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석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김옥석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김옥석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憲宗:1834∼1849)이 궁궐을 거닐 때면 궁녀들은 몰래 헌종을 훔쳐보곤 했답니다. 왜냐하면 헌종이 키도 크고 아주 잘생겼거든요. 그리고 시를 잘 쓰고, 말도 잘 타는 남자다운 스타일이라 반하지 않는 여성이 없을 정도였죠. 근데 헌종은 안타깝게도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근데 그 멋진 헌종이 첫 눈에 반한 후궁이 있었어요. 그 후궁과 600일간의 사랑이야기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답니다.”

왕복 1차선 도로. 차 한 대가 지나가면 반대편 차는 기다려야하는 좁은 길을 지나 산 속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를 즈음 서삼릉 태실이 보였다. 일제에 의해 유린된 아픈 역사를 지닌 태실은 그동안 비공개 지역이었다가 2020년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고양시를 넘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이 태실을 지키며 관광객들에게 문화를 알리는 김옥석 문화관광해설사는 국내 몇 안되는 베테랑 해설사로 불린다.

90년대 초 국내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문화인재양성사업인 문화유산해설사를 시작으로 현재의 문화관광해설사까지 30여 년간 해설사의 명맥을 이어 온 김옥석 문화관광해설사는 맛깔스런 말솜씨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태실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역사의 현주소를 다시금 짚어준다. 그를 만나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최근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각광받는 문화관광해설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다.

현재 근무하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조선의 쉰 네 분의 왕, 스물 두 분의 왕의 후손들의 태실을 모셔둔 곳입니다. 원래 태실은 전국의 명산이라 불리는 곳에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이 태실을 파헤쳐 대부분의 유물을 일본으로 가져가버렸죠. 이후 똑같이 생긴 비석을 만들어 한 일(日)자 모양의 태실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때가 1925년입니다.”


태실[胎室] : 옛날 왕가(王家)에 출산이 있을 때 그 출생아의 태(胎)를 봉안하고 표석을 세운 곳.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굉장히 화가 나신 듯 한데요.
“이곳에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오면 늘 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화가 납니다. 일본인들 마음대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망쳐 놓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원래대로 한다면 욕이 나오지만 오늘은···(웃음)”

원래는 태실이 명산에 위치해 있었군요.
“그렇죠. 전국에서 가장 좋은 기운이 모인 명산에 이 태실을 모셔뒀어요. 그 이유는 조선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좋은 기운을 받아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태실은 엄마와 아기의 연결고리인 탯줄입니다. 우리 조상들과 후손들의 연결고리, 즉 생명줄인 셈이죠. 그런데 일본인들이 이 생명줄을 잘라 놓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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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뿐만 아니라 후궁들의 묘도 이곳에 있네요.
“네. 그리고 이곳 태실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지요. 헌종이 아주 사랑하고 아꼈던 후궁이 있었어요. 헌종은 그 후궁을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어요. 후궁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를 두고 ‘일견종정(一見鍾情)’이라고 합니다. ‘첫눈에 반했다’는 뜻이죠. 그 둘의 600일간의 사랑이야기가 이 곳에 기록돼 있고, 그 후궁의 묘도 이곳 태실에 있습니다.”

태실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이곳은 2만여 평(66,115.7025m2)정도 됩니다. 방문객들이 오시면 출발지부터 해설을 시작하는데 이동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원래부터 말씀을 재미있게 잘하는 스타일이셨어요.
“소싯적부터 말은 잘했죠.(웃음) 원래 수학교사였어요. 교사들은 쉼 없이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말하는 건 자신 있어요.”


“수학교사로 사회생활 시작해 문화관광해설사로···1991년 경주서 처음 해설사 입문”


수학교사이셨군요. 언제부터 하셨나요.
“1971년에 교대를 졸업해서 경주 중·고등학교 수학교사로 근무했어요. 사실 1991년 경주에서 문화유산해설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었는데, 그때 저도 참여했었어요.”

