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투자자라면 투자에 앞서 무엇을 확인할까. 유튜브와 주식 커뮤니티에서 해당 산업을 분석한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다 완벽을 기하는 투자자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참고할 것이다. 애널리스트를 흔히 금융 투자업의 ‘브레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들여 쓰는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애널리스트들이 만든 무형 자산이자 한국 경제, 산업 분석의 하이라이트다. 이들은 분석 대상 기업·국가를 직접 찾아가거나 데이터베이스 전문 제공 기업의 숫자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산업, 경제의 변화를 보고서로 낸다. 애널리스트들이 다양한 지표를 종합해 쓴 리포트는 펀드매니저들의 투자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루 보고서로 남기엔 아깝다. 이들의 보고서는 때로는 투자 정보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다음은 그들이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진 보고서, 그중에서도 리서치센터장들이 뽑은 올해 상반기를 장식한 추천 리포트다.①공동 1위
‘Great company, but Bad stock’ 올해 4월 12일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만든 보고서가 발표됐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의 에코프로 보고서다. 올 들어 2차전지 투자 열풍을 주도하며 주가가 폭등한 에코프로는 주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다.
김현수 애널리스트는 올해 주가가 7배나 뛴 에코프로에 투자 과열을 경고하며 4월 중순 한국 증권사 중 처음으로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김 애널리스트는 “위대한 기업이지만 현시점에서 좋은 주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2차전지 산업의 미래 실적 가시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7년 후의 가치를 현재로 끌어와 주가에 선반영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가 나온 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에는 ‘잘나가는 에코프로 주식을 왜 팔라고 하는 거냐’며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로 개인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금융감독원에는 올 들어 에코프로 그룹주를 필두로 2차전지 관련주가 급등하고 공매도 물량이 쌓여 가는 과정에서 일부 애널리스트와 운용사들이 담합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고 2차전지 관련주에 쇼트(매도)를 치고 있다는 개인 투자자 민원이 쏟아졌다. 김 애널리스트는 금감원의 조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후폭풍을 겪었다. 증권가에선 “‘매도’를 낸 애널리스트가 금감원에 불려가는 모습을 모든 여의도 사람들이 봤는데 앞으로 무서워 리포트를 낼 수 있겠느냐”는 허탈감이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일부에서는 애널리스트가 할 일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주식 시장을 예측할 수 있지만 그들의 말에는 ‘책임’이 없다. 리서치센터장 역시 이번 상반기 추천 보고서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A센터장은 “상반기 비상식적으로 상승했던 2차전지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충분한 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매도’ 의견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오히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추천했다. 또 다른 센터장 역시 “맞고 틀리고를 떠나 애널리스트의 소신을 밝힌 보고서”라고 한 표를 보탰다.
① 공동 1위
인구론, 새로운 40년을 준비한다 이번 투표에서 에코프로 보고서와 쌍벽을 이룬 보고서가 있다. 박소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가 2월 10일 펴낸 ‘인구론, 새로운 40년을 준비하다’다. 43쪽에 걸친 이 보고서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자산 시장 전망에 대해 다뤘다. 뾰족한 시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인상적인 보고서다.
박 애널리스트는 올해 60년 만에 중국 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한 점, 인도의 인구가 중국 인구를 처음으로 앞지른 점 등 두 가지 변곡점을 갖고 “새로운 40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인구 구조 변화는 한국에 큰 기회 요인으로, 저가(低價) 물량 공세로 위협을 가하던 중국의 대열 이탈은 한국·일본·독일 등 제조업 강국들엔 분명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는 차별화된 의견이다.
그는 또한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구론을 통해 제시했다. 전 세계 노동 가능 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데다 신(新)냉전과 탈세계화의 흐름 속에 공급망을 내재화하려는 시도가 확산되며 생산 시설의 본국 회귀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센터장들은 ‘군더더기 없이 잘 쓰인 보고서’로 그의 리포트를 들었다.
