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버틴 대학 상권, 경기침체로 잇따라 폐업
악순환의 고리 깨려면 MZ 소비 심리 알아야

잘 나가던 부산 대학가 상권에 뜬 ‘경고등’···터줏대감 사장님들 줄줄이 떠난다
다시 결말의 갈림길에 섰다. 올해 1학기를 보낸 지방 대학 상권의 이야기다. 지난 3년 간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의 존폐 위기 속에서 대학 상권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벽이 허물어진 후에도 그들이 받게 된 성적표는 쓰기만 하다.

지난달 27일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2023년 2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 지역 최대 규모 대학 상권인 경성·부경대와 부산대 지역의 소규모상가 수익률이 여전히 하락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성·부경대의 경우 올해 소규모상가 평균 순영업소득(원/㎡)이 1분기 69,100원, 2분기 70,600원을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당시였던 전년도 동일 분기인 2022년 1분기 74,100원, 2분기 74,500원의 수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부산대 인근 소규모상가 역시 2022년 1-2분기 평균 순영업소득이 각각 47,300원, 47,700원이었던데 비해 2023년 1분기 42,800원, 2분기 41,200원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코로나19도 버텼지만... 질병보다 무서운 경기침체
통계를 벗어나 직접 들여다본 대학 상권의 실상은 더 위태로웠다. 2011년부터 경성대와 부경대 상권가 교차점 길목을 지켜 온 블루베리 안경점은 지난달 결국 점포 정리 현수막을 내걸었다. 블루베리 안경점 사장 A씨는 “코로나 때 수천만 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그런데 지금의 불황은 그때보다 더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하루 운영을 할수록 오히려 더 적자가 나는 구조”라며 “가게 운영을 감당하기 위해 집까지 팔았지만 이제 그 돈마저 바닥이 났다. 대기업이 아닌 일반 소상공인은 감당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잘 나가던 부산 대학가 상권에 뜬 ‘경고등’···터줏대감 사장님들 줄줄이 떠난다
한 때 발디딜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부산의 경성대 앞 상권이 현재 코로나19 여파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때 발디딜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부산의 경성대 앞 상권이 현재 코로나19 여파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십 년간 지갑이 가벼운 대학생들의 배를 채워주던 식당에도 손님 발길이 돌아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동아대 승학캠퍼스(이하 승학캠) 정문 맞은편에서 동대식당을 운영해 온 유영선 씨는 “(팬데믹 시기보다) 더 심해졌다. 거리 유동 인구는 코로나 이전과 비슷해진 것 같은데,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는 길에 종종 들러 밥을 먹고 갔던 전과는 달리 요즘은 좀처럼 가게 안으로 들어오질 않는다”며 “열 명이 지나가면 그중 한 명은 식당에 들렀는데, 이제는 스무 명이 지나가도 손님 생길 일이 드물다”고 전했다.

하나 둘 떠나는 상인들, 유령 상권화 우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인들이 대학 상권을 떠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경성·부경대 일대 상가 매매를 담당하는 명부동산의 하영경 이사는 “이 대학가에서 가장 큰 대로변 상권가에도 임대를 내건 공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정문과 인접한데다 주변에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이 있다는 입지 요건 때문에 월세는 아주 높은데, 돌아가는 실정을 보면 그 위치에 입점한들 월세를 맞출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이 날지 의문스럽다”며 “실제로 코로나가 완화될 무렵 여기서 새로 문을 연 카페가 있었지만, 몇 개월도 못가 문을 닫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동의대 상권에서 중개업을 하는 다모아 부동산의 조영옥 씨 또한 “동의대 인근 상가 임대인들이 세입자를 못 구해서 난감하다. 권리금까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고 전했다. 그는 원인이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의 소비패턴이 아예 변한 탓”이라며 “전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길다 보니 공부하고, 휴식하고, 즐기는 모든 것을 대학 상권 내에서 해결했지만, 이제는 그 활동 반경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조 씨는 “게다가 요즘 MZ세대는 깔끔하고 트렌디한 분위기를 선호하는데, 대학 상권의 경우 그 취향을 맞추지 못하는 매장이 더 많다 보니 자연스레 젊은 소비인구가 서면, 전포 등의 인근 번화가로 흘러가고 있다. 그 여파로 최근에는 그나마 몇 없던 브랜딩 잘 된 가게들마저 이 상권에서의 장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냥 가는 곳’ 아닌 ‘가고 싶은 곳’ 돼야
전문가 역시 청년층의 소비패턴 변화를 대학 상권 침체의 주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김우혁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학의 온라인 강의가 발달하고, 오프라인 행사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학생들이 대학 상권 내에서 소비하는 빈도 역시 줄어들었다. 또 젊은 층이 팬데믹 시기 급격히 활성화된 온라인 소비에 익숙해져 오프라인 매장을 덜 이용하게 된 영향도 있다. 당시의 소비패턴이 고착했기에 대학 상권 회복세가 미진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침체기를 벗어나려면 MZ세대인 대학생들이 어떤 장소와 상권에 주로 방문하는지 경향을 분석해야 한다”며 “MZ세대 청년들을 잡기 위해서는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학 상권이 이전처럼 대학생들이 자주 머문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소비해야 하는 진부한 장소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특성화 전략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악순환의 고리 깨야 살아날 대학 상권
한편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소상공인의 고용 부담감과 그로부터 이어진 청년 일자리 감소, 소비 침체의 악순환이 대학 상권을 더욱 궁지에 몰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대 승학캠 인근에서 봉구스 밥버거를 운영 중인 안건자 씨는 “요즘은 학생들이 밥값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이 가격 부담으로 끼니를 거른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학생들이 굶는 이유가 일할 곳이 없기 때문 아닌가 싶다”며 “자영업자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알바생을 안 쓰고 덜 버는 게 알바생을 써서 시급 주느라 나가는 비용보다 적다는 거다. 나날이 오르는 최저임금과 실업급여를 감당하느니 내 한 몸 더 힘든 게 낫다고 보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예전엔 알바를 고용했는데, 지금은 알바생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 중”이라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임금이 오르면서 상인들은 알바생이나 직원을 고용할 수가 없고, 청년들은 무인점포나 키오스크에도 밀려나는 상황”이라며 “대학생들의 자금 상황이 마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 설명했다. 또 “대학생들의 지갑이 텅 비니 돈을 쓸 수가 없기에 대학 상권도 덩달아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대학 상권을 회생시키려면 가게를 ‘소비자들이 꼭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 점주들의 역량 발달과 더불어 이념에 치우친 정책보다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방안의 마련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 당부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장유진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