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머니룩,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어려운 경제 상황 속 패션으로 부 과시
여성복 중심으로 확산된 올드머니룩, 남성복으로 퍼져
캐시미어 등 고급 소재 활용 좋은 가을·겨울 시즌 맞아 올드머니룩 관심

올드머니룩 트렌드가 남성복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마에스트로. (사진=LF)
올드머니룩 트렌드가 남성복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마에스트로. (사진=LF)
명품업계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스텔스 럭셔리’가 패션업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 조용한 명품이라는 뜻의 스텔스 럭셔리는 상표를 숨기고 고급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파생된 패션 스타일이 ‘올드머니룩’이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대대로 부를 축적해 온 부자들의 옷장을 열어보면 있을 법한 아이템들이 올드머니룩에 해당한다. 튀지 않는 무채색 계열의 색상에 유행을 타지 않는 단순한 디자인이 핵심이다. 이 같은 유행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부동산 구매 등과 비교할 때 비교적 적은 돈으로 부를 표현할 수 있는 패션에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돈 없는 젊은이들, 패션으로 ‘부’ 표현올드머니룩이 패션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올드머니(old money)’는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부 또는 집안 대대로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명시돼 있다. 오래된 상류층을 일컫는 말로, 신흥 부자를 뜻하는 ‘뉴 머니(new money)’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올드머니룩은 ‘상속받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옷차림’을 뜻한다. 특히 상류층의 고급 취미로 꼽히는 승마·테니스·요트·골프 관련 의류가 대표적인 올드머니룩이다.
알레그리. (사진=LF)
알레그리. (사진=LF)
올드머니룩이 인기를 끈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10년 초반부터 코로나19 사태 기간까지는 뉴머니룩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힙합 가수들을 중심으로 성공을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향이다.

당시 힙합 가수들 사이에서 로고가 크게 새겨진 구찌·루이비통 등의 명품에 굵은 금목걸이와 금반지·금팔찌를 함께 착용하는 뉴머니룩이 큰 관심을 받았다. 비욘세의 남편이자 유명 힙합 가수인 제이지와 리한나의 남편인 에이셉 라키 등이 구찌 제품을 즐겨 착용한 모습은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뉴머니룩 대신 올드머니룩이 떠오르고 있다. 명품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된 스텔스 럭셔리 트렌드가 패션업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는 올드머니룩에 대해 “드라마 ‘석세션’이나 ‘가십걸’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세대는 ‘올드 머니’에 매료됐다”며 “부자들의 은밀한 삶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올드머니는 열심히 일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여겨진다. 최근 들어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도 올드 머니가 뜨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올드머니룩의 유행에는 어려운 경제 상황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이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소비층이 생겨나고 있다. 하퍼스 바자는 “가처분 소득이 많은 20대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활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지금 호주에서는 젊은이들이 집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드 머니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은 명품을 사는 것도 어렵다. 이들은 패션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초부터 유행한 올드머니룩은 그간 여성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1980년대 인기를 얻은 미국 팝가수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자 SNS 인플루언서인 소피아 리치가 올드머니룩을 선보이면서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소피아 리치의 패션을 따라 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 밖에 킴 카다시안의 이복동생 카일리 제너, 영화배우 기네스 팰트로, 고(故)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등도 올드머니룩의 대표 패션으로 꼽힌다.
알레그리. (사진=LF)
알레그리. (사진=LF)
최근 들어 남성복 트렌드도 달라지고 있다. 그간 남성복은 스트리트와 고프코어 패션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패션을 뜻하는 ‘고프(gorp)’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아웃도어 패션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지난해부터 1020세대의 관심이 높아지며 관심을 얻었다. ‘고프코어’에서 ‘올드머니’로…남성복 트렌드도 변화하지만 올가을에는 올드머니룩 트렌드가 남성복으로 확대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기존의 올드머니룩이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니트와 카디건, 트위드 재킷 등으로 조명받았다면 이번 시즌에는 깔끔한 실루엣과 고급스러운 소재감을 강조한 남성 슈트·슬랙스·코트 등이 올드머니룩의 핵심 아이템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가을은 올드머니룩을 표현하기 좋은 계절”이라며 “소재의 다양함을 집중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고급화된 소재감에 세련된 색감 및 실루엣으로 승부를 거는 움직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드머니룩 트렌드에 힘입어 최고급 패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캐시미어 소재도 남성복에서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섬유의 보물’이라고도 불리는 캐시미어 소재는 카슈미르 지방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산양에서 나온 털을 일컫는다. 생산량의 한계와 희소성 때문에 다른 소재에 비해 가치를 인정받는다.

실제 LF의 남성복 브랜드 ‘마에스트로’, ‘질스튜어트뉴욕’, ‘알레그리’ 등이 올드머니룩 트렌드의 영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마에스트로는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남성들의 고급스러운 비즈니스 룩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로로피아나·제냐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소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에스트로는 올드머니룩 바람에 힘입어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슈트는 30%, 정장 팬츠는 50%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W컨셉에서 인기 있는 남성 신발 브랜드 '조셉트' 모습. (사진=W컨셉)
W컨셉에서 인기 있는 남성 신발 브랜드 '조셉트' 모습. (사진=W컨셉)
깔끔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질스튜어트뉴욕 남성도 같은 기간 브랜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5% 성장했다. 가을 시즌에는 고급 울 소재를 활용하 재킷과 니트 소재 블루종 점퍼 등을 내세워 올드머니룩 열풍을 이어 간다는 전략이다.

올드머니룩을 선보이는 또 다른 브랜드 알레그리는 1월부터 8월까지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5% 늘었다. 특히 8월 초부터 출시한 가을·겨울 컬렉션 매출은 전년 대비 50% 급증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전개하는 뉴욕 컨템퍼러리 브랜드 띠어리 역시 심플한 디자인, 클린한 실루엣, 뛰어난 소재와 착용감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올드머니룩 브랜드로 언급된다.

띠어리 관계자는 “베이직한 모노톤을 중심으로 캐시미어 스웨터와 울 슈트 팬츠를 조합하거나 캐시미어 터틀넥 풀오버와 울 슈트 팬츠, 울 캐시미어 혼방 발마칸 코트를 매치하는 착장을 이번 가을·겨울 시즌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링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개별 브랜드뿐만 아니라 패션 플랫폼에서도 남성복의 트렌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W컨셉이 최근 2주간(8월 14~27일) 올드머니룩 관련 아이템의 구매 수치를 살펴본 결과 데님 등 셔츠류, 니트 베스트, 재킷, 스카프·머플러, 로퍼 등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세부적으로는 셔츠 10%, 베스트 14%, 로퍼 60%, 스카프·머플러 60%, 벨트 54% 늘었다.

W컨셉 입점 브랜드 중에서는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이는 르917 옴므, 던스트 포 맨, 조셉트(로퍼) 등이 인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처서를 기점으로 가을이 찾아오면서 남성복에도 올드머니 바람이 불고 있다”며 “셔츠와 니트 등 심플한 이너에 재킷이나 스카프·로퍼 등을 같이 매치해 깔끔하면서도 멋스러운 스타일링을 찾으려는 남성 고객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