해설사 경력이 굉장히 오래되셨네요. 교사를 하면서 해설사를 함께 하셨던 건가요.
“당시 지인 중에 신라문화원에 근무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께서 한번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때는 해설사 기준이 아주 까다로웠어요. 연봉, 직급, 자산 등의 일정 기준을 넘어야만 지원이 가능한 시절이었죠. 다들 50세가 넘으신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전 청강생 막내로 허드렛일 도와가며 봉사했죠.”

당시에는 몇 명을 뽑았었나요.
“우리나라 최초로 문화유산해설사를 뽑았던 시절이었는데, 스물네명이 합격했어요. 주말마다 관람객들을 데리고 불국사, 석굴암, 박물관 등 유적지로 해설하러 다녔어요. 당시만 해도 도슨트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지금 보면 국내 첫 도슨트인 셈이었죠.”

그럼 이곳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언제부터 하신건가요.
“2005년에 고양시로 이사 오면서 시작했어요. 당시 해설사 모집을 해서 지원했더니 담당자가 제 이력서를 보곤 “경주에서 하셨어요?”라며 놀라더군요. 왜냐하면 경주는 문화유산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해설사들의 실력이나 노하우의 깊이가 깊죠. 그때부터 시작해 문화관광해설사 전국회장, 고양시 회장 등을 역임했죠.”

경주에서의 해설사 경험이 도움 됐을 것 같은데요.
“많은 도움이 됐죠. 사실 처음에는 고양시의 문화관광해설사의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서 무척 애를 먹었어요. 해설사들의 권위나 시스템 정비를 주도해나가고 있습니다.”


“전국 각 지역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문화관광해설사, 관람객의 연령대에 따라 문화재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주는 스토리텔러 역할”


구체적으로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떤 역할인건가요.
“각 지역에 위치해 있는 문화재를 관람객들에게 소개를 해주는 역할이죠. 관람객들의 나이가 아주 다양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미취학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 구분없이 방문하다보니 이곳의 역사부터 스토리까지 연령대에 맞게 알려주는 ‘스토리텔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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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해설사계의 어른이시군요. 요즘 문화관광해설사에 도전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선발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 지자체에서 모집공고를 내고 선발하게 되는데요. 전국적으로 시기나 기준이 다 달라요. 일반적으로 서류전형과 필기/실기시험, 면접 그리고 교육으로 진행되는데, 서류의 경우 지원신청서, 개인정보 동의서, 자원봉사활동서약서 등을 제출하면 됩니다. 고양시의 경우 현재 6기까지 선발해 활동하고 있어요.”

매년 선발하지 않는군요.
“맞아요. 예를 들어, 고양시의 경우 태실을 포함해 기존 문화재청에서 선정한 문화유적지가 있고, 새롭게 지정될 때마다 수요에 의한 선발을 하고 있어요. 현재 고양시에 37명의 해설사가 있는데, 얼마 전까지 코로나19로 문을 닫아 활동을 못하다가 최근 다시 재개했습니다.”

요즘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외국어가 가능한 해설사가 우대받겠네요.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해설사를 별도로 뽑는 지역도 있어요. 그럼 그에 맞게 공인어학성적을 별도로 제출해야 합니다. 문화관광해설 경력이 있거나 사학, 역사교육학, 고고학 등 관련학과 졸업자나 경력자들도 우대대상이 되죠.”

필기/실기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필기시험은 각 과목마다 70점 이상이 합격선이고, 실기는 5분 스피칭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주제로 5분 간 심사위원들 앞에서 해설을 시연하는 거죠. 요즘엔 저도 경력이 오래돼서 해설사를 선발할 때 면접관으로 가기도 합니다.”

