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심리가

김수정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심리가
김수정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심리가
한 해 30,000~50,000여 명(연간 출소자 수=2019년 56,900명 / 2020년 51,817명 / 2021년 35,844명)이 법무보호대상자라는 이름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한 번의 실수 또는 잘못된 일임을 알고도 저지른 행동으로 세상과 단절돼야 했던 그들은 죗값을 치룬 뒤 다시 사회와 마주하게 된다.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아도 스스로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사회와 단절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와 단절됐을 때 또다시 범죄의 동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 이른바 법무보호대상자(이하 보호대상자)들이 사회에 다시금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기관이다. 서울, 경기도 등 전국 26개 지부(소)로 운영되는 이곳은 보호대상자들에게 생활지원부터 취·창업지원, 심리상담 등을 지원하며 보호대상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특히 공단의 상담심리사는 보호대상자들의 마음 속 그어져 있는 빨간 줄을 치유하는 ‘마음의 의사’로 불린다. 10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보호대상자들의 심리를 상담해 온 김수정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심리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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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한국법무보호공단이라는 곳이 조금 생소할 것 같아요.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저희 공단은 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법무보호대상자들이 사회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대표적으로 생활지원, 가족지원, 취업지원, 상담지원 4가지 지원사업을 운영 중인데요. 그 중 심리상담은 출소 후 우울·불안, 대인관계 문제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보호대상자들을 상담을 통해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공단에서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2013년에 입사해 현재 경기남부지부(경기도 수원)에서 상담심리팀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공단 입사 전에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아이들의 심리 상담을 하기도 했어요.”



“만기 출소자 등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개인·기관의뢰 가능해···출소한 보호대상자들 대부분 방어적이고 공격적 성향”




상담의 대상자는 출소를 앞둔 보호대상자인가요.
“그렇죠. 출소를 한 분들이나 만기 출소 예정자들이 대상이 됩니다. 수감 중에는 상담을 받을 수 없어요.”

보호대상자들이 상담은 어떤 식으로 신청하나요.
“보통 상담은 개인의뢰, 기관의뢰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개인이 상담을 필요로 해서 신청하는 경우와 교도소, 구치소, 보호감찰소 등 교정기관에서 상담이 필요한 출소자들을 연결시켜 상담을 받게 하는 경우로 나뉩니다.”

개인 의뢰의 경우 어떻게 알고 상담신청을 하나요.
“사실 저희 공단이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 곳이에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교정기관에 찾아가 만기 출소를 앞둔 분들을 대상으로 집체교육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알리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심리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나요.
“그리 많진 않아요. 심리상담을 의뢰한다는 게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신청 하는데 까지 마음먹기가 쉽지 않거든요. 보호대상자들 대부분이 상담은 사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상담이냐는 거죠. 출소 후에 일자리가 필요하다거나 가족, 거주지가 없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저희 공단에서 생활·취업 지원을 하거든요. 그 경우 적극적으로 심리 상담을 함께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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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상담심리가가 공단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제공)
김수정 상담심리가가 공단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제공)
대게 보호대상자들은 출소 후 어떤 심리상태인가요.
“대부분이 방어적이고 공격적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론 무례하게 구는 분들이 절반 이상이죠. 복역기간에 따라, 초범·재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초범인데 장기복역을 한 경우, 어떻게 보면 한 번의 실수가 중범죄가 된 케이스죠. 이 경우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출소를 하더라도 분노에 차 있어요. 이런 상황이 내 탓이기 보다 누군가에 의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그 실수로 가족, 지인, 부모, 재산 등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여러 번 구속 경험이 있다거나 흉악범들의 경우엔 어떤가요.
“재범 이상인 대상자들은 조금 달라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건 알지만 거기까지예요.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이전과 비슷하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심리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바꿔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죠.”


“상담가-보호대상자 간 라포 형성 되기 전 보이지 않는 기 싸움도 있어···내담자와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질문 유도”



상담을 위해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은근한 기 싸움도 있겠는데요.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죠. 신입교육을 할 때도 늘 얘기하는 부분이 대상자들과 ‘라포(rapport)형성’이 되기 전 상담을 할 땐 상담실 문을 조금 열어두라고 해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죠. 그 경우 내담자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혹시 내가 무슨 짓을 할까봐 문을 열어 놓은 걸까’라고 말이죠. 그런 티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상담가는 겁을 먹거나 긴장을 하면 안돼요. “답답하실 것 같아 열어 놨어요. 불편하다면 말씀하세요”라고 정확히 말해줍니다. 그게 상담의 시작이죠. 절대 기 싸움에선 지지 않죠.(웃음)”

지금이야 ‘짬바’가 생겼겠지만 초반에는 긴장되거나 무섭기도 했겠어요.
“솔직히 첨엔 좀 두려웠죠. 사실 보호대상자를 살면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공단 면접 때도 “대상자가 폭력을 행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거든요. 그때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론 깜짝 놀랐죠.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한 번은 상담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담당 직원이 오늘 내담자 전과가 ‘살인미수’였다고 하더군요. 그땐 조금 긴장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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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전 상담을 받으러 오는 보호대상자들의 범죄이력을 웬만하면 확인하지 않아요. 물론 확인하려면 할 순 있지만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간단한 인적사항 외엔 확인 안 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가 첫 상담 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냉랭한 반응인데, 기 싸움을 한다는 건 마음을 열고 있다는 표시거든요. 그 과정을 거쳐야 속에 있는 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어요. 사회에서는 전과자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만 사실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걸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거죠.”

