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은 접고 미래엔 공격 투자
가전·스마트폰→배터리·전장… 주력 사업 ‘체인지’
확 달라진 LG그룹, 5년간 시총 3배로 껑충

[비즈니스 포커스]
구광모 LG 회장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테크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 회장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테크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했고 신사업에는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선택과 집중’, ‘고객 가치’, ‘실용주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가전·스마트폰에서 배터리·전장으로 LG그룹의 주력 사업을 바꿔 놓았다.

그 결과 배터리·자동차 전장·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성장 사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A(인공지능)·B(바이오)·C(클린테크) 사업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 동력 육성 전략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40대 총수 구광모 회장이 5년 만에 이뤄 낸 변화다.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구 회장이 2018년 만 40세의 나이에 재계 4위 그룹을 이끌게 되자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10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젊은 데다 경영 수업을 받은 지 12년 만에 총수에 올라 경영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구 회장은 지난 5년간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며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취임 후 LG그룹의 매출은 2019년 138조원에서 2022년 190조원으로 37.7%,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6000억원에서 8조2200억원으로 77.4%로 늘었다.

기업 가치도 대폭 끌어올렸다. LG그룹의 시가 총액 규모는 구 회장 취임 당시 88조원(우선주와 LX그룹주 제외)에서 257조5000억원으로 3배가량 늘었다. ‘구광모호(號)’ 5년의 변화를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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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비주력 접고 주력 키우고…선택과 집중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구 회장이 5년 전 (주)LG 이사회에서 취임 일성으로 밝힌 포부다. 구 회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집중해 비주력·부진 사업을 정비했다. 만년 적자였던 LG전자의 스마트폰·태양광 패널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사업은 1995년부터, 태양광 패널 사업은 2010년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철수를 얘기하지 못했던 아픈 손가락이었다.

철수 결정에는 구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스마트폰·태양광 패널의 부진이 다른 부문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업계에선 “LG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도 이 같은 결정에 환호했다.

LG그룹은 사업성이 높지 않은 비핵심 사업들을 빠르게 정리하면서 배터리·자동차 전장·OLED 등 주력·신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수 있었다. 배터리 부문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기업으로 고속 질주하고 있다. 2022년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했고 2022년 말 기준 누적 수주 잔액은 385조원에 달한다.

자동차 전장 부문에서는 LG전자 전장(VS)사업본부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2022년 매출 8조6496억원, 영업이익 1696억원으로 10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해 LG전자 전체 매출의 10%를 넘어서며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의 올해 전장 분야 수주 잔액은 1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OLED 부문에선 LG전자·LG디스플레이가 수년간 공을 들여 온 OLED TV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프리미엄 TV 시장의 주력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LG전자의 올해 1분기 OLED TV 출하량은 73만8000대로 전체 OLED TV 시장점유율의 60%를 차지했다.
구광모 LG 회장이 충북 청주시에 있는 LG화학 양극재 공장에서 배터리 소재 공급망과 생산 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 회장이 충북 청주시에 있는 LG화학 양극재 공장에서 배터리 소재 공급망과 생산 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제공
② ‘A·B·C’로 미래 준비

미래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구 회장은 수십 년간 키워 온 배터리·전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차세대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다음 목표는 인공지능(AI)·바이오(B)·클린테크(C)를 포함한 ABC 사업이다.

LG그룹은 2026년까지 창사 이후 최대인 106조원을 한국 투자에 쏟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그중 43조원을 배터리·배터리 소재, 차세대 디스플레이, AI, 바이오, 클린테크 등 미래 성장 분야의 연구·개발(R&D)에 투입할 계획이다.

구 회장은 그룹 차원의 AI 연구 허브로 설립한 LG AI연구원,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이 한창인 충북 오송 LG화학 생명과학본부, 클린테크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마곡 LG화학R&D연구소 등을 방문하며 미래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올해 5월 사장단협의회에선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3년, 5년 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구본무 선대 회장의 말을 인용해 “일희일비하지 말고 고객을 향한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LG화학 R&D연구소를 찾아 “고객 경험을 혁신할 수 있는 기술 분야를 선도적으로 선점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R&D 투자 규모와 속도를 면밀하게 검토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AI 분야에는 2022년부터 5년간 3조6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바이오 분야에는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해 2027년까지 1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클린테크 분야에도 5년간 1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투자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2021년 말 초거대 AI ‘엑사원’을 공개했고 이를 활용한 3대 서비스 플랫폼(유니버스·아틀리에·디스커버리)을 개발했다. LG화학은 올해 1월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장암 치료제를 보유한 ‘아베오’를 인수하기도 했다.

