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홈플러스 운송사 상대로 소송
법원 “노동자 지위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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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상품 배송 위탁 계약을 한 운송 업체 소속 온라인 배송 운전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유지됐다.

최근 배송 운전사 측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연이어 나오면서 유통‧운송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와 경제적·조직적 종속 관계”

서울고등법원 행정6-1부(재판장 황의동)는 2023년 7월 12일 홈플러스와 배송 위탁 계약을 체결한 운송사 서진물류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 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서진물류 소속 배송 운전사들이 가입해 있는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가 2020년 8월 서진물류에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위한 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서진물류는 교섭을 요구받은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고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가 시정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배송 운전사들은 온라인으로 홈플러스 상품을 주문한 고객들에게 물건을 전달해 주는 업무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연이어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 측의 시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반발한 서진물류가 법원의 문을 두드리면서 소송전의 막이 올랐다.

서진물류 측은 “배송 운전사의 근무 시간 등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배송 운전사와의 관계도 지속적·전속적이지 않다”면서 “배송 운전사들이 노조법상 노동자라는 전제로 시정 신청을 받아들인 중노위의 판정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선 연이어 배송 운전사들이 노조법상 노동자라고 인정됐다. 1·2심 재판부는 배송 운전사의 소득 대부분이 서진물류에서 나온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배송 운전사들은 보통 1주일에 6일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했다. 이 같은 근무 시간을 고려하면 배송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 시간을 비롯해 기본 운송료, 유류 보조금, 인센티브 등 근로 계약 내용도 대부분 서진물류가 일방적으로 정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배송 운전사들은 계약 내용에 이의가 있더라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 외엔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방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서진물류가 배송 운전사들을 지휘하고 감독한 정황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서진물류는 배송 운전사가 업무 내역을 상시 보고하는지, 배송 차량을 적절히 관리하는지 등을 평가해 점수가 90점 이하인 경우 1차 경고를 하고 2차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배송 운전사는 배정받은 물량을 시간대별로 나눠 받고 정해진 경로를 통해 배달했다. 배송 차량 도색과 시안도 홈플러스가 지정하는 대로 통일하도록 요구받았다. 재판부는 “배송 운전사들이 홈플러스 상품 배송 외에 다른 운송 업무를 하려면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며 “서진물류와 경제적·조직적 종속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밖에 △배송 운전사들이 회사에 제공하는 노무가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라는 점 △배송 운전사들이 홈플러스의 온라인 주문 물품을 배송하려면 서진물류와 같은 운송사를 통해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 점 △자동 갱신 규정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같은 조건으로 2년씩 계약이 연장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서진물류와 배송 운전사들의 관계를 지속적·전속적이라고 판단했다.

배송 운전사들, 연이은 승소로 유리한 고지 점령

서진물류가 항소심에서도 패소하면서 온라인 배송 운전사들의 “노조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온라인 배송 운전사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한 판례가 하나둘 쌓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서진물류가 “노조 활동 과정에서 운송 계약을 위반하고 방송 촬영을 해 고객의 민원이 발생했다”면서 이수암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과의 계약을 해지한 일을 두고 부당 노동 행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 과정에서도 온라인 배송 운전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서진물류처럼 홈플러스와 배송 위탁 계약을 한 유진로지스틱스 역시 쟁점이 같은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유진로지스틱스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 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사건 역시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의 단체 교섭 요구 사실을 유진로지스틱스가 공고하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돋보기]
대법 “아이 돌보미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첫 판결

지방자치단체 위탁 서비스 기관을 통해 일하는 아이 돌보미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온 것도 최근 노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이 돌보미 수당 인상 요구로 이용자와 지자체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3년 8월 18일 광주 아이돌봄 서비스 기관과 계약하고 근무해 온 아이 돌보미 163명이 서비스 기관을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아이 돌봄 서비스는 ‘아이돌봄지원법’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가 가정의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다. 여성가족부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거주 지역에 있는 서비스 기관이 아이 돌보미를 신청 가정에 보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비스 기관은 지자체가 지정하고 아이 돌보미 수당은 이용자가 낸 이용료와 정부 지원금을 합쳐 산정한다. 서비스 기관이 이용자에게 이 금액을 지급한다.

아이 돌보미들은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서비스 기관과의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3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발생한 연장·야간·휴일 수당, 주휴 수당, 연차 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비스 기관들은 “돌보미는 종속적으로 일한 노동자가 아니며 설령 노동자라고 해도 해당 업무를 위탁·배정한 각 지자체를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아이 돌보미들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선 패소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서비스를 신청한 가정과 연계할지 선택하는 것은 아이 돌보미”라며 “이들은 서비스 기관으로 출퇴근할 의무도, 본인 의사에 반해 근로를 제공할 의무도 없으며 근무 시간과 장소가 구속되지도 않는다”고 판시했다. 아이 돌보미 사용자도 각 지자체라고 봤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여가부의 ‘아이 돌봄 지원 사업 안내’가 복무를 규율하는 일종의 지침”이라며 “기관이 활동 일지 점검을 통해 근태를 관리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배정된 뒤에는 정해진 시간·장소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했고 임의로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고 했다. 서비스 기관을 두고는 “이용 가정을 배정하는 주체로서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맞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 이후 아이 돌보미의 추가 수당 요구로 아이 돌봄 서비스 이용 요금이 다소 오를 가능성이 거론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아이 돌보미 2500여 명이 똑같은 쟁점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며 “아이 돌보미가 계속 이긴다면 인건비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