고객에 대한 이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국의 거래소들이 온체인 데이터를 더 빠르게 선점하고 더 새롭게 활용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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