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답답한 경영자와 심란한 투자자…경영의 고차 방정식[박찬희의 경영 전략]
답답한 경영자와 심란한 투자자…경영의 고차 방정식[박찬희의 경영 전략]
경영자, 특히 창업 경영자는 은행과 투자자의 ‘무지함’에 치를 떤다. 사업 내용을 설명해도 제대로 알아듣자 못하고 자기들 눈높이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고 푸념한다. 정말로 중요한 기술이나 사업 포인트는 이해하지 못하면서 은행은 담보 가치와 현금 사정만 챙기고 벤처캐피털(VC)이나 증권사는 자본 시장에서 잘 먹히는 아이템이나 사업 모델을 밀고 사업 파트너도 우겨 넣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금융회사들은 ‘남의 돈을 쓰려면 말을 들으라’고 얘기한다. 은행은 원래 필요한 돈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 받아 수지를 맞추는 곳이니 여기에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돈 떼이지 않는 것이 지상 목표다. 벤처캐피털이나 증권사가 아무리 경영자의 기술과 사업 포인트를 이해하고 동의해도 이들 역시 남의 돈을 구해야 한다. 자본 시장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면 돈을 구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경영자의 숙명이다. 정말로 사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가능성을 믿는다면 돈을 빌려 주거나 투자하지 않고 직접 사업을 할 것이다. 남들이 모르니 경영자에게 기회가 있다.

은행이나 투자자는 그래도 자신의 이익이 걸렸으니 애써 알아보고 판단하지만 별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의 막연한 생각은 더욱 난감하다. 단편적인 기사나 오해가 포함된 조사 결과로 ‘나쁜 회사, 못된 짓’으로 낙인찍히면 정책 당국도 할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다. 표심에 명줄이 달린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결국 경영자는 ‘나만큼 절박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업을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어 가야 한다. 경영자의 전략이 일사불란하게 실행되고 좋은 사업이면 돈과 사람이 모이는 동화책 같은 세상은 없다. 악의적 의도가 음모로 뒤엉켜 뒷다리를 잡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이것은 못난이들의 생존술이 된다. 하지만 그래서 어렵고 아무나 못 하니 존경과 보상이 따르는 것 아닐까.
‘무지한 투자자’를 탓하다영상·미술·음악 등 콘텐츠를 사용자들에게 선별해 제공(큐레이션)하는 플랫폼 사업을 기획한 A 대표는 투자자들을 만날 때면 분통을 터뜨리고 만다.

보유한 콘텐츠의 고유한 성격과 사업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특히 제한된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최상급의 미술품 거래나 전시, 공연에 금융권 회계 실사에 맞춘 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월급쟁이’들에게 관련 분야의 진짜 전문가들은 낯설고 오히려 미디어에 나오는 ‘남들만큼 아는’ 사람들을 내세워야 결제받기도 편하다니 이 또한 난감하다.

유행에 따라 가상자산을 결제에 얹고 시장 수익률과 기대 성장률에 맞춰 거래 실적을 부풀리라는 요구까지 나오면 사기꾼이 대세인 판을 따라가다가 사고 나기 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고한 예술의 세계에서 떨쳐 일어나 목숨 걸고 사업하는 A 대표의 눈에 사업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눈치 보고 대세에 맞추기 급급한 큰손 투자자나 금융회사 사람들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돈 주는 사람들의 속사정도 생각해 보자. A 대표의 설명에 공감해도 빨리 차익을 실현해야 하는 큰손 투자자는 시장의 일반적 유행을 따를 수밖에 없다.

벤처캐피털이나 증권회사 담당자는 사업의 구체적 내용은 생각할 여유도 의지도 없는 투자 수익률만 맞추면 되는 투자자를 이해시켜야 하고 당장 연말 실적에 명줄이 걸린 경영진의 사정도 헤아려야 한다. 미디어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사업이 된다.

이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A 대표의 말보다 미디어로 확인된 내용이 중요하다.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으면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투자 생태계에서 돈을 끌어 쓰려면 나름의 눈높이와 이해관계에 맞춰 정보를 제공하고 호의적 판단을 이끌어 내야 한다.

