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9일), 2000억원대 투자 유치 발표
2019년 2조원대 기업가치 인정 이후 4년 만에 3조원대로 성장
무신사는 운동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을 한데 모으고 싶어서 당시 가장 '핫한' 프리챌을 택했고요. 요즘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쉽게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활발하게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거든요.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은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한정판 운동화 사진을 올려 출시 정보를 공유하는 등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됐습니다. 그들에게는 심심할 때 찾는 놀이터였던 거죠. 트렌드에 민감한 1020세대를 대거 확보하면서 신선하다는 이미지를 확보한 게 인기의 주된 요인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누군가 "신발 정보 어디서 찾지?"라고 물으면 "프리챌에 하나 있어"라고 답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요.
무신사는 "필요한 데 없네. 왜 없지? 그럼 내가 한번 해볼까"로 시작한 수많은 성공적 창업의 표본을 따랐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안경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와비파커. 창업자 가운데 한명이 배낭여행중 안경을 잃어버렸지만 비싼 안경값 때문에 긴 시간 그냥 지내다 유통구조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겠다며 사업을 시작했지요. 언더아머도 미식축구선수 출신이 땀이 덜차는 운동복을 만들겠다며 창업해 세계적 기업이 된 사례입니다.
무신사는 뜻밖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커뮤니티의 인기가 급속도로 높아지며 방문자들이 늘어납니다. 2003년에 '무신사닷컴'이라는 이름으로 사이트까지 구축합니다. 패션 전문 웹사이트가 없었기 때문에 패션을 주제로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신사닷컴을 자주 방문했죠.
2005년에는 매거진도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방문자 수를 늘리고, 더 새로운 정보를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겁니다. 무신사에 여전히 미디어의 흔적이 남아있는 배경입니다.
그래서 창업자 조만호 무신사 의장이 직접 거리로 나갔습니다. 단순한 길거리 패션 사진을 주로 올렸으나 방문자들의 호평이 나오자 전문 패션 에디터와 포토그래퍼를 전격 영입하며 규모를 키웠죠. 패션 화보, 상품 큐레이션 등 다양한 패션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웹진 형태로 발전합니다. 특히 매거진 사업은 패션업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플랫폼 형태를 갖춘 것은 2009년. 커머스 기능을 도입해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 스토어'를 론칭합니다. 2000년대 인기 브랜드인 디스이즈네버댓, 커버낫, 반스, 로맨틱크라운 등의 제품을 판매하며 '판매 채널'로의 경쟁력도 확보했습니다. 경쟁력의 근원은 신뢰였습니다. 정보 공유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채널에서 구매를 원하는 방문자를 '지갑을 여는 고객'으로 만든 겁니다. 무신사를 패션 기업으로 만든 중요한 장면입니다.
2010년대까지 '방문객' 또는 '고객'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면, 2020년대 들어서는 대형 커머스 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한 변화를 시도합니다. 새 서비스를 론칭하거나 인수합병(M&A)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죠. 2020년 7월 무신사는 한정판 제품만 판매하는 '솔드아웃'을 선보였습니다. 2021년 에스엘디티(SLDT)라는 자회사로 분사시켜 현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지만 무신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3000억원을 투자해 '29CM'를 인수했고요. 무신사가 남성 중심의 서비스라면 29CM의 주요 고객은 여성입니다. 무신사는 다양한 고객층을 아우르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29CM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거죠. 무신사가 인수에 대해 "여성 패션과 고감도 라이프스타일시장에서 더 큰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레이지나잇'을 오픈한 것 역시 패션에만 머물지 않기 위한 시도이고요.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들어서 무신사는 어떻게 하면 플랫폼의 감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라며 "그래서 29CM의 이미지를 원했다. 29CM 인수는 무신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전략인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현재까지도 무신사가 2001년의 그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된 거죠.
무신사가 시장에 등장한 지 22년만에 3조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7월19일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에서 주도하고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Wellington Management)가 참가한 시리즈C(Series C) 라운드에서 2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19년 11월에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1000억원가량의 첫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2조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이후 약 4년 만에 몸값을 1조원 이상 올린 겁니다. 당시 무신사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자 국내 10번째 유니콘으로 선정됐습니다. 2021년 3월 13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서 기업가치 2조5000억원을 인정받았고요.
이번이 세 번째 투자 유치입니다. 무신사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기존 기업들의 성장 방식과 다른 '무신사스러운' 비즈니스를 완성하겠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거고요.
이번에 확보한 자금으로 인수합병(M&A)도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29CM를 인수하며 패션 시장에서 입지를 늘린 사례를 기반으로 숨은 보석을 찾아내겠다고 합니다. 다만, 이전 M&A와 다른 점은 신사업을 위한 인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여러 기업들을 검토하는 거죠.
어제 산 운동화 후기를 올리고, 오늘 입은 옷에 대해 자랑하던 프리챌의 작은 소통 채널. 20년 만에 기성 패션 회사들을 위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무신사에서 하면 다른 회사들도 따라하는 영향력까지 확보했고요. 2년 뒤 무신사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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