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문어발 경영 vs 마적단 경영…오해와 진실[박찬희의 경영 전략]
여러 개의 사업부를 함께 경영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고 어떤 경영 체제가 필요할까. ‘전사적 경영(corporate strategy)’의 과제다. 보통 ‘다각화’, ‘시너지’ 정도의 주제로 다루지만 사실 대기업 집단의 경영이나 인수·합병(M&A), 구조 조정과 같은 최고경영자(CEO) 고유의 과제에서 핵심적 논점이다. 경영자의 시각과 투자자의 시각이 첨예하고 맞서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사업(multi-business) 체제가 의미가 있으려면 사업들 사이의 시너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추가적 가치 창출이 없다면 투자자가 각각의 주식에 투자하면 된다.

그런데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더라도 경영자가 무능하면 사업들 사이의 혼선만 벌어지고 엉망이 된다. 여러 사업들을 통합하는 관리 체제가 잘못돼도 마찬가지다.

‘문어발 경영’이란 말이 있다. 대기업 중심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몇몇 회사들이 여러 사업들을 다 집어삼킨다는 표현인데, 국가가 몰아 준 돈으로 그들의 세상을 만든다는 시선도 담겨 있다.

그런데 떳떳이 사업해 벌거나 투자받은 돈으로 여러 사업을 해 잘돼도 무작정 나쁜 문어발일까. 사업들을 쪼개 매각하면 ‘먹튀’라고 하고 구조 조정과 주가 띄우기가 더해지면 약탈하고 떠나는 ‘마적단(馬賊團) 경영’이라고 한다. 하지만 맡은 사업을 평생 책임지고 불법적 행위가 없어도 지탄 받아야 할까. 외국계가 아닌 ‘국적 자본’이라면 먹튀가 아닐까.

국민이 밀어 준 돈으로 대대손손 떵떵거리는 재벌이 밉다고 다각화된 경영이 무조건 죄악은 아니다. 자본 시장이 선호하는 독립적 사업부들로 나눠 기업 가치 올리는 데 초점을 둔다고 마적단의 먹튀는 아니다. 막연한 생각들이 엉켜 버린 오해를 넘어 전략의 핵심을 찾아보자.
통합 조정 기구와 시너지여러 사업부들을 통합 조정하는 기구를 둬 구체적 사업 활동에 개입하는 방식이 있다. 한국엔 익숙한 비서실·기획조정실·구조조정본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본사 부문은 여러 사업부에 경영권을 행사하는 ‘회장님’을 받들어 사업 전략 수립, 사업부들 사이의 조정과 자원 배분을 통해 사업들 사이의 시너지를 창출한다. 사업부 책임자에 대한 인사와 보상도 이들의 손을 거치고 각각의 사업부의 전략과 운영에도 인사·감사·재무 측면의 통제가 이뤄진다.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에서도 보듯이 성장 전략의 틀에서 키울 사업과 정리할 사업을 정하고 자원을 재배분하는 역할은 필요하다. 다만 주주 구성이 다른 독립적 사업들에 ‘회장님’ 명을 내세워 마구 개입하니 문제가 됐는데 ‘나쁜 재벌 체제’의 권력 기구로 보이니 더 밉상이 된다.

하지만 가진 만큼 지배하는 주식회사 체제의 틀에서도 얼마든지 통합과 조정은 가능하다. 이사회 등 지배 기구를 통하는 방법도 있고 통제가 아닌 ‘협력과 조언’의 방식도 있다.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제이피모건의 투자와 사업 통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삼성웨이(Samsung Way)’로 불리는 삼성의 그룹 경영은 이런 본사 부문 조정 통제의 대표적 사례다. 삼성은 ‘문어발 경영’이라는(속으로는 재벌 소유 체제를 포함한) 비판에 대응해 각 사업부들이 경쟁과 협력 체제라고 강조하면서 내부 자원 동원과 사업 위험 분산을 위해 효과적인 체제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는’ 개도국 특유의 환경에서 직접 없던 사업을 만들어 간 결과 다각화된 체제가 됐다고 설명한다.

