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수명을 기준으로 벼락에 맞을 확률은 1만5000분의 1이다. 거주 지역, 외출 빈도, 신장 차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극단적으로 낮은 확률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외출할 때마다 벼락 맞을 우려로 가슴 졸이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편 대한민국에서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약 815만 분의 1. 벼락 맞을 가능성의 500분의 1도 안 된다. 이런 희박성에도 불구하고 복권 구매 때마다 우리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희망만큼 비이성적인 것도 기대만큼 강한 중독성을 지닌 것도 없기 때문이다.14번 로또 당첨의 비법

극한의 저확률을 뚫고 무려 14번이나 1등 당첨을 기록한 사나이가 있다. 루마니아 출신 스테판 만델(Stefan Mandel) 씨다. 1950년대 후반 공산주의 치하 루마니아에서 2번의 복권 당첨 후 호주로 이주한 그는 본격적인 로또 작전으로 무려 12번의 거대 상금을 거머쥔다.

경제학자였던 만델 씨는 타고난 운 대신 수리 계산법으로 로또를 공략했다. 그가 말하는 당첨 비법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만큼이나 단순하면서 허탈하다. 먼저 해당 복권의 가능한 조합 총 개수를 계산하고 잭팟 상금이 조합 수의 3배 이상이면 충분한 자금을 모아 모든 복권을 사들인다는 것.

예를 들어 보자. 1부터 40까지 6개의 숫자를 선택하는 복권은 383만8380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그 복권 한 장이 1000원이라면 38억3838만원을 모아 380만여 각기 다른 조합의 티켓을 전부 구매하면 된다. 당연히 그중 한 장은 1등에 당첨될 것이고 만약 상금이 50억원이었다면 투자한 자금 38억원을 뺀 12억원의 수익금이 생긴다는 것.

여기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첫째, 그는 이 정도 거금을 투여할 만큼 갑부였나. 둘째, 몇 백만 가지 숫자 조합을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고 기록했나. 셋째, 그 많은 양의 복권을 어떤 방식으로 구입했나. 넷째, 투자금을 제외한 당첨금은 충분한 이익이었나. 다섯째, 그래서 그는 지금 부자인가. CBS·로이터·뉴욕포스트에 게재된 기사들은 이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거액의 자금을 위해 만델 씨는 공동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또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숫자 선택 알고리즘을 고안해 냈다. 이 알고리즘이 입력된 컴퓨터와 프린터가 모든 숫자 조합의 티켓을 출력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매장 구매 대신 본인의 티켓을 직접 인쇄할 수 있었기 때문에 380만 장의 대량 구매가 수월했던 것이다.
자신이 고안한 알고리즘을 검토하고 있는 스테판 만델 / 사진=CBS
자신이 고안한 알고리즘을 검토하고 있는 스테판 만델 / 사진=CBS
이런 방식으로 1950년 후반 루마니아에서 처음 탄 상금은 1만9000달러. 그의 동료들과 수익을 나눈 결과 고작 3700달러만이 남았다. 20년이 흘러 1987년 호주에서 13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됐을 때 발생한 수익금은 약 9만7000달러. 규모는 커졌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더 큰 잭팟에 목말랐던 만델 씨는 거대 상금이 걸린 미국 복권에 도전한다.무너진 복권의 바벨탑
만델 씨의 시선은 1988년 도입된 버지니아 복권(Virginia Lottery)에 꽂혔다. 1부터 44까지의 숫자가 사용됐으니 가능한 조합은 약 700만 개에 불과했다. 그의 팀이 익숙한 2500만 개 조합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회사까지 설립한 만델 씨는 멜버른의 한 창고에 16명의 직원을 두고 2524명의 투자자를 모집한다.

1992년 이윽고 2700만 달러의 당첨금 대기회가 왔고 만델 씨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잭팟에 필요한 약 700만 개의 숫자 조합을 인쇄해 미국으로 발송했고 총 640만 장의 복권을 확보했다. 운도 따라줘 잭팟을 포함한 300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거머쥐었다. 물론 2524명의 투자자들로 분할되고 세금을 제한 1인당 실수령액은 몇 백만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다. 버지니아 복권을 계기로 만델 씨는 미국연방수사국(FBI)·미국중앙정보국(CIA)·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조사를 받게 된다.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지만 복권 회사와 일부 투자 조합원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려 4년간 몸살을 겪은 그는 1995년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후 만델 씨는 회사와 팀을 해체하고 열대 섬 바누아투로 은퇴해 89세인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만델 씨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수법을 모방한 투자가 늘어났고 급기야 미국과 호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는 이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만델 씨의 바벨은 이렇게 무너졌다.집합 투자의 기록들
사실 만델 씨가 사용한 공동 투자 기법은 긴 역사를 지닌다. 시작은 1694년 국가 복권이 영국에 등장한 직후였다(왕실 주관 복권은 이보다 훨씬 앞선 1566년). 당시 복권 장당 가격은 5~10실링으로 서민 대중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이 때문에 이른바 ‘조각 구매’가 등장하게 됐고 분할된 금액만큼 상금도 분할 배분하는 방식이 통용됐다.

