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 8월 19일 한국에서 첫 매장 열어
악동 이미지 통해 인지도 높인 뒤 한정판 전략으로 젊은층 구매 욕구 자극
폐쇄적 문화, 신비주의 콘셉트 등 고수하며 ‘힙한 이미지’ 유지

[케이스 스터디]
슈프림 서울 매장. (사진=슈프림)
슈프림 서울 매장. (사진=슈프림)
직원들은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다. 직원들이 매장에 오는 손님을 평가하듯 훑어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품질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매장에 가면 고를 수 있는 제품도 몇 없다. ‘판매하는 제품보다 직원들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신규 컬렉션이 출시될 때마다 매장 앞엔 기다란 줄이 늘어선다. 누군가는 ‘뒷골목의 샤넬’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이다.

지난 수년간 슈프림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슈프림과 컬래버레이션하기 위해 나이키 등 스포츠 웨어는 물론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까지 줄을 섰다. 최근 슈프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말이 나오지만 마니아들은 여전히 슈프림을 원한다. 한국 공식 매장의 오픈을 기념해 선보인 무궁화 로고 티셔츠는 정식 판매가(7만4000원)에 5배가 넘는 가격에 재판매되고 있다. 올해로 설립 29주년이 된 슈프림, 슈프림의 성공 비결은 뭘까.뉴욕의 작은 스케이드보드 매장, 거대 기업으로슈프림은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63년생 영국계 미국인 제임스 제비아가 1994년 4월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제비아가 매장을 여는 데 사용한 비용은 1만2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000만원). 맨해튼 다운타운에 자리 잡은 슈프림 1호 매장의 정체성은 스케이트보드를 판매하는 ‘보드 숍’이었다.
슈프림 로고. (사진=슈프림)
슈프림 로고. (사진=슈프림)
사실 제비아는 매장을 열기 전까지 스케이트보드를 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매료됐다. 제비아는 특히 1980년 설립된 ‘선배’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의 서프보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보드 숍 매장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후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그의 원칙은 인근에 ‘보드 전문 용품을 파는 곳이 없는 곳’이었다.

맨해튼의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보드 용품들을 팔기 시작하자 보더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픈 이후에는 덱(발을 올리는 판자), 휠(바퀴), 트럭(덱과 휠을 연결해 주는 금속 부품) 등 보드 용품의 종류를 늘리며 고객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보더들이 더 몰려들었다. 말 그대로 뉴욕 보더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제비아는 단순히 보딩 용품을 파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보더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쓸만한 모자와 입을 수 있는 후디(모자 달린 상의), 티셔츠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슈프림이 처음 만든 제작 의상은 1994년 선보인 이른바 ‘택시 드라이버’ 티셔츠다. 연파란색의 티셔츠 전체를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들과 유명 스케이터들의 사인으로 가득 채운 디자인이다.

이후 제비아는 개념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오마주한 로고를 완성한다. 지금의 슈프림을 있게 한 직사각 빨간 테두리 안에 굵은 이탤릭 퓨처라 오블리크(Italicized Futura Oblique) 폰트로 쓰인 ‘슈프림(Supreme)’이 바로 그것이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고해지자 스케이트보딩에 관심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까지 매장을 찾아 의류와 액세서리는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제비아는 주력 상품을 의류로 전환했다. 1990년대 후반 슈프림은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미국 힙합 가수들의 제품 착용은 브랜드가 유명세를 타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칸예 웨스트, 에이셉 라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등 유명 래퍼들이 슈프림 제품을 입으면서 힙합 문화를 동경하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더 높아졌다.