기업 재무 분야의 시선은 싸늘하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개도국 환경 얘기는 어색해지고 단일 기업에 중역이 1000명이 넘고 회장님이 100명이 넘는 부사장급도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비대한 구조는 ‘제국 만들기(empire building)’라고 본다.

사업들을 분할해 독립시켜도 경영권에는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사업 구석구석에 달라붙은 이권 구조를 끊기 어렵고 그럴수록 방대하고 복잡한 체제를 위해 필요한 관리자 집단의 권력이 커지기 때문이라는 까칠한 시선도 있다.

다양한 사업들을 안고 있는 구조는 자본 시장에서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한 분야의 호재가 희석되기 때문인데, 이를 감안해도 ‘삼성웨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다. 반도체 등 각각의 사업들을 나눠 경쟁 업체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모펀드식 경영과 기업 가치사모펀드가 여러 사업들을 관리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투자자와 자금 대여자에게 일정 기간 내 주가 목표와 이자 보상을 약속하고 돈을 그러모았기 때문에 오로지 기업 가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 사업 활동에 개입하기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성과 보상을 한다.

차입형 인수·합병(LBO)은 회사를 담보로 부채를 일으켰으므로 금융 부담이 있는 데다 자본 시장은 구조 조정을 통해 사업을 정리하고 현금을 확보하는 것을 선호하므로 펀드의 목표 기간 내에 이를 맞춰야 한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도 중요하지만 시장은 과감한 사업 개편을 위해 기존의 이해관계를 정리하는 데 외부 전문가를 더 선호한다.

대대손손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가치를 높여 비싸게 팔아 돈을 만들어야 하니 먼 훗날을 책임질 인재를 키우며 기회를 주고 미래 사업 기회를 위해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술 개발에 돈을 쓸 여유는 없다.

덧없는 충성 게임과 사내 정치보다 기업 가치라는 본연의 성과로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시장 흐름에 맞추려고 알짜 사업을 뜯어 팔고 주가 목표를 맞추려고 증시 작전에 나서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펀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미국에서도 한국의 재벌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거세다. 소수의 탐욕을 위해 근로 대중이 버려진다는 비판은 물론 단기적 주가 목표에 꽂힌 경영이 미국 경제의 뿌리를 망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기업 재무의 관점에서 기업 가치는 본연의 목표이고 미래의 가능성도 평가된 결과다. 기업 가치만 높인다면 삼성식의 계열사 통합 조정보다 좋은 체제로 규정된다.세상이 가치를 인정해야삼성식 그룹 경영과 사모펀드식 경영은 다사업 체제의 양극단에 해당한다. 현실의 기업들은 이 사이에서 적절한 조합을 택하는데 지주회사 체제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식의 통합 조정이 시장의 까칠한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장이 알아 주지 않는 미래 가치가 있다면 억울하겠지만 제대로 알리고 설득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기업 가치보다 대주주 일가와 관리자 집단의 이득을 생각한다는 까칠한 시선에 답하지 못하면 시장의 돈을 끌어 쓸 수 없다. “삼성이 하는 일이니 다 일리가 있다”고 무엇을 해도 끄덕여 주는 아둔한 투자자는 없다.

사모펀드식 경영이 만고불변의 대안일 수도 없다. 시장이 모르는 곳에 진정한 기회가 있고 경영자는 이를 찾아 사업으로 만든다. 자본 시장의 눈높이와 돈벌이 관행에 휘둘리는 수준이라면 일반 투자자와 다를 것이 없다. 자본 시장의 허점이 대중의 분노와 만나면 시장의 규칙이 바뀐다. 세상을 제대로 읽어야 이 변화를 따라잡고 나아가 활용할 수 있다.

까칠한 시선에는 이유가 있다. 석유회사가 가진 유전들의 가치만 합해도 시가 총액의 2배가 넘는 사례가 있었고 회사를 이권 탈취의 도구로만 여긴 못된 경영진도 많다. 기업 가치를 내걸고 알짜 자산을 뜯어 팔고 회사를 증시 작전의 수단으로 삼은 사례들도 무수히 많다. 이런 한심한 짓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밝히고 설득하는 것이 전사적 전략의 과제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