감독관으로서 어떤 지원자에 점수가 조금 더 가나요. 아니면 반대의 케이스라도.
“실기시험을 볼 땐 대부분 긴장하기 마련이죠. 떨려서 말을 더듬거려도, 실수를 해도 얼마나 연습했는지 면접관은 알 수 있어요. 그 중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은 태도예요. 예를 들어, 해설사 시험을 보러 왔는데 슬리퍼를 신고 온다거나,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오면 마이너스예요. 예전에 20대 청년이 지원했는데, 계속 휴대폰을 들고 시험장을 들락날락 거리는 거예요. 면접관 한 분이 주의를 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반복됐죠. 만약 그 지원자가 합격을 했더라면 현장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시험에 어떻게 임하느냐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필기·실기시험 합격 후 2주간 교육, 선배와의 현장실습 통해 노하우 배워···일일 5~7만원 일급, 지자체별로 차이 있어”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교육인데, 원주에 있는 공사에서 2주간 교육을 받습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오셔서 해설사가 갖춰야할 상식, 태도, 문화재와 관련된 내용들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교육을 이수하면 각 지역의 현장에 배치돼 3개월 간 수습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땐 선배들을 따라 다니면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죠. 그리고 배치가 되면 1년 근무 순환제로 운영되고 있어요. 해당 지역의 다른 유적지로 옮겨 근무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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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가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화해설은 역사 그대로만 이야기하면 사실 재미없어요. 해설사 사이에서 하는 농담이 ‘해설사는 뻥쟁이’라는 거예요. 약간의 재미를 가미하고 쇼맨십이 들어가야 관람객들이 집중하거든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엔 동화 구연처럼 해야 집중력이 높아지죠. 저희야 잘 알지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분들도 많거든요. 그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게 조금의 과장은 필요합니다.(웃음)”

문화관광해설사도 일정 페이가 지급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요.
“이것도 지자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어느 지역은 일당 7만원을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5~6만원을 지급하는 곳도 있어요. 보통 한 달에 10일 정도 근무를 하면 50~70만원 사이죠. 이 외에도 해설사들은 지역 관광투어 해설도 종종 하는데, 그 경우엔 별도 수당이 나오기도 합니다.”

해설을 하시면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이곳이 산 속이잖아요. 여름에는 모기나 벌레들이 아주 많아요. 얼마 전에 관람객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는데, 오솔길에서 뭔가가 제 앞으로 꿈틀대며 가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보니 뱀이었어요.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를 지르며 냅다 관람객한테 뛰어갔는데 그 모습에 더 놀랐죠. 꽤나 큰 뱀이었는데 종종 나오기도 한답니다.”

일하면서 느낀 장단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흰 예약이 있으면 날씨와 상관없이 야외 활동을 해야 되거든요.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는 곤욕이죠. 해설을 하면서도 땀이 온 몸을 타고 주르륵 내릴 때면 좀 힘들어요. 특히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묘가 있는 곳이잖아요.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요.”

산 속이고 태실과 묘가 있어 더욱 그렇기도 하겠어요.
“언젠가 후궁의 묘 앞에서 해설을 하는데 자꾸 향냄새가 나는 거예요. 둘러봐도 향을 피우는 곳이 없어 관람객들에게 “향냄새 안 나세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무도 안 난다고 하더군요. 기분이 이상해서 해설을 마치고 검색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그날이 정조의 후궁인 성덕임의 제삿날이었어요. 혼자 그걸 보는데 소름이 돋더군요. 그래도 제가 이 태실의 지킴이잖아요. 그 다음날 성덕임의 묘 앞에서 향을 피워놓고 절을 올렸죠.”

장점은 뭔가요.
“아이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예요. 사실 요즘 아이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다고 하잖아요. 이곳을 방문한 어린이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웃음)”

최근 들어 문화관광해설사를 희망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문화관광해설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점인 것 같아요. 경기가 안 좋아지고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선조들이 일궈 놓은 문화재를 방문해 그들의 지혜를 얻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 중심엔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있답니다.(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