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 겪을까…‘피크 차이나론’의 세 가지 이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 낸 나라 중 하나다. 1978년 경제 체제의 개혁을 결정하는 것과 동시에 대외 개방 정책으로 노선을 정한 이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9%라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역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속도다.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엄청난 규모의 시장과 제조업 기반은 세계 경제를 재편했고 지난 10년간 중국의 세계 경제 성장 기여도는 30%가 넘는다.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중국 경제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경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듯하다. 중국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지난 2분기 GDP 성장률은 6.3%다. 1분기(4.5%)보다는 나아졌지만 시장 예상치(7%대 초반)를 밑돈 수치다. 더 심각한 것은 실업률이다. 6월 청년 실업률은 2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꺾이며 ‘피크 차이나론’이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지난 40여 년 동안 부상해 온 중국의 성장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과거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7월 25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중국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경제 전문가들이 ‘피크 차이나론’을 제기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중국이 그동안 쾌속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었던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로 인해 지방 정부와 기업의 부채 또한 뇌관이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크게 줄고 있고 첨단 산업의 성장 또한 둔화되는 추세다.

중국의 경기 둔화가 장기화한다면 이는 더 이상 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 소비력이 축소되면 세계 제조업계가 불황에 빠질 수 있다. 글로벌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피크 차이나론의 세 가지 근거를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 겪을까…‘피크 차이나론’의 세 가지 이유
1.인구 감소와 일자리 미스 매치… 늘어나는 ‘탕핑족’과 ‘전업 자녀’들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7월 25일 ‘과거 일본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 to Japan?)’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1980년대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했던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경제가 붕괴되며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그런데 왜 지금 뜬금없이 ‘과거의 일본’을 소환한 것일까. 이 글을 통해 크루그먼 교수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최대의 라이벌이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 또한 과거의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크루그먼 교수의 대답은 단호하다. “중국은 일본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과거의 일본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크루그먼 교수는 일본 경제가 쇠퇴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인구 감소’를 꼽는다. 일본의 노동 가능 연령 인구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감소했다. 출산율은 낮아졌지만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를 바탕으로 성장한 나라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었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인구는 2022년 정점을 찍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1월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본토 내 31개 성·시·자치구 전체 인구가 14억1175만 명으로 전년보다 85만 명 감소했다. 1961년 대기근 이후 중국 인구가 감소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의 노동 가능 연령 인구는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유엔은 2050년 무렵까지 중국의 노동 가능 연령 인구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물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자동화 기술을 고려하면 중국이 이를 극복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바로 역대 최고치(20%)를 찍은 ‘청년 실업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청년 실업률을 46.5%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탕핑족’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평평하게 누워 있다’는 뜻으로 일을 할 바에는 바닥에 드러눕기를 택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전업 자녀’라는 말도 등장했다. 취직을 하는 대신 가족을 돌보고 집안일을 돕는 것을 택한 사람들이다. 월급은 부모님에게 받는다. 이들처럼 취업할 의사가 없어 실업률에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에서 청년 구직 단념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일자리 미스 매치’ 현상 때문이다. 2030세대는 저숙련 업종보다 고숙련·고임금 일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경영난으로 인해 일자리 수를 줄이는 중이다. 텐센트는 지난해 7000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알리바바도 지난 1년 사이 2만여 명을 구조 조정했다. 원하는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아예 구직을 단념하고 있다.

2.중국 경제의 뇌관 ‘부동산 거품’ 꺼질까…심각한 지방 정부 부채 위기

일본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점에는 1992년부터 일본의 주택 가격이 급속하게 떨어진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있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금의 중국 경제 또한 지나치게 과열된 부동산 부분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과 국내외 분석 기관들이 중국 2분기 성장률 쇼크의 주범으로 꼽고 있는 것 또한 ‘부동산 문제’다.

중국은 2021년 최대 부동산그룹 헝다부동산이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구조 조정에 나서며 ‘부동산 위기’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데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 업체 대출 규제 등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 영향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중국의 ‘부동산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최근 다롄완다그룹의 채무 위기로 다시 커지고 있다. 완다그룹은 쇼핑몰·영화관 등을 운영하는 중국의 상업용 부동산 개발 업체다.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2015년 중국 부호 1위를 차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부동산 업체의 어려움은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부동산 연구 기관인 중즈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중국 100대 도시의 신규 주택과 기존 주택 가격은 모두 전월 대비 하락했다. 그중 기존 주택 가격은 1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주택 공급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 하지만 젊은층의 인구가 줄고 도시화 속도가 둔화하면서 공실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중국부동산정보(CRIC)에 따르면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 업체의 지난 6월 기준 신규 주택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28.1%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은 지방 정부의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로서도 도시화에 수반되는 부동산 투자는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중국의 지방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기업에 토지 사용권을 팔아 재정을 충당해 왔다. 그렇게 얻은 이익으로 도로·철도·통신 등 인프라에 투자했다. 이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률 제고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경기가 둔화할 조짐을 보이면 지방 정부들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일으켜 경기 둔화를 완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수명을 다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인해 지방 정부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2018년 이후 각종 사업을 위해 지방채를 마구 발행하며 부채가 크게 늘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 중국 정부의 부채를 약 23조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17조 달러 수준인 중국 GDP는 물론 미국 GDP(22조 달러, 2021년 기준)도 웃도는 규모다.

시장에서는 이번 완다그룹의 위기가 그동안 우려하던 중국 부동산 위기에 결정타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완다그룹은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부동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완다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부동산 기업들의 위기도 지속되고 있다. 헝다그룹은 7월 17일 홍콩거래소를 통해 2021년과 2022년 실적 보고서를 한꺼번에 발표했다. 최근 2년간 5800억 위안(약 102조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부동산 개발 업체 위안양그룹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채무 상환 이슈를 피하지 못했다. 채무 상환 불확실성을 이유로 4% 금리인 위안화 채권의 거래를 중단했고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급락했다.


3. 줄어든 외국인 투자…미·중 패권 전쟁의 불똥

격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 전쟁 또한 중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데 종잣돈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던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대중 FDI는 200억 달러(약 25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FDI가 1000억 달러(약 127조원)였던 것을 감안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최근 중국으로부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도체 규제와 수출 통제 등 연일 계속되는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며 서구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FDI가 급감하며 중국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2023년을 ‘중국 투자의 해’로 지정했다. 중국 정부와 기업의 관리들은 해외 투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최근 미국의 대중 압력이 높아지자 중국 또한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서구 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기업들은 높아진 리스크로 인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재고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중국은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항상 더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에 유입되는 자금이 중국에서의 자금 유출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중국의 첨단 산업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독재적 성향 또한 중국의 혁신 역량을 감소시키는 주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공산당이 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2021년 8월 시 주석이 ‘공동 부유(인민과 함께 부유해지자)’ 정책을 전면화하면서 민간 기업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로 가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7월 1일 한층 강화돼 시행 중인 반간첩법이다. 국가 보안과 이익과 관련된 문서나 데이터·자료·물품 등을 보호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시장 조사와 같은 일상적인 비즈니스 할동까지 간첩 행위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기업인들의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시진핑 아래에서 중국 경제의 발전은 없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헤니 센더 블랙록 고문은 “시진핑 체제에서 민간 기업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며 중국과 미국의 갭이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