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인이 들려주는 산업 이야기]
엘니뇨의 경제 효과 [상상인이 들려주는 산업 이야기]
하반기 본격적인 엘니뇨 영향권에서 4분기 슈퍼 엘니뇨로 발전될 가능성도 높게 예측된다.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 대비 높아지는 현상이다.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 변화와 함께 기후 변동을 야기한다. 특히 태평양과 인접한 남미·남아시아·오세아니아 등에 이상 기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태평양과 브라질에는 가뭄이, 페루와 칠레 등 남미 연안 지역에는 홍수 피해가 주로 발생한다.

문제는 이 지역들이 농산물과 광물 등 주요 원자재 생산 지역이라는 것이다. 농산물은 기후 변화에 따른 생산량과 품질 편차가 크기 때문에 엘니뇨 발생 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원자재 중 하나로 평가된다. 엘니뇨가 강해질수록 기상 이변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1972년 발생한 슈퍼 엘니뇨는 세계 곡물 평균 가격을 20% 정도 상승시킨 적도 있다. 다만 모든 엘니뇨 발생 기간 동안 곡물 가격이 올랐던 것은 아니다. 1982년과 1997년 등 곡물 가격이 떨어졌던 기간도 있다.

실제 엘니뇨 발생시 평균 곡물 가격이 상승했던 시기는 1972년 이후 발생한 14번의 주요 엘니뇨 발생 연도 중 5번에 불과하다. 엘니뇨는 매년 지역과 시기별로 상이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 하반기 글로벌 기후 전망에 따른 대표적 곡물인 옥수수와 소맥 가격의 방향성에 대해 분석해 본다.

옥수수는 엘니뇨로 인해 작황 개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옥수수 생산 1위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글로벌 옥수수 생산량 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7~8월 미국에서 옥수수는 파종 이후 성장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 시기의 강수량이 옥수수의 작황과 품질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가뭄으로 인해 옥수수 작황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다만 엘니뇨가 발생하면 주요 옥수수 생산지인 미국 중부 콘벨트 지역에 평년보다 습한 기후가 형성된다. 실제로 미 해양대기청은 올해 8월 미국의 주요 옥수수 생산지에 평년 대비 강수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이는 미국 옥수수 작황 개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소맥(밀)은 올해 공급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소맥의 주요 수출 국가는 미국과 호주다. 겨울 밀의 파종과 성장기인 11~1월 사이 미국 북부 지역에 건조한 기후가 예상된다. 미 북서부 지역에는 워싱턴·몬태나·오리건·아이다호 주 등 주요 겨울 밀 재배지가 있다. 가뭄의 영향으로 미국 소맥의 품질과 생산량에 피해가 우려된다. 호주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밀 공급 차질이 예상된다. 호주 기상청은 8월부터 9월까지 중부·남동부 밀 생산 지역에 높은 확률로 평년 대비 강수량이 낮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7~9월은 파종이 끝난 밀의 성장 단계로 가뭄 발생시 등급 하향과 생산량 감소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다. 호주는 엘니뇨 기간 동안 건조한 기후로 인해 산불 피해가 다수 발생됐기 때문에 이에 따른 운송·생산 차질 우려 또한 상존할 것으로 보인다.

소맥의 공급에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잔존해 있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또한 중요한 밀 수출 국가로 자리하고 있다. 7월 러시아의 흑해 곡물 협정 탈퇴에 따른 공급 차질 리스크는 소맥의 가격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다만 위 전망은 각국 기상청의 기후 예측 모델과 과거 엘니뇨 시기별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기후 패턴을 전제로 분석한 결과다. 날씨에 대한 예측은 변수가 많고 장기 전망일수록 수정되는 것이 적지 않다. 따라서 글로벌 기후 동향을 모니터링하며 발생하는 변동성에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발생한 글로벌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강도높은 긴축을 야기했고 글로벌 경기를 하강 국면으로 이끌었다. 따라서 올해 엘니뇨로 인한 글로벌 이상 기후가 전망되는 만큼 식품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률 급등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엘니뇨 시기별 미국의 물가 추이는 과거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주요 엘니뇨 기간 동안 식품 가격의 상승률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웃돌면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유의미하게 작용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후 변화에 일정 부분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엘니뇨의 발생과 식품 가격 간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소맥과 같이 공급 차질이 생기는 작물이 있는 반면 옥수수와 같이 작황 개선 가능성이 높은 작물도 존재하는 등 엘니뇨의 발생은 곡물 가격의 상하방 요인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급등 우려는 다소 경감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엘니뇨로 인한 기후 변동의 지역·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품 가격 급등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상 기후가 예상보다 강하고 원유와 산업 금속 등 경기 민감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동시에 나타난다면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적 통화 정책이 연말까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주요 원자재 수요처인 중국이 7월 물가 하락 국면에 접어든 만큼 발생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판단된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