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의 징표’ 다이아몬드의 위기…“모든 것은 허구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합니다(A Diamond Is Forever).”

바로 이 문장입니다. 이 문장 하나로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 연인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징표’가 됐고 모든 신부들이 원하는 사치품이 됐죠. 이 문구를 만들어 낸 곳은 영국의 다이아몬드 업체인 드비어스(De Beers Group)입니다.

지금도 드비어스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손을 맞잡은 신랑 신부의 손을 배경으로 이 문구가 떠 있습니다. 드비어스는 한때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90%를 독점했던 기업입니다. 다이아몬드업계에서는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은 존재지요. 그전까지만 해도 부자들만 찾던 다이아몬드를 ‘모두가 원하는 사랑의 약속’으로 바꿔 놓은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사랑의 징표’인 다이아몬드업계가 위기라고 합니다. 물론 어느 분야든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죠. 그런데 지금 다이아몬드업계가 마주친 위기는 조금 더 근본적이고 심각합니다. 다이아몬드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징표’라는 다이아몬드가 지닌 그 가치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약속, 흔들리는 ‘진짜’와 ‘가짜’의 가치
지금이야 ‘로맨틱한 사랑’이 보편화돼 있고 결혼 또한 이 로맨틱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상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싹튼 것은 이제 겨우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서 그 어느 보석보다 귀한 가치를 갖게 된 것 또한 채 100년이 안 된 일입니다.

드비어스그룹은 1948년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판촉을 위한 광고 문구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기였습니다. 부자들이 주 고객이던 다이아몬드 산업도 위기를 맞았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드비어스그룹은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 멋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의 하나로 시간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는다는 다이아몬드의 특성을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욕망’과 결부함으로써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다이아몬드에 대한 환상’을 완성한 것입니다.

드비어스그룹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의 90%를 독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자극한 스토리텔링은 드비어스를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그룹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합성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천연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귀한 보석’이라는 데 존재합니다. 사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널리고 널린 ‘탄소’를 주성분으로 합니다. 흔히 연필심 등으로 쓰이는 흑연도 탄소로 만들어지는데 이 탄소의 원자 배열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고 ‘흑연’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다이아몬드는 최소 지하 200km의 맨틀에서 10억 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지구의 지각과 핵 사이의 부분을 가리키는 맨틀은 땅 아래 약 30km에서 약 2900km까지입니다. 맨틀에 있던 탄소 덩어리가 지구 내부의 높은 열(섭씨 영상 900∼1300도)과 높은 압력(3만 기압)을 받으면 원자들의 결합 구조가 다이아몬드의 구조로 변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랜 ‘자연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합성 다이아몬드입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탄소의 배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더 투명하고 더 크며 더 색깔이 고운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아름답고 완벽한 다이아몬드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합성 다이아몬드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다이아몬드가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해 빠진’ 보석이 된 것입니다.

넷플릭스에서 2022년 이와 관련해 선보인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인터뷰에 절대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드비어스의 회장을 포함해 다양한 다이아몬드업계 관계자의 입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다이아몬드의 진실’을 들려줍니다. 정확히 말해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통해 ‘영원한 사랑의 가치’라는 환상을 구매합니다. 이 환상을 위해 ‘천연 다이아몬드가 확실하다는 보증서’에 기꺼이 거액을 지불하죠.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상당수의 ‘합성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와 섞여 판매되는 중입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공업용 다이아를 영롱한 빛을 지닌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재가공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육안으로 보기에 천연 다이아몬드와 합성 다이아몬드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업체들은 다이아몬드는 판매할 때 굳이 ‘천연’이라는 꼬리표를 강조합니다. 소비자들이 이것을 ‘진짜(천연)’라고 믿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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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위협받는 다이아몬드업계

지금도 다이아몬드는 가장 인기 있는 ‘사랑의 징표’이지만 사실상 다이아몬드업계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결혼 예물 시장에서 다이아몬드의 인기는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죠. 밀레니얼이라는 새로운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유일한 증표’로 보지 않게 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입니다. 드비어스가 성공을 거머쥔 열쇠였던 ‘다이아몬드의 환상’이 약해지면서 이미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드비어스의 독점 체제는 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비어스의 독점 체제가 깨진 틈을 파고들어가 다이아몬드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곳 중 하나는 바로 러시아입니다. 드비어스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는 강력한 라이벌 중 한 명인 레브 레비브와 손잡고 그에게 러시아 내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는 등 다이아몬드 산업을 키워 왔습니다. 쉽게 말해 러시아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드비어스의 유통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이렇게 키운 다이아몬드 산업은 오랫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숨은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데도 다이아몬드의 역할이 컸죠.

그런데 최근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바로 이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산업’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의 수입을 올해 말부터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말 미국 또한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겨냥한 다이아몬드 업체들의 제재에 나섰습니다. 미국은 이를 위해 최근 무장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그룹’을 겨냥했는데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업체 ‘마이더스’와 ‘디암빌’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들 기업의 자금은 바그너그룹의 돈줄을 넘어 푸틴 대통령의 통치 자금으로도 일부 흘러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명분으로 삼은 다이아몬드업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최근 들어 다이아몬드 가격이 ‘반값’으로 떨어지는 등 타격을 받기도 했죠. 미국 CNBC는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지난해 2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현재까지 약 18% 떨어졌고 향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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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부상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합성 다이아몬드’가 섞여 든 시장에서 ‘다이아몬드의 환상’은 이미 희석됐고 전쟁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시장에 치명타가 됐죠. 하지만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다이아몬드업계에는 ‘새로운 시장’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랩그로운 다이이몬드(Lab Grown Diamond)’입니다. 새로운 용어를 입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합성 다이아몬드’를 일컫습니다.

지난 6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빈 초대를 받아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모디 총리가 미국의 영부인에게 선물해 준 다이아몬드가 큰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인도 수라크 지역에서 만들어진 7.5 캐럿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인도의 수라크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90%를 가공하고 있는 지역이죠. 이미 이곳 가공 업체의 25~30%는 천연이 아닌 ‘합성 다이아몬드’를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합성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국가를 대표하는 선물로 전해진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업계의 위기는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서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합성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진짜’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그 욕망에 기반해 ‘허구의 가치’를 만들어 낸 산업이 비단 다이아몬드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합성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만을 고집하다가 위기를 맞이한 업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집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