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구역에서 특히 건물이 노후할수록 조합원이 내놓는 재산은 쓰러져 가는 건축물이라기보다 사실상 새 아파트를 지을 ‘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사정이 부동산의 가치에도 반영돼 실제로 시장에서는 ‘대지 지분’의 크기에 따라 대지 지분 3.3㎡당 얼마라는 식으로 거래되는 관행이 있다.
이 때문에 특히 조합원의 출자 자산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감정 평가액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종전 자산 감정 평가나 현금 청산 감정 평가에서도 대지 지분의 크기가 잘 반영돼야 할 필요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재건축·재개발 지역 내 노후화된 복합 부동산(토지+건물)의 거래 가격의 구성을 따져보면 건물 가격보다 토지 가격의 비율이 훨씬 높다. 노후화된 건물에서 거주의 목적이나 상업용으로서의 사용 가치보다 낡은 건물을 없앤 맨땅에 새 건물을 지었을 때를 생각한 가치로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분 건물을 구성하는 건물과 토지 중에서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지 부분을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101호, 102호 등 호수가 부여된 구분 건물은 건물 부분(전유 부분)과 대지권 부분이 합쳐져야 하나의 물건으로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노후화된 재건축 예정의 아파트나 상가는 건물 부분이 아닌 평당 대지 지분으로 계산되고 거래돼야 한다는 관념이 형성돼 있다. 이 관념을 감정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문제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동일 평형대라도 동별로 대지 지분이 6.6~9.9㎡(2~3평)씩 차이가 나는 곳도 있다. 대지 지분 3.3㎡에 1억원 이상 가는 지역도 많으니 예민한 문제다. 당연히 대지 지분이 많을수록 높은 거래 가격이 형성되고 종전 자산 평가 등 감정 평가 시 더 높은 평가액을 기대한다.
문제는 이렇게 대지 지분을 기준으로 거래하는 일반인의 관념과 시장의 거래 관행, 대지 지분의 크기가 큰 것이 실제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기여하는 정도를 감정 평가에 어떻게 반영해 낼 것인가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구분 건물은 전유 부분 면적의 차이와 층별 효용, 조망·개방감 등의 위치별, 일조·채광 등의 향별 효용 등이 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철거가 예정된 낙후된 재건축 상가, 재건축 아파트는 대지 지분 면적의 대소가 거래 가격, 가치 형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지 지분이 단지 내 다른 상가보다 크다면 옆 동 아파트보다 우리 동이 더 크다면 응당 감정 평가 금액에도 반영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정 평가 규칙 기타 실무 규정 등을 통틀어 이와 같은 특수 물건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감정 평가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대지 지분의 차이가 일반적인 수준을 웃돌더라도 구분 건물 감정 평가 방법으로 규정된 일반론적인 산식에 반영해 내기가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규정과 현실의 괴리, 어떻게 좁혀 낼까. 유사 업무 처리를 많이 하는 감정평가사의 기량과 창의성·논리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필자는 대지 지분이 현저하게 큰 아파트 상가에 합리적인 조건을 상정한 조건부 평가를 통해 대지 지분의 거래 관행을 반영한 평가를 여러 번 했다. 업계에서는 예외적인 시도다. 원칙대로 면밀하게 짜여 있는 감정 평가의 틀에 맞추다 보면 특수 상황, 특수 물건의 현실을 반영해 내기 어렵다.
조건부 감정 평가는 세부적으로 세워야 할 기준이 많고 복잡해 일반적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이런 평가를 하는 감정평가사는 고생하게 된다. 하지만 의뢰인이 대지 지분이 많다는 죄로 손해를 봐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은가.
따라서 이러한 특수성을 반영하려는 감정평가사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듯이 현실과 법리가 괴리를 보이는 영역에서 그 불합리를 교정하려는 노력을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 논리의 타당성이 법원에서 한두 차례 인정되다 보면 관행이 정착되고 감정 평가 관련 규칙과 법리도 정착되고 발전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고 조금씩 성공의 결실을 보고 있다.
박효정 로안감정평가사사무소·토지보상행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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