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취지 훼손” 지적하고도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 파기 환송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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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급된 성과 상여금을 노동자들이 균등하게 재배분한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노동자의 사적 재산 영역으로 옮겨진 성과 상여금을 재배분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선 명확한 근거 규정이 필요한데 공무원 수당 규정에는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를 제재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를 두고 “성과급 제도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면서도 “이는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1·2심 ‘부정 행위’ 판단 엇갈려

대법원 1부는 2023년 6월 29일 서울 서라벌고 교사 A 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청구한 교원소청심사위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국가공무원법 규정에는 성과급 재배분 행위를 제재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A 씨를 징계할 수 없다고 봤다.

A 씨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성과급을 지급받은 후 이를 다른 교직원들과 균등하게 재배분했다. 특히 2019년 5월에는 동료 교사들에게 “성과 상여금을 반납하면 예년처럼 균등하게 분배해 돌려주겠다”는 취지의 내용과 개인 계좌번호, 반납 기한 등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 게 문제가 됐다.

학교 측은 사립학교 교원의 복무에 관해 준용되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른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징계 사유로 삼아 2020년 8월 원고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A 씨는 그해 9월 교원소청위에 정직 처분 취소 소청 심사를 청구했고 교원소청위는 이듬해 9월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처분이 과하다”며 정직 기간을 1개월로 변경하도록 결정했다.

교원소청위는 인사혁신처 예규와 교육 당국 지침에 따라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는 부정 행위에 해당하므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교원소청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성과급을 재배분한 A 씨의 행위가 국가공무원법이 규정한 ‘성과급을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 받은 경우’에 포함되는지를 따져봤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교원의 성과 상여금 재분배 행위를 금지하는 법령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며 A 씨의 성과급 재배분 행위를 징계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2심에서 성과급의 재배분 행위는 ‘성과 상여금을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 받은 때’에 포함되므로 이 사건 정직 처분의 징계 사유가 정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성과 상여금을 재배분하는 행위는 정상적 평가에 따를 경우 성과 상여금을 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 이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성과 상여금을 받아야 할 사람도 실제 성과보다 많거나 적은 금액을 받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과 상여금 제도가 도입 취지에 따라 운용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수를 부정한 방법으로 수령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 “행위 제재할 규정 없어”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1심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성과급 재배분 행위를 제재하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교원들의 사적 재산 영역으로 옮겨진 성과급을 재배분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를 허용할 경우 교원들의 업무 실적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그 결과에 따라 성과 상여금을 차등 지급함으로써 교원들의 노력과 성과에 근거한 공정한 처우를 실현하려는 성과 상여금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이는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

학교 측 징계하기 어려워질 듯

2001년 도입된 교원성과급제는 교원들 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평가 결과를 S·A·B등급으로 나눠 연 1회 교원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사노동조합연맹 등은 교원성과급제가 “교원 간 갈등을 유발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사건의 서라벌고 사례처럼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성과 상여금을 재배분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전교조에 따르면 2019년 9만5037명인 성과급 균등 배분 참여 교사는 2020년 8만9755명, 2021년 7만6632명, 2022년 8만8938명으로 집계됐다.

교원소청위가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를 두고 교사를 징계할 수 있는 사유라고 판단한 것은 A 씨의 사례가 처음이다. 하지만 A 씨가 제기한 소송의 1심에서 재판부는 해당 지침에 법적 효력이 없다고 결정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성과 상여금을 재배분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징계하겠다는 지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전교조는 2022년 3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직권 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대법원이 성과 상여금 재배분 행위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만큼 교원성과급제를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학교가 규정 위반에 대해 징계하더라도 교사가 소송을 걸면 패소할 것이란 생각에 쉽게 징계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돋보기]
성과급 재분배한 LX 노조위원장 파면은 위법

앞서 대법원은 공공 기관에서 벌어진 비슷한 쟁점의 사건을 두고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1부는 2021년 11월 25일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 해고 등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 중 부당 해고 부분을 파기했다. 성과급을 균등 재분배한 노조위원장의 파면은 위법하다는 취지다.

LX는 2016년 7월부터 공공 기관 경영 평가 기준에 따라 성과 상여금을 5개 등급으로 나눠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당시 LX 노조위원장 B 씨 주도로 성과 상여금의 재분배가 이뤄진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B 씨는 회사의 감사에 불응하고 지역노조 본부장들에게 질의서 서명 날인을 거부하도록 지시하는 등 감사를 방해했다. LX는 이런 행위를 근거로 B 씨를 파면했다.

B 씨는 회사의 징계가 부당 해고 및 부당 노동 행위에 해당한다며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전북지노위는 신청 일부를 인정했고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에 LX는 2017년 7월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걸었다.

1심은 B 씨의 행위가 회사의 경영 평가 성과급 제도를 무력화하는 조직적 위법 행위로 보고 이를 근거로 B 씨를 해고한 회사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B 씨의 파면이 부당 노동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판단했다. 2심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부당 해고 부분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회사 정관의 내용은 노동자들에게 직접 경영 평가 성과급 재분배를 금지하는 취지라고는 해석되지 않는다”며 “그 밖의 법령이나 원고의 정관 및 각종 내부 규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해 경영 평가 성과급 재분배를 직접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을 발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설령 원고가 2015년도 경영 평가 성과급의 재분배를 금지했더라도 현실적으로 지급됐거나 이미 구체적으로 지급 청구권이 발생한 임금은 노동자의 사적 재산 영역으로 옮겨져 노동자의 처분에 맡겨진 것”이라며 “적어도 2015년도 경영 평가 성과급을 지급한 2016년 7월 29일 이후에는 그 재분배를 금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