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월 만에 한국 은행 연체율 최고치…금감원 “관리 가능한 수준”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가계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가계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청구서’일까. ‘관리 가능한’ 수치일까. 한국 은행의 연체율이 3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반기 경기 둔화와 지난해부터 지속된 고금리가 더해지면서 차주들의 부담이 커졌고 이에 따라 연체율이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은행 연체율은 분기 중에는 상승했다가 분기 말 들어 은행이 연채 채권 관리를 강화하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공식에 따라 1분기가 끝난 지난 3월 하락세를 보였던 연체율이 4월이 되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요악하자면 은행의 연체율은 올해 들어 꾸준히 올랐던 것이다.

금융 당국 “해외와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

금융감독원은 7월 3일 지난 4월 말 기준 한국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이 0.37%로 직전 달 대비 0.04%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0.1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4월 중 신규 연체율(3월 말 대출 잔액 대비 4월 중 신규 연체 발생액)은 0.08%로 전월과 비슷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0.04%포인트 올랐다.

기업과 가계 모두 연체율이 상승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기업 대출 연체율이 0.39%로 전월 말 대비 0.04%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09%로 직전달과 유사했고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46%로 전월 말 대비 0.05%포인트 상승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중 중소 법인 연체율과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각각 0.51%, 0.41%로 전월 말 대비 0.06%포인트, 0.04%포인트 상승했다.

가계 대출 연체율도 0.34%로 전월 대비 0.03%포인트 올랐다. 주택 담보 대출 연체율은 0.21%로 전월 대비 0.01%포인트 상승했고 이를 제외한 신용 대출 등 가계 대출은 0.67%로 0.08%포인트 상승했다.

기업과 가계를 가리지 않고 연체율이 올랐지만 금융감독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 측은 “한국 은행의 연체율은 지난해 6월 0.20%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상승 추세”라며 “이는 코로나19 기간 중 기준금리 하락과 정책 지원 등으로 장기 추세 대비 하락했던 연체율이 글로벌 통화 정책 등의 정상화 과정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 은행권의 연체율 수준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낮고 과거 장기 시계열 대비로도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1월 말 기준 연체율은 0.41%였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전인 2010년부터 2019년 월평균 연체율은 0.78% 수준이었다.

이에 덧붙여 금감원은 한국 은행의 연체율이 해외에 비해서도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3월 말 기준 미국의 상위 100대 은행의 연체율은 1.29%로 한국의 0.37%보다 더 높다. 부실 채권 비율(3월 말 0.41%) 기준으로도 미국(3월 말 상업은행)이 0.72%, 유럽(2022년 말 111개 주요 은행 기준)이 2.28%로 이들과 비교할 때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연체율은 최근 경제 상황 등을 반영해 당분간 현재 추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며 “연체율 추이가 우리 금융 시스템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상각·매각 확대 등 건전성 관리와 손실 흡수 능력 확충을 적극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가계·기업 대출 잔액도 계속 불어나
부채도 연체율도 불어난다…비상등 켜진 은행
이처럼 금융 당국이 상승하는 은행 연체율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아직은 견조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향후 연체율 추이에 대해 앞으로 금리·부동산·실물 경제 향방에 좌우되지만 당분간은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연착륙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여신의 연체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봤다.

PF는 금융 당국이 유심히 지켜보는 사안 중 하나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2.01%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말 1.19%보다 0.8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가장 연체율이 높은 곳은 증권업으로 1분기 말 기준 15.88%를 기록했다. 한편 은행권은 연체율이 0.01%포인트 줄어들었다.

각종 대출의 규모가 불어나는 것은 은행들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5대 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두 달 연속 증가했다. 7월 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 대출 잔액은 678조245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677조6122억원에서 6332억원이 늘었다. 이를 견인한 것은 주택 담보 대출 잔액이었다. 511조40007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725억원 늘어났다.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이다. 금리 인상이 정점에 올랐다는 기대 속에서 부동산·주식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예측에 대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은행권의 대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기업 대출이다. 금감원은 지난 6월 향후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된다면 연체율이 상승해 은행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런데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까지 불어나는 추세다. 5대 은행의 지난 6월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09조1013억원으로 전월(608조6395억원)에 비해 4618억원 늘었다.올해 들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계속해 증가하는 추세다. 3월 들어 602조3887억원으로 6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반년째 늘고 있다. 여기에 전체 기업 대출 잔액도 올해 들어 707조1724억원에서 732조3129억원으로 25조1405억원 급증했다.

이러한 와중에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이 최초로 연체 중인 차주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우리은행은 고금리·실물 경기 회복 지연으로 연체 중인 개인, 개인 사업자,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연체 원금을 줄여 주는 상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7월 4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7월부터 1년간 실시하며 연체 이자를 납부한 고객(부분 납부 포함)을 대상으로 납부한 금액만큼 원금을 자동으로 상환해 준다. 우리은행 측은 원금 상환 프로그램으로 약 40만 명에게 금융비용 절감 혜택이 돌아가고 약 5600억원 규모의 연체 대출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각종 연체율 지표가 불어나는 와중에 오는 9월이 고비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9월로 예정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상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나면 한계에 부닥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란 예측이다. 연체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감원 측은 “금융권 상환 유예 여신의 절대 규모가 3월 말 기준 6조6000억원으로 크지 않고 80% 이상이 은행에서 취급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