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지배당할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서평]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폴 굿윈 지음│신솔잎 역│한국경제신문│1만8800원
우리는 통계가 발전하면서 수많은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지지율 그래프, ‘N% 상승’으로 간단하게 말하는 경제성장률…. 전문가들이 매체에 나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 떠드는 것보다 숫자 한두 개로 매끄럽게 표현된 것이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숫자들은 믿을 만한 것일까. 숫자를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도 괜찮은 것일까.
예를 들어 우리가 쉽게 접하는 지표인 GDP, IQ, BMI는 각각 ‘국내총생산’, ‘지능지수’, ‘체질량지수’를 말한다. 이 지표들의 공통점은 ‘국가의 경제적 성장’, ‘지능의 수치화’, ‘신체의 건강’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하나의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GDP가 높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IQ는 특정 영역의 단편적인 수치만을 반영한다. 심지어 BMI는 의료계는 물론 일반인들조차 의문을 제기하는 지수다.

뉴스에서 ‘GDP 3% 성장’이라는 카피를 봐도 자신의 월급이 오르지 않았다면 경제 성장은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IQ 160’인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할 때면 지능 지수가 과연 어떤 것을 대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언가에 숫자로 꼬리표를 붙이는 일은 쉽고 편하지만 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배스대 경영대학원에서 비즈니스 예측과 의사 결정 분석을 가르치는 통계학자 폴 굿윈은 그의 저서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에서 숫자와 통계가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고 숫자를 향한 분별없는 믿음과 수용이 어떻게 우리를 나쁜 결정으로 이끄는지 밝힌다.

우리는 한 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하고 나면 이에 반대되는 정보에 저항감이 쉽게 생긴다.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해주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누르고 잔소리처럼 들리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에 채널을 돌려 버리곤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일어나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숫자는 현실의 단편적인 일부만을 나타낸다. 숫자의 단순함을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숫자의 한계를 인식하고 주어진 정보를 효율적으로 파악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숫자를 측정해 결과를 얻는 순간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숫자와 통계가 보여주지 않는 부분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별생각 없이 눈으로 훑던 수많은 숫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통계적 사고’를 길러 준다. 작가는 많은 수식 없이 숫자와 통계를 재미있게 설명한다. 통계적 개념이 등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적절하고 친숙한 소재들을 예시로 드는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숫자에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이 있는 독자에게도 쉽게 다가간다.

통계적 사고라는 무기를 활용해 한결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더 이상 숫자에 지배당하지 않고 숫자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당신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가 이제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정현석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