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초전도체가 뭐길래…과학계 뒤집어 놓은 ‘꿈의 물질’? [노벨상일까 신기루일까]
매우 얇은 디스크 판 위에 작은 물체가 떠 있다. 이 물체는 ‘공중 부양’한 채 디스크 위를 무려 7만 번 정도 쉴 새 없이 돈다.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강연자가 설명을 시작한다.

“지금 본 장면은 양자 부상과 양자 고정이라고 불립니다. 공중 부양하고 있는 이 물체는 초전도체라고 불리지요. 초전도 현상은 물질의 양자역학적 상태로 온도가 특정한 수준 이하로 낮아져야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4년 전 테드(TED : 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에 올라온 ‘초전도체’를 소개하는 강연 내용이다. 이 강연은 흥미로운 시연과 친절한 설명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냈지만 과학 전문 용어들이 많다 보니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도대체 ‘초전도체’란 무엇이고 또 물체가 ‘공중 부양’하는 현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지난 한 주 세계를 뒤흔든 화제는 단연 ‘상온 초전도체’였다. 그 시작은 한국 연구진의 논문 한 편이다. 세계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과학계가 이를 검증 중이다. 만약 검증 후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노벨상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상온 초전도체’에 도전했다가 검증 과정에서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기대’를 갖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상온 초전도체는 ‘꿈의 물질’이라고 불린다.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물질이다. 이 물질을 발견하면 에너지 혁명 등 세상이 또 한 번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온 초전도체’가 무엇인지,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알기 쉬운 용어들로 정리했다.
‘극저온’에서만 가능했던 초전도 현상
세상의 모든 물질은 ‘전기가 통하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도체·반도체·부도체로 구분된다. 도체는 금·구리·알루미늄과 같이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고 반도체는 선택적으로 전기가 통하는 물질을 말한다. 원하는 대로 전기가 통하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 전기 신호로 연산하고 작동하는 대부분의 전자 제품에 사용된다. 부도체는 돌이나 나무처럼 전기가 아예 통하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초전도체는 쉽게 말해 도체보다 전기가 아주 잘 통하는 물질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전기가 잘 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전기 저항을 지닌다. 이 전기 저항이 낮을수록 전기는 더욱 잘 통하게 된다.

그런데 초전도체는 이 전기 저항이 제로(0)다. 전기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상태다. 스마트폰 등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폰이 따끈따끈해진다. 전기 에너지가 저항으로 인해 열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초전도체는 저항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초전도체의 발견은 1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Heike Kamerlingh Onnes)가 수은이 섭씨 영하 269도 정도에서 전기 저항이 ‘사실상 0에 가까울 정도로’ 극도로 낮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192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모든 금속은 저항을 갖는데 온도가 낮아지면 대개 저항도 작아지지만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저항이 0이 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초전도체는 특정 온도(임계 온도)에서 저항이 갑자기 0으로 떨어지고 임계 온도 이하에서는 저항이 계속 0”이라고 이 현상을 설명한다.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은 1950년대 완성된다. 미국 물리학자인 존 바딘(John Bardeen)과 레온 쿠퍼(Leon Cooper), 존 로버트 슈리퍼(John Robert Schrieffer)가 1957년 자신들의 이름을 첫 글자를 딴 이른바 BCS 이론으로 초전도 현상을 설명했다. 세 과학자는 BCS 이론으로 197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임계 온도는 ‘섭씨 영하 248도’였다.

초전도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혁신은 1990년대 이뤄진다. 1933년 독일의 과학자 발터 마이스너가 ‘마이스너 효과’라는 것을 발견한다. 초전도체가 가진 재미있는 특성 중 하나는 외부 자기장이 초전도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는 점이다. 자석이 내뿜는 자기장 역시 초전도체는 그대로 밀어내고 이에 따라 자석은 공중 부양하게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초전도체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시도했다. 핵심은 초전도체가 실현 가능한 더 높은 임계 온도를 찾는 것이다. 1986년 취리히에 있는 IBM연구소의 뮐러와 베르노츠는 섭씨 영하 238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금속 산화물을 발견했다. 이들 역시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이를 고온 초전도체라고 한다. 이후 새로운 물질에 대한 연구가 계속됐고 임계 온도는 섭씨 영하 140도까지 높아졌다.