‘라포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노하우가 있으세요.
“대화의 방법인데요. “오늘 날씨 덥죠?” 라고 물어보면 보통 “덥다, 안 덥다” 두 가지 답변밖에 들을 수 없어요. 그래서 “오늘 날씨 어때요?”라고 물어보는 편이죠.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유도하는 거죠. 대화가 어려우면 그림이나 모래놀이 치료와 같은 걸 활용해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10년 간 살인미수·강도·강간 등 저지른 보호대상자 비롯 가족들 700여 명 상담해···막 출소한 보호대상자들은 동굴 속에 갖혀 있는 느낌”


그동안 몇 명의 보호대상자를 상담하셨어요.
“저희는 보호대상자를 포함해 그들의 가족들도 상담을 합니다. 그 수를 합치면 그동안 700여 명은 되는 것 같아요.”

언론에 보도된 흉악범들을 만난 적도 있으세요.
“조두순이 출소 전 가족을 만나 상담한 적이 있었어요. 살인미수·강도 등 강력범죄자나 전과 5~6범이 넘는 이들도 만나봤죠.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내담자가 있는데,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해 가정폭력으로 다녀 온 분이었어요. 상담을 하러 왔는데,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선 ‘한번 얘기해봐’라는 식이었죠. 입에 욕을 달고 살 정도로 아주 공격적이고 무례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 간 그런 태도로 일관한 내담자를 만났는데, 처음엔 상담시간이 너무 더뎌 제가 안절부절 했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문득 제가 이 사람을 포기할까봐 겁이 나더라고요.”

그 내담자와의 상담은 어떻게 마무리가 됐나요.
“안되겠다 싶어 제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되뇌였죠. 몇 번의 상담을 이어가던 중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봤는데, 그때 그 분의 자세가 바뀌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횟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는데, 횟감를 고르는 방법부터 횟집에서의 팁까지 생선과 연관된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더군요. 똑같은 이야기를요. 그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예요. 저도 꽤나 경청하면서 공감을 해주니 저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쌓이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왜 아내를 폭행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후회한다는 얘길 하더군요. 나중에는 아내와 함께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흉악범들과 기 싸움 즐기는 직업 [강홍민의 굿잡]
보호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도 함께 전달해야 하잖아요.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나요.
“당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를 인지시켜주는 게 중요해요. 실수든 뭐든 당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건지에 대한 것들을 반복 확인시켜 주는 게 저희 역할이죠. 사실 대상자들을 처음 만나보면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에요. 그 어두운 동굴에 함께 들어가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불을 켜주는 안내자가 상담심리가인 셈이죠.”

상담 시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할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실에는 CCTV가 설치돼 있고, 대부분 상담실이 사무실과 가까이 배치돼 있어요. 일부 상담실에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는 곳도 있고요.”

현재 공단 소속 상담심리사는 몇 명이 근무하시나요.
“저희 기관이 전국에 26곳(19지부·7지소)이 있는데, 그곳에 보통 한 명이 근무 중이고, 두 명이 배치된 곳도 있긴 합니다.”

상담심리사 채용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 다른 직무와 함께 공단 공개채용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연간 10명 미만으로 채용 중이고, 상담심리사는 경력경쟁이라 경쟁률이 9 : 1 정도입니다.”

공단의 상담심리사가 갖춰야 할 조건도 있을 것 같아요.
“상담심리직이 전문직이라 전문자격증이 필요한데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2급 이상, 상담심리사 2급 이상, 임상심리사 2급 이상, 전문상담사 2급 이상 중 1개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격증 취득만큼이나 중요한 건 전문성과 따뜻함을 갖추고 있어야 해요. 일반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업무에 임해야 하지만 반대로 친절하고 따뜻하게 보호대상자를 대하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소명의식이 없어서는 안 될 직업으로 보여집니다. 상담심리사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 10년 간 많은 보호대상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기도, 때론 설레는 경험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적 특성을 볼 때 짧은 시간 안에 바뀌진 않아요. 중요한 건 꾸준한 노력은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이죠. 상담사의 역할이 행정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는다면 직업의 비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범죄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