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은행 사건 사고  결국은 회장과 은행장의 책임이다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증권사들은 새해 달력이 나오면 가장 먼저 빨간 날(휴일)을 센다. 쉬는 날이 많으면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은행은 다르더라. 빨간 날에도 꼬박꼬박 이자가 들어오더라.”

2004년쯤이었다. 증권사 대표를 하다가 은행장에 취임한 분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을 열지 않아도 돈을 버는 곳이 은행이라는 거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휴일에도 정해진 수입을 얻는 곳은 부동산 임대업(임대료)과 은행을 비롯한 여신 금융회사(이자)뿐이다. 문 닫으면 매출도 없는 제조업·유통업·요식업 등과는 다르다.

더욱이 은행은 안정적인 이익을 보장받는다. 은행들은 조달 금리(예금 금리)에 가산 금리(마진)를 더해 대출 금리를 산정한다. 조달 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걱정 없다. 대출 금리를 올리면 그만이다. 앉아서 돈 버는 면허 사업으로 불릴 만하다.

은행들이 버는 이익은 당연히 천문학적이다. 5대 시중은행의 상반기 이자 이익은 20조원, 당기순이익은 8조원을 넘었다. 사상 최대다. 상장 기업들의 상반기 순이익이 58%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평균 연봉 1억원, 성과급 잔치, 5억원에 육박하는 희망 퇴직금 등으로 시샘어린 눈총을 받는 것도 이런 수익 구조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은행에도 리스크는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떼이는 것이다. 대출해 주거나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손실을 입는다. 여신 심사나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쏟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직원들의 사건·사고다. 돈을 횡령하거나 사고를 치면 평판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내부 통제가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은행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은행에선 700억여원, 경남은행에선 560억여원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KB국민은행 직원들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원대의 주식 매매 차익을 챙겼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 동의 없이 1000여 개의 증권 계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라임 등 펀드 불완전 판매로 홍역을 치른 상흔이 여전한 데도 그렇다.

은행 사건·사고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다. 특정 분야에 너무 오래 근무시키는 등 내부 통제 시스템의 문제(우리·경남은행)와 여전한 실적 경쟁(대구은행),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KB국민은행)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맞는 분석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 등 최고경영자(CEO)의 태도다. 주인 없는 은행의 특성상 회장이나 은행장은 절대 권력을 갖는다. 이들의 최대 관심은 연임이다. 취임하자마자 연임을 위해 실적 올리기에 매달린다. 직원들과 노조가 싫어하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말로만 내부 통제를 강조하지 그만한 인력을 배치하지도 않는다. 내부 통제가 문제가 되면 “나는 몰랐다”고 발을 뺀다.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도 한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옷을 벗던 과거 은행장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회장이나 은행장이 시시콜콜한 사건·사고까지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 책임지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 조성이다. 사건·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사고를 처리하면 직원들은 딴마음을 먹지 못한다. 문 닫고도 돈을 버는 은행으로선 실적 올리기보다 더 중요한 책무일 수 있다.

마침 감독 당국은 횡령 같은 사고가 조직적·반복적으로 발생하면 CEO도 책임지도록 명문화한다고 한다. 다행이긴 하지만 금융그룹 회장이나 은행장들이 그만큼 불신받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해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하영춘 편집인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