‘영국 조지 시대의 모든 것(All Things Georgian)’ 저자에 따르면 복권 공동 구매는 당시 신문 광고에 등장할 만큼 대중화됐다. 1798년 4명의 일용 노동자들이 공동 구매한 복권으로 2만 파운드(현재 120만 파운드, 약 20억원)의 상금에 당첨되면서 그 열기가 정점에 달했다.

출발은 가격 장벽 때문이었지만 당첨 확률 측면에서도 복권 컨소시엄 혹은 연대 투자의 강점은 뚜렷하다. 20세기 후반 가속된 정치 권력의 탈중앙화는 그 강점을 더 키웠다. 중소 단위 지자체가 독립 세수 확보를 위해 각종 복권을 남발하면서 만델식 계산법에 따른 숫자 조합 대비 상금 비율이 더 커진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만델 씨 ‘덕’에 1인당 구매 수량 제한이 생겼지만 집합 투자 열기만은 꺾지 못했다. 공동 투자가 활성화된 영국에서는 최상위 당첨금 5건 중 1건이 이런 집합 투자자들의 차지라는 통계가 있다. 또 2015년 페이스북에서 결성된 투자 연대가 거액의 상금을 타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반의 팀 투자가 더 활성화됐다.
2770억원의 잭팟을 터트린 집합투자팀 ‘쓰리 아미고스’ / 사진=NPR
2770억원의 잭팟을 터트린 집합투자팀 ‘쓰리 아미고스’ / 사진=NPR
하지만 집합 투자는 신뢰가 생명인 만큼 안정적 대면 관계에 기반한 팀들이 많다. 일례로 미국 뉴저지 주 ‘오션스 16’은 직장 내 복권클럽으로 16명이 3년간 꾸준히 투자했고 그 결과 2013년 약 8600만 달러(약 1090억원)의 상금을 거머쥔 사례가 있다. 이보다 앞서 2012년 메릴랜드 주 공립학교 직원들이 결성한 ‘3명의 친구들 (Three Amigos)’은 2억1860만 달러(약 2770억원)라는 초거대 잭팟을 터뜨리기도 했다.복권 조합의 기적, 스페인 소데토 마을
한 마을 전체가 집합 투자로 명운을 뒤집은 사례도 있다. 스페인 북동부 작은 마을 소데토(Sodeto)는 공동체 투자의 기적으로 불린다. 인구 250명 70가구의 작은 농촌 소데토는 2011년 극심한 가뭄과 경기 침체로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200년 이상 지속돼 온 스페인 크리스마스 전통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그 전통은 바로 ‘엘 고르도(El Gordo)’라는 복권 추첨이었다.

엘 고르도를 우리 말로 의역하면 ‘거대 상금’이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자 스페인 정부가 항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복권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 진행되는 생방송 추첨은 스페인 인구 75% 이상이 지켜보는 국민 행사다.

1년에 단 한 번 추첨이고 복권 판매액의 70%를 상금으로 지급하니 엘 고르도의 당첨금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12월 22일 열린 209회 추첨에서는 총 25억2000만 유로(약 3조6000억원)의 상금이 지급됐다.
세계 최대 상금의 스페인 엘 고르도 복권 / 사진=Barcelona Yellow
세계 최대 상금의 스페인 엘 고르도 복권 / 사진=Barcelona Yellow
소데토 마을 조합은 공동 적립해 온 돈으로 매년 수천 장의 복권을 구매해 왔다. 그러던 중 2011년 12월 추첨에서 사상 최대 당첨금인 7억5000만 유로(약 1조700억원)의 잭팟이 터져 버렸다. 더욱이 상금에 세금도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벼락의 규모는 실로 어마무시했다.

횡재한 재산은 탕진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로또 대박 주인공들의 10뒤 삶은 하나같이 처참하고 비극적이더라는 기사들도 많다. 소데토 마을 주민들은 달랐다. 5년 뒤 마을을 찾아간 독일 DW뉴스는 주민들의 여전히 근면하고 건강한 일상의 모습을 전해줬다. 근사한 집도, 비까번쩍한 차도 보이지 않았다.

집합 투자의 힘이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한 주민은 “투자도 함께했고 그 성과도 함께 나눴듯이 앞으로의 삶도 계속 함께”라며 웃어 보였다. 당면한 삶의 문제를 이웃들과 함께 풀어 나간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즐겁다고 말한 또 다른 주민의 인터뷰가 짙은 여운으로 남는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