클린테크 분야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시장 확대로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③ 과감한 인재 등용

구 회장은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취임 후 영입한 임원급 인재만 1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3월 LG그룹의 우수 R&D 인력 유치를 위한 행사인 ‘LG테크콘퍼런스’에 검은색 후드티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LG의 꿈은 사람들의 삶에 행복한 경험을 드리고 상상을 더 나은 미래로 만들어 모두가 미소 짓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혁신’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과 인재’가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75년이 넘는 LG의 역사 속에 간직해 온 원칙”이라고 소개했다.

구 회장이 취임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함께 가장 공들인 분야는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이다. LG그룹의 미래를 주도할 젊은 인재들을 과감하게 발탁해 전진 배치하고 있고 나이·성별·출신과 무관하게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수혈해 LG그룹을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2019년 3M 출신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을 영입한 데 이어 2020년 세계 10대 AI 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LG AI연구원 최고 AI과학자(CSAI)로 합류했다.

2021년에는 백악관 사물인터넷(IoT) 부문 혁신연구위원 출신의 이석우 전무를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장으로 영입했다. 2022년에는 미국 최대 통신사 AT&T 출신의 황규별 전무를 LG유플러스 최고데이터책임자(CDO)에 선임했다.

구 회장은 고객 가치와 미래 준비를 기치로 잠재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있다. 2022년 정기 임원 인사에선 1983년생인 우정훈 LG전자 수석전문위원(상무)이 최연소 임원에 선임됐다.

2022년 인사에서 발탁된 114명의 신임 상무 중 1970년 이후 출생자가 92%를 차지했다. 상무층을 두텁게 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최고경영자(CEO) 후보 풀을 넓히기 위한 포석도 있다.

2018년 29명이었던 여성 임원 숫자도 올해 61명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임원 중 여성 임원의 비율도 2018년 2.9%에서 올해 6.7%로 증가했다.

LG그룹은 2022년 인사에서 4대 그룹 상장사 최초로 오너 일가를 제외한 여성 전문 경영인 2명을 배출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장(부사장)을 CEO에 선임했고 지투알의 박애리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CEO에 앉혔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④ “회장 대신 대표” 역동성 강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는지 가감없이 말씀해 주세요.”

구 회장이 계열사 현장을 방문하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그는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달리 자신을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 달라고 한다. 대표 호칭 사용은 권위와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실용주의적 면모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실용주의 리더십은 LG그룹의 달라진 기업 문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회의 문화가 확 바뀌었다. 구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그룹 차원의 회의체나 모임을 형식보다 실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고와 회의 문화를 개선했다. 400명 이상의 임원이 분기마다 모였던 임원 세미나를 없앴고 필요에 따라 온라인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시무식도 디지털로 전환해 전 세계 26만 명의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신년 인사가 담긴 영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구 회장은 계열사 사업장 방문 사실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원과 조용히 방문하기 때문에 현장의 직원들조차 뒤늦게 다녀간 사실을 안다. 직원들에 불필요한 의전 업무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⑤ ‘고객 가치’ 철학, LG를 바꾸다


구 회장의 핵심 경영 키워드 중 ‘고객 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 구 회장은 2019년 첫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은 고객’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한 이후 매년 신년사를 통해 한층 구체화된 고객 가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2020년에는 고객의 페인 포인트(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고 2021년에는 고객 초세분화(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를 통해 고객을 깊이 이해하는 데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2022년에는 한 번 경험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2023년에는 구성원이 LG의 주인공이 돼 만드는 고객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2년 9월 사장단 워크숍에서도 “미래 준비는 첫째도 둘째도 미래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구 회장은 LG그룹이 1990년 경영 이념으로 선포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의 뜻을 이어 받아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 남보다 앞서 주는 것,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현재 시점에 맞는 새로운 LG그룹만의 고객 가치를 정의했다.

LG그룹에 따르면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사내 시스템의 개인 프로필이나 e메일 서명에 개별적으로 자신이 정의한 고객과 고객 가치를 적어 다른 직원들에게도 고객 가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LG 어워즈가 대표적이다.

LG 어워즈는 고객 가치 관점에서 혁신적 제품이나 기술·서비스를 통해 성과를 낸 사례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기술력이나 사업적인 성과와 무관하게 철저히 고객의 관점에서 심사를 진행하는데, 직원들의 고객 가치 실천 노력이 이어지면서 LG 어워즈의 수상 팀은 시상 첫해인 2019년 27개 팀에서 올해 112팀으로 네 배 이상 늘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이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고객 가치 경영 철학을 전파하자 임직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임직원들이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나가면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고객 경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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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