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이지 않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에 새삼 공감이 가는 시간입니다. 연구실에서 무언가 개발에 성공하면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결과물이 연구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인간과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킵니다. 돈과 권력 등의 요소가 뒤섞이며 기술은 순수성을 상실합니다.

곧 개봉될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 일생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 아인슈타인이 제안하고 당대 최고의 학자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파인만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 천재들을 이끈 인물이 오펜하이머입니다. 그는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후 이런 말을 합니다. “과학자라는 죄를 알아 버렸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을 제조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정부는 그를 소련 스파이로 몰아갑니다. 과학자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완수하고 양심에 따라 더 큰 희생을 거부한 것이 죄였습니다. 대가는 68년간의 스파이 혐의였지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권력으로서의 기술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변질시킨 대표적 사건이었습니다.
상온 초전도체, 이 낯선 용어에 우리는 왜 흥분할까[EDITOR's LETTER]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단어는 ‘상온 초전도체’입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비싸고 귀한 자원 ‘언옵테늄’이 초전도체입니다. 저항이 사라져 에너지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물질. 자기 부상 열차를 현실로 만들고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상온 초전도체’.

이를 한국 연구진이 발견했다는 초보적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갑자기 공개된 후 젊은이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단초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들뜬 분위기였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 어려운 초전도체란 물질에 열광하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K팝과 비슷한 면도 있어 보였습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해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모으고 다시 한국에서 대중적 화제가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다음엔 돈이 움직였습니다. 테마주로 묶인 주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폭등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스토리 라인도 빠져들만 했습니다. 1993년 연구를 시작한 교수님, “완벽히 성공할 때까지는 공개하지 말라”는 그 분의 유언, 좁은 지하 연구실에서 구리와 납 등을 섞어 대장장이처럼 구워 내기를 20년간 반복했던 연구진 등이 그랬습니다. 세상의 관심에 이제 ‘상온 초전도체’는 퀀텀연구소의 손을 떠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상온 초전도체 LK-99을 다뤘습니다. 검증 결과와 무관하게 다룰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초전도체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켜 줬고 해외 많은 연구원들이 이 논문을 기초로 실험을 해볼 정도로 영향력도 컸고 시장도 들썩였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 고마운 이름 하나를 떠올립니다. 윌리엄 캐리어. 에어컨 발명자지요. 20세기 인류의 구원자로도 불립니다. 인쇄기를 건조하다 우연히 에어컨 원리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어컨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노라고…. 2차 세계대전으로 그 꿈은 유예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정용 에어컨 개발에 성공합니다. 캐리어의 포기하지 않은 꿈 덕에 무더운 여름을 에어컨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연구진의 성공 가능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온 초전도체를 누군가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기술적 능력과 윤리적 능력의 불일치’ 라는 21세기 기술의 본질적 문제를 극복할 만한 발견 아닐까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