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갤러리·스튜디오·편집숍…복합 문화 공간 무목적

통창으로 보이는 인왕산과 누하동 뷰 / 무목적 제공
통창으로 보이는 인왕산과 누하동 뷰 / 무목적 제공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입구로 나와 필운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골목골목 작은 가게가 즐비한 동네에 닿는다. 서울의 역사가 깃든 서촌마을이다. 뭐든 빨리 뜨고 요즘 보기 드물게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 냄새 나는 동네다.

서촌은 행정구역상 서울시 누하동·통인동·옥인동·체부동을 아우른다. 그중 서촌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은 바로 누하동이다. 인왕산 자락에 조용히 몸을 웅크린 마을은 수수하고 꾸밈없다. 세월이 묻은 한옥과 빌라, 아기자기한 상점이 못내 정겹다. 이 오래된 동네 중심에 2018년 새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올해로 다섯 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양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무목적 외관 / 무목적 제공
무목적 외관 / 무목적 제공
‘무(無)’라는 무한 영역에 목적을 둔 공간, ‘무목적(無目