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극단적인 날씨가 기승을 부렸던 한 해였다. 벚꽃이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일찍 개화했는가 하면 여름 내내 상상하지 못했던 불볕더위가 지속됐다. 그렇다고 겨울이 따뜻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간 우리가 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에너지를 아끼고 분리 배출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절실하다. 그 걸음을 성실히 내디딜 수 있게 해 주는 공간이 있다. 바로 제로 웨이스트 숍이다. 그중 망원동에서 처음 시작된 알맹상점은 동네 주민들은 물론 환경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입소문이 퍼졌고 재작년에 2호점을 오픈했다. 도시의 에너지가 모이는 도심 한복판 서울역에 말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상점 서울역 리스테이션 [MZ공간트렌드]
옥상 정원에서 만나요
캐리어를 끌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 대형마트에 쇼핑하러 가는 외국인들을 지나 서울역 4층에 가면 새로운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바로 서울역 옥상 정원이다. 하늘이 뻥 뚫린 옥상에 조성된 잔디와 정원은 분주했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이곳에 유일하게 자리하고 있는 가게가 있으니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이다. 초록빛 식물로 가득 덮인 건물은 한눈에 봐도 “친환경적이다!”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곳을 가리키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 숍답게 간판은 버려진 병뚜껑을 가득 채워 알록달록한 색을 완성했다.

알맹상점은 과대 포장으로 인해 발생되는 불필요한 쓰레기는 줄이고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알맹이’만 골라 사용하자는 의미의 알맹상점이다. 망원동 알맹상점과 달리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은 카페도 겸하고 있다. 동물성 성분이 없는 비건 카페로, 음료는 자체 컵이 제공된다. 개인 텀블러를 지참하면 모든 음료를 1000원 할인해 준다. 매장 내 다회용 컵을 이용할 때는 보증금 2000원이 추가 결제되고 컵을 반납할 때 해당 금액을 돌려준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상점 서울역 리스테이션 [MZ공간트렌드]
가게에 들어서면 알맹상점에서 하고 있는 자원 순환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문을 볼 수 있다. 씻고 말린 우유팩은 화장지로, 말린 원두 가루는 커피 화분이나 커피 연필로 재활용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특히 재활용이 어렵기로 유명한 폴리프로필렌(PP)·폴리에틸렌(PE) 재질의 작은 플라스틱 병뚜껑은 플라스틱 치약 짜개 등으로 재탄생된다. 이 밖에 알맹상점 내 안내된 다양한 재활용품들을 가져오면 쓰레기 쿠폰에 도장을 찍어 준다. 다 모으면 소정의 선물을 준다고 하니 환경을 잘 지킨 소비자들을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공간이다. 아니, 집에서부터 자원 순환이 가능한 물품들을 한가득 챙겨 오는 소비자들은 아마 스스로가 기특해 자존감이 절로 올라갈 것이다.

알맹상점은 한국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깨끗한 공병을 가져와 필요한 액체류를 담아 가는 것이다.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파는 진정한 알맹상점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리필은 샴푸·린스·보디워시·핸드워시 등 액체류는 물론 과탄산소다·구연산·베이킹소다 등 가루류도 리필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 유리 조각으로 마든 액세서리, 플라스틱 조각을 녹여 만든 고리 등 자원 순환의 결과물부터 포장되지 않은 비누,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등도 만날 수 있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상점 서울역 리스테이션 [MZ공간트렌드]
“껍데기는 가라!” 알맹상점 서울역 리스테이션 [MZ공간트렌드]
이곳은 탄소를 줄이는 제품인지, 재사용 가능한지 등의 절차를 통해 물건을 입점한다. 환경 친화적 제품이라고 판단하면 해외 제품도 제품에 대해 설명해 놓은 명찰 하나하나가 그 꼼꼼함을 증명해 주는 듯 보인다. 특히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아기자기한 디자인 소품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환경 위기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들이 99%의 확률로 이야기하는데 남은 우리 인생에서 올해가 가장 시원할 것이다.” 이것이 제로 웨이스트 숍이 단순히 하나의 지나가는 문화가 아니라 필수 상점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껍데기는 가라’고 신동엽 시인의 시를 당당하게 외치는 알맹상점의 문구가 유독 절실해진다.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