유능한 경영자는 같은 사업 내용과 전략도 다양한 눈높이와 요구에 맞춰 설명한다. 단기 차익이 필요한 큰손 투자자를 위해 미디어와 시장에 호재가 될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벤처캐피털과 증권회사의 사정에 맞춰 정보 제공의 시점과 내용을 조절한다.

스토리텔링의 지혜가 더해진 투자자 관리(IR)의 전략이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돈줄과 멀어진 경영자는 사업을 접고 시장의 유행에만 매달린 투자자는 얼치기 사기극에 놀아나는 비극이 시작된다.
투자의 고수, 번번이 깨지다주식 투자로 큰돈을 번 M 사장은 최근 사모펀드를 만들어 벤처 투자를 하면서 계속 실패를 겪고 있다. 자리가 잡힌 회사들에 가치 투자로 수익을 얻고 선물 투자로도 성공했던 A 사장에게 ‘막 시작하는 진짜 사업’은 전혀 다른 판이었다.

자본 시장의 흐름에 맞춘 사업들은 깊숙이 파 보면 투자받기 쉬운 아이템으로 시장 흐름에 맞게 숫자를 맞췄을 뿐이고 기술적 한계나 부품·자재 공급 같은 심란한 걱정거리는 가려져 있었다. 온라인 유통 사업에 투자하고 보니 사업의 핵심은 창고와 배송이었고 자동차 부품 업체의 가치는 공장 부지 처분과 주변 부동산 개발에 달려 있었다.

M 사장에게 익숙한 증권사 투자 정보나 컨설팅 보고서는 늘 간결하고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시장의 흐름에 맞아야 관심을 얻는다. 하지만 사업의 현실은 복잡해 곳곳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고 숨기고 속이는 ‘실물 경제의 사술(詐術)’이 나온다. 금융판의 ‘남들만큼 알아서 요령껏 시장 흐름에 맞춰 설명하는’ 식으로 이런 판을 대하면 ‘운칠기삼’의 도박이 될 뿐이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의 설명은 알아들을 수도 없고 공장의 기름때 묻은 설비, 금융판과 전혀 다른 생산·영업 현장의 정서는 낯설다. 팔자를 바꿀 돈이 아니라면 고만고만한 현금 보상보다 회사 안팎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사람과 조직’이라는 심오한 세계로 말려들다 보니 뭘 믿고 함부로 주식 투자를 했던가 생각이 든다.

유능한 투자자는 일반적 주식·채권 거래와 경영에 개입하는 지분 투자를 다르게 접근한다. 사업의 현실에 가까이 갈수록 복잡하고 심란한 사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답을 찾는다. 도저히 직접 쉽게 판단할 수 없고 사람의 관계에서 풀어야 하는 숙제들이 있다면 그 지점부터는 경영자의 영역이다. 잘 찾아 맡길 수밖에 없다.
전략 경영의 고차 방정식경영자와 투자자는 서로 필요해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경영자의 눈에는 투자자의 눈높이와 요구가 답답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업의 가치와 경영자의 능력을 인정해 귀한 돈을 넣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회사와 사업을 더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돈은 생각도 할 수 없다.

투자자는 사업의 가치를 알지만 실제로 해낼 자신은 없으니 경영자에게 대신 맡긴 것이다. 특히 경영자는 계약 관계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과 조직’의 일을 해결한다. 투자자에게 경영자는 못하는 일을 대신해 돈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경영자와 투자자는 기업 가치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으니 어떻게든 힘을 합할 수 있다. 다른 이해관계인들을 생각해 보자. 노동자는 공동 운명체지만 함께하는 기간에 이해관계가 집중되고 소비자는 얻고자 하는 가치에 집중한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대중은 나름의 가치관과 관심으로 회사와 사업을 대하지만 일단 여론이 형성돼 정치적 과정으로 전개되면 더 높은 수준의 과제가 돼 버린다.

전략 경영은 이런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풀어야 한다. 각기 다른 관점과 눈높이는 고차 방정식의 난도를 높이는데 제대로 설득해 좁혀 갈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경쟁 우위를 가진 셈이다. 이 능력이 경영자의 ‘절대 반지’가 아닐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