김 교수는 “고온 초전도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이론이 없다”며 “이 이론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노벨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일정한 온도에서 저항이 사라지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LK-99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세계 최초의 상온 초전도체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08년 고려대 이론물리화학연구실 출신들이 설립한 벤처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개발했다. 논문에 따르면 LK-99은 세 단계에 걸쳐 만들어진다. 먼저 산화납과 황산납을 섞은 뒤 섭씨 영상 725도에서 24시간 가열해 황산화납을 제조한다. 이어 구리와 인을 혼합해 섭씨 영상 550도로 48시간 가열해 인화구리를 만든다. 이렇게 얻은 황산화납과 인화구리를 일대일로 섞어 고진공 상태의 챔버에서 섭씨 영상 925도로 구워 낸다. 총 제작 시간만 53~68시간이 소요된다.

연구진은 지난 20년간 약 1000번의 실험을 반복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물질을 만들어 실험한 뒤 가능성이 있으면 계속 연구하고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 다른 물질을 만드는 일을 반복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가 진짜든 아니든, 한 분야에 수십년씩 도전하는 이들 연구진의 꿈과 열정 그리고 끈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상온 초전도체가 ‘꿈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이유
지금도 초전도체는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병원의 자기공명영상(MRI) 기기다. 초전도체가 자석과 상호 작용하는 ‘마이스너 효과’를 바탕으로 병원의 MRI 기기 안에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 데 초전도체가 사용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초전도체는 섭씨 영하 200도 정도의 극저온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병원 MRI 기기에 초전도체를 쓰기 위해서는 이 초전도체를 섭씨 영하 269도의 액체 헬륨으로 냉각해야 한다. 이것이 병원의 MRI 기기가 매우 크고 비싼 이유다.

이번 한국 연구팀이 발표한 ‘상온 초전도체’가 특히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상온(섭씨 영상 20도)’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상압(지구 표면의 대기압=1기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가능성 때문이다.

상온 초전도체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2015년부터 온도 외에 ‘초고압 조건’에서 초전도체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외계인 고문으로 유명한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H10La(란탄 하이드라이드)라는 물질을 167만 기압의 고압 조건에 놓으면 섭씨 영하 23도에서 초전도체 성질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1기압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초전도체를 활용하기 위해 ‘100만 혹은 200만 기압’과 같은 특수한 조건을 만드는 데 매우 큰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에서 초전도체를 상용화하는 데 ‘상온’이라는 조건만큼이나 ‘상압’이라는 조건 또한 중요하다.

상온 초전도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병원 MRI 기기를 액체 헬륨으로 냉각시킬 필요가 없어진다. 크기는 작아지고 비용 또한 매우 저렴해질 것이다. MRI가 내는 아주 강력한 자기장을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자기 부상 열차다. 마이스너 효과를 활용해 레일 위에 떠 달릴 수 있다. 현재 이론상으로는 서울~부산을 40분에 주파하는 자기 부상 열차도 가능하다. 레일과 마찰이 없기 때문에 연료 소비 효율 또한 극대화될 것이다.

로봇에도 활용할 수 있다. 작고 강력한 전자석을 활용해 강력한 인공 근육을 만들 수 있다. 강력한 힘을 필요로 하는 군사 무기, 방위 산업에도 활용처가 엄청날 것이다. 로봇 산업의 도약을 넘어 인류의 문명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에너지 혁명’에 대한 기대도 크다. 송전선·변압기 등을 초전도체로 교체하면 이론상으로는 송전 효율을 100% 가까이 낼 수 있다. 전력 시스템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전력 수송이나 전기 회로에서 저항이 0인 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면 송전 전력 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회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줄일 수 있어 반도체 소자나 전자공학에서도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현재 발전소에서 가정까지 송전할 때는 대략 10% 정도의 손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융합 발전의 경제성 또한 크게 오른다. 전자기 응축이나 아크 가열식 핵융합 폭탄의 생산이 쉬워져 군사적 사용을 넘어 우주선 추진체로 쓰는 것도 가능해진다.

컴퓨터·스마트폰 등 디지털 전자 기기의 효율도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열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르는 초전도체를 활용하면 스마트폰 등을 사용할 때 발열 문제가 사라진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초전도 사회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초전도체는 초고속 컴퓨터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도 필수다. 김 교수는 “현재 양자컴퓨터는 주로 초전도체를 이용해 연구되고 있는데 저온 장치가 필요 없다면 연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