슈프림의 매출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슈프림의 한 해 매출은 약 5000억원 정도다. 40~50달러짜리 티셔츠가 주력 상품이어서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는 매출을 훨씬 넘어선다. 2017년 글로벌 투자회사 칼라일이 슈프림의 지분 50%를 인수할 때 기업 가치를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로 산정했다. 현재는 VF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VF코퍼레이션은 21억 달러(약 2조3000억원)를 투자해 슈프림을 인수했다.
슈프림 해외 매장. (사진=최수진 기자)
슈프림 해외 매장. (사진=최수진 기자)
성공 포인트 1. ‘악동’을 자처하다슈프림의 성공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크게는 젊은층을 끌어들인 악동 이미지, 팬덤 중심의 거대한 커뮤니티 구축, 럭셔리를 모방하면서도 짝퉁을 허용한 특별한 마케팅 전략 등이 있다.

1990년대 슈프림의 이미지는 ‘악동’이었다. 슈프림이 1994년 ‘빨간 박스 로고’를 만들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미국의 패션 브랜드 캘빈클라인(CK)의 속옷 광고 포스터에 장난을 친 일이다. 캘빈클라인은 자사 모델인 케이트 모스를 앞세워 속옷 신제품을 론칭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길거리 곳곳에 케이트 모스 포스터를 붙였다.

슈프림은 이 포스터에 자사 로고 스티커를 붙이면서 논란을 만들었다. 케이트 모스가 입은 티셔츠 또는 그가 착용한 언더웨어 위로 ‘슈프림’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이후 캘빈클라인은 슈프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슈프림은 반항적인 이미지를 얻으며 미국 1020세대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제비아는 10대들을 슈프림의 고객으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슈프림의 특이한 제품. (사진=슈프림)
슈프림의 특이한 제품. (사진=슈프림)
슈프림의 특이한 제품. (사진=슈프림)
슈프림의 특이한 제품. (사진=슈프림)
슈프림은 2012년 케이트 모스를 모델로 발탁해 1994년 캘빈클라인의 광고를 오마주한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슈프림의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슈프림이 자사 마케팅에 다른 브랜드를 끌어들인 것은 캘빈클라인뿐만이 아니다. 2000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사건도 유명하다. 슈프림은 새로 선보이는 스케이트보드 제품에 무단으로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디자인(LV 로고가 들어간 무늬)’을 사용했다. 모조품을 양산하는 대표적인 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루이비통 이미지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슈프림은 루이비통의 모조품을 자처하면서 오히려 ‘쿨하다’, ‘신선하다’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루이비통의 생각은 달랐다. 슈프림이 브랜드의 명성을 침해했다고 판단,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슈프림의 기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3년에는 범죄자의 체포 장면을 티셔츠 전면에 크게 새겨 판매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금융 사기범을 검거하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는데 범인이 슈프림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슈프림은 이 장면을 그대로 판매 제품에 실었고 해당 제품 역시 출시 직후 품절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 슈프림은 2007년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2009년 내셔널하키리그(NHL) 등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수많은 소송은 슈프림의 반항적인 이미지가 굳혀지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슈프림은 1990년대 악동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비아는 2009년 인터뷰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매 시즌 내놓은 작품이 모두 비슷하지만 언제나 1990년대 초반의 느낌을 담으려고 한다”며 “1990년대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슈프림의 사업도 그때 시작됐으니 항상 그 시대를 바라보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부”라고 말했다.
슈프림. (사진=슈프림)
슈프림. (사진=슈프림)
성공 포인트 2. ‘커뮤니티’를 구축하다슈프림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였다면 브랜드의 상품 가치를 끌어올린 것은 커뮤니티 문화였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슈프림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는 소비자가 듣고 싶어하고 참여하기를 열망하는 이야기를 전한다”며 “브랜드가 판매하는 제품보다 그들이 제공하는 경험을 더 좋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슈프림은 성공한 21세기 브랜딩”이라며 “셀카 세대인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슈프림은 창업 초기부터 스케이트보더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보더들이 스케이트를 멈추지 않고도 매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전부 없애고 매장 안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매장 직원들도 스케이트보더만 채용했다. 완벽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결정이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슈프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브랜드가 구축한 커뮤니티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추종자’를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개념은 기존 보더에서 전체 고객으로 확장됐다. 슈프림의 커뮤니티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그 가치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슈프림의 발매 정보를 공유하는 웹사이트 슈프림커뮤니티, 인스타그램 계정들도 많다. 이들 사이트는 모두 슈프림과 무관한 곳으로, 모두 팬들이 운영한다.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의 팔로워(특정 계정에서 게재하는 콘텐츠를 구독하는 사용자를 의미)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여러 개다. 이들이 계정을 운영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슈프림에 대한 ‘애정’이다.