② 최다 애널리스트
김준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센터장들이 뽑은 최고의 리포트에 두 개의 리포트를 올린 이도 있다. 한경비즈니스의 다년간 자동차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인 김준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다.
김 애널리스트는 3월 13일 발간한 ‘Power of Fleet’와 5월 3일 노우호, 최설화 애널리스트와 함께 펴낸 ‘EV War #4: China’s Attack’으로 센터장들이 뽑은 최고의 리포트에 2개 리포트를 올렸다.
‘Power of Fleet’은 자동차 업종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고 있음을 자료로 명백하게 제시하며 자동차 업종을 코스피 내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로 제안한 보고서다. ‘EV War #4: China’s Attack’은 중국의 전기차 굴기 현상을 다양한 시각 자료로 보여주며 시사점과 위협 요인을 분석했다.
C 센터장은 “시장에서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던 중국 시장과 업체들의 굴기를 숫자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③ 최다 업종
신산업 : AI 이번 설문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보고서를 요약하면 ‘신산업’이다. 센터장들은 미래 성장 산업을 분석한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 올해 챗GPT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인공지능(AI)을 분석한 보고서가 압도적이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가 2월 1일 발간한 ‘생성 AI,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하다’, 2월 3일 키움증권 리서치센터가 공동으로 펴낸 ‘챗GPT : 다가온 AI 세상’, 김종영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3월 6일 발간한 ‘챗GPT를 활용한 혁신적인 리서치 방법론과 활용 사례 분석’,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가 3월 29일 쓴 ‘Everything Everywhere AI at Once-AI가 불러온 신산업 혁명’, 백길현·이수림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가 5월 10일 공동으로 쓴 ‘AI 고도화와 반도체 Paradigm Shift’, 김세희·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2월 13일 펴낸 ‘2023년 AI, 테마에서 산업으로’ 등이 표를 받았다.
특히 김종영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주도 산업군에 대한 투자 의견을 제시하는 좋은 리포트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챗GPT 열풍 초입에 그 활용법을 제시하는 특이한 사례가 된 것 같아 일반적인 증권사 리포트의 틀에서 벗어난 시도였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받았다.
이 밖에 로봇 분야도 추천 리포트에 이름을 올렸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2월 27일 쓴 ‘변화하는 로봇 패러다임, 시장을 열어라’ 등이다.
④ 기타 이슈
2차전지, 부동산, 게임…기타 산업에서도 인사이트가 빛나는 분석 자료가 쏟아졌다.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2월 14일 쓴 ‘건설산업 : PF STATUS QUO’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자본 시장 전체로 확대될 리스크가 커진 시점에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숫자를 기반으로 제시한 유일한 리포트”라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산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PF를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고 복잡한 주제를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 냈던 가장 시기적절한 리포트라는 평가다.
임희석 애널리스트가 3월 15일 발간한 게임 산업의 ‘판호실록 : 중국 재개방 시대의 투자 ’는 게임 시장 전면 개방을 전제로 한 보고서로, “중국 시장의 현황 및 구체적 특성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방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를 도입 부분에 제시하고 한국과 차별화되는 중국 게임 시장 분석에 기초해 중국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 있는 장르를 규명해 수혜가 예상되는 한국 기업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투자 판단에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민재·이재광·정연승·최영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6월 8일 펴낸 ‘그린에너지·방위산업-미중 패권 경쟁 속 기회 요인’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환경하에서 원전, 방위 산업, 조선업, 정유·화학 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변준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5월 17일 쓴 ‘불황매호황매’, 정원일·김기룡·정태준·공문주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가 쓴 ‘4인4색, PF와 부동산시장 관찰기’,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위대한 유산 100년만에 온 내연기관차 투자 회수기’, 한화투자증권의 ‘집 밖으로 나온 14억’,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조선? 계획대로 되고 있어’,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의 ‘2차전지 산업, 더 큰 그림을 그려도 좋다’, 이의진 흥국증권 애널리스트의 ‘폴더블, 중국과 함께 다시 고성장’이 센터장들이 뽑은 올해 상반기의 리포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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