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오카도의 자동화 물류센터 모습. (사진=롯데쇼핑)
사진은 오카도의 자동화 물류센터 모습. (사진=롯데쇼핑)
한때 큰 기대를 받았던 자율 주행 자동차의 등장이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것이란 전망이 늘고 있다. 심지어 상용화하기 어렵다는 재평가도 받고 있다. 그런데 광산업·물류업·건설업 등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분야에서는 자율 주행 기술의 상용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로봇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주목받은 자율 주행자율 주행 기술은 꽤 오래전부터 연구돼 왔다. 1940년대 말 영국에서는 광학 센서와 터치 센서로 장애물을 감지하고 길을 찾는 로봇 엘머(Elmer)와 엘시(Elsie)가 개발됐다.

1960년대 말에는 미국 SRI 연구팀이 오늘날의 자율 주행 시스템과 흡사하게 거리 측정용 소나 장애물 감지용 카메라, 충돌 감지 센서 등의 하드웨어와 경로 찾기, 이미지 분석 등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를 갖춘 모바일 로봇 섀키(Shaky the Robot)를 만들었다. 1970년대 말에는 레이저와 초음파 센서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경로를 찾는 로봇 경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의 쓰쿠바 기계공학연구소에서는 두 대의 카메라와 아날로그 컴퓨터로 거리를 측정하는 반자동 자동차가 연구됐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은 카네기 멜런대 연구팀이 장애물 회피 기능, 관성 항법 시스템 등을 갖춘 자율 주행 기술을 연구했고 1995년에는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서부 캘리포니아 주에 이르는 약 4500km 거리를 자율적으로 주행하는 자동차 실험을 진행했다.

자율 주행 기술 개발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총 3회에 걸쳐 진행된 미국 DARPA의 그랜드 챌린지를 거치며 가속화됐다. 시내외 도로에서 주변 차량의 움직임에 맞춰 주행 속도를 지능적으로 결정하고 각종 장애물을 회피하며 경로를 찾아가는 자율 주행 기술들이 이때 개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테슬라를 비롯해 벤츠·BMW·현대차 등 주요 자동차 기업들 모두 제한적인 수준의 자율 주행 기술인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을 양산형 자동차에 적용하고 있다. 전문 산업에서는 착실하게 상용화 진행 중자율 주행 기술의 적용 범위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우선 광업이다. BHP와 FMG 등 굴지의 광산 업체들은 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된 초대형 무인 트럭과 무인 굴삭기 등을 사용하고 있다. 광산용 무인 트럭은 운반 중량이 100톤 이상에 달하는 초대형 자동차다. 세계의 주요 광산 현장에서 가동 중인 초대형 무인 트럭은 약 1100여 대에 이르고 향후 5년 내에 약 6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지하 탐사 장비에도 자율 주행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위험한 지하 공간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 탐사하려면 탐사 장비에 스스로 장애물을 회피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율 주행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자율 주행할 수 있는 무인 탐사 장비는 카메라 센서·라이다·레이더 등 각종 장애물이나 거리를 탐지하는 센서와 주행 경로를 모니터링하고 결정하는 SLAM 기술, 디지털 맵 등을 갖춘 모바일 로봇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광산용 중장비 중에서 불도저와 굴삭기 등 일부 장비는 건설업에서도 사용된다. 건설 현장은 광산처럼 일반인의 출입이 적고 땅을 파거나 철근처럼 사람이 다루기 어려운 물건을 다루는 작업이 많아 무인화된 장비를 사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장비를 사용하는 건설업에서도 무인 불도저를 비롯해 시공용 장비, 검사용 장비 등에도 자율 주행 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이 확산되는 중이다.

유통업과 물류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백화점과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안내 로봇이나 물류 창고에서 운반 작업을 하는 무인 운반차(AGV : Automated Guided Vehicle)나 자율 주행 로봇(AMR : Autonomous Mobile Robot)은 일정한 수준의 자율 주행 기능을 기반으로 한 장비들이다. 아마존이나 영국의 오카도 등 온라인 유통 기업들은 업계 최초로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로봇을 물류 작업에 투입해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오카도는 거대한 벌집 구조로 만들어진 물류 창고에서 제한적인 수준의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피킹(picking) 로봇들을 이용해 출고 작업을 처리한다. 미국 최대 유통 업체인 월마트는 실내 운반을 넘어 실외 배송 작업에도 자율 주행 기능을 활용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DHL 등의 글로벌 물류 기업들도 자율 주행 기능을 기반으로 하는 로봇들을 운반 작업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로커스로보틱스(Locus Robotics)와 킥플러스(Geek+) 등이 만든 물류용 AMR들은 지정된 배송 물품을 포장 작업을 담당하는 작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외식업의 자율 주행도 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서빙 로봇을 사용하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빙 로봇은 자율 주행 기능을 기반으로 하는 AMR을 모체로 하는 로봇이다. 푸두테크(Pudu Tech)와 키논로보틱스(Keenon Robotics)를 필두로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 등 다수의 서빙 로봇 기업들이 자국 시장을 넘어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다.

자율 주행 기능을 탑재한 장비로 최근 가장 크게 주목 받은 기업은 농업 분야의 존 디어(John Deere)다. 존 디어는 10여 년 전부터 글로벌 종자 기업 몬산토(Monsanto, 현재 BASF가 인수), 빅데이터 전문 기업들과 협업해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무인 트랙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위성항법장치(GPS)와 스테레오 카메라 등을 장착한 존 디어의 무인 트랙터는 농부가 조종하지 않아도 작업 계획에 맞춰 정해진 구간 내에서 파종, 농약 살포, 수확 등의 다양한 작업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다.

광산용 무인 트럭에서부터 안내 로봇, 물류용 AMR, 서빙 로봇, 무인 트랙터 등의 무인화 장비들에 탑재된 자율 주행 시스템은 자동차 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자율 주행 시스템과 거의 같다. 대부분의 자율 주행 시스템은 장애물 감지용 라이다와 장거리 탐지용 레이더, 사용 현장의 디지털 맵, 주변 환경을 감지해 경로를 설정하거나 변경하는 SLAM 시스템, 이동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GPS와 관성 측정 장치(IMU : Inertial Measurement Unit) 센서 등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광산용이나 물류용 무인 장비들은 기본적인 자율 주행 시스템에 더해 군집 제어 시스템(Fleet Management System)도 추가 설치된다. 군집 제어 시스템은 여러 대의 무인 트럭이나 물류용 AMR 또는 무인 트럭과 무인 채굴기, 무인 불도저 등의 이종 장비들이 함께 이동하고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이다. 자율 주행 모듈 전문 기업들도 증가자율 주행 기능의 유용성이 확인되면서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 하는 트럭·중장비·상업용 청소기 등을 무인 장비로 개조하는 자율 주행 모듈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는 각 산업에 특화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게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자율 주행 모듈 개발 기업들도 있다.

ASI(Autonomous Solutions, Inc.)처럼 광산업·농업·건설업 등에서 사용되는 대형 트럭용 자율 주행 모듈과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빌트로보틱스(Built Robotics)처럼 각종 건설용 중장비에 탑재할 수 있는 자율 주행 모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도 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브레인코프(Braincorp) 등 많은 스타트업들은 상업용 청소기나 물품 운반용 카트 등 실내에서 사용되는 각종 장비를 무인화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