특히 슈프림의 거대한 팬덤은 브랜드의 상품 가치를 유지하고 리셀가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소량만 판매하는 슈프림의 판매 전략 때문에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고객들이 다수다. 이들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슈프림의 제품을 구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8월 13일(현지 시간) 발행된 1.5달러 뉴욕포스트 종이 신문의 품절이다. 슈프림은 2018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홍보하기 위해 뉴욕포스트 1면 커버에 브랜드 전면 광고를 실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뉴욕포스트가 1면 전체를 광고면으로 대체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뉴욕포스트는 하루에 23만 부가 발행되는데 2018년 8월 13일자의 신문은 나오자마자 모두 품절됐다. 온라인에서는 신문이 나온 당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12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판매가에 8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밖에 슈프림은 벽돌, 종이 재질의 주류 커버, 쇠 지렛대, 소화기 등 패션 제품이 아닌 것들에 슈프림 로고를 붙여 판매했다. 이 제품들 역시 팬덤 사이에서는 구하도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현상에 대해 “슈프림의 팬들에게 이 브랜드의 제품은 종교적 상징에 가깝다”며 “이들에게 신문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슈프림. (사진=슈프림)
슈프림. (사진=슈프림)
성공 포인트 3. ‘럭셔리’를 모방하다“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럭셔리(명품)를 압박하고 있다. 일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문화적 현상이 될 만큼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바로 슈프림이다.”

포브스는 2016년에 슈프림에 대해 이같이 전했다. 슈프림과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가 명품을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다. 발렌시아가 디자이너 뎀나 바질리아도 “럭셔리 제품의 기준은 변했다”며 “품질과 장인 정신에서 ‘제품의 독창성’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슈프림이 명품을 위협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데는 명품의 판매 전략을 차용한 것이 주효했다.

에르메스와 샤넬 등 명품은 고급화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을 계획적으로 통제한다. 물량을 제한해 희소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초기 공급 수량은 수요 대비 훨씬 적게 잡아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끌어올린다. ‘지금 사지 못하면 나중에 더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헝거 마케팅’이다. 헝거 마케팅은 한정된 물량만 판매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기법으로, 잠재 고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배고픔(hungry)’을 느끼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슈프림은 럭셔리의 독점성을 모방하면서도 가격 접근성은 높였다. 티셔츠의 출시가는 10만원 아래다.

하지만 희소성은 명품보다 높다. 명품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인기가 많은 제품을 꾸준히 재생산하며 스테디셀러 라인으로 만들지만 슈프림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인기가 많은 제품이라도 같은 제품을 2번 이상 제작하지 않는다.

슈프림은 1년에 2번 신상을 내놓는다. 봄여름(SS) 컬렉션과 가을겨울(FW) 컬렉션이다. 판매 방법도 특이하다. 통상 패션 회사들은 신제품을 한 번에 공개하고 판매하는데 슈프림은 순차적으로 공개, 판매한다. 신제품 공개 시즌이 오면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매장에서 신제품을 선보이는 ‘목요일 드롭(thursday drop)’ 전략이다. 어떤 제품이 언제 출시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객들은 그날 매장에 들어가고 나서야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이 완판되면 매장과 온라인 홈페이지 등 공식 판매처를 통한 제품 구매는 어려워진다. 리셀 시장에서 구매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포브스는 “이런 전략 탓에 슈프림의 모든 상품은 나오는 즉시 한정판 컬렉션으로 전환된다”며 “이때 팬덤은 놓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포모(FOMO : The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겪는다. 제품 출시 기간 슈프림 웹사이트로 유입되는 트래픽은 비출시 기간 대비 최대 1만7000%까지 폭증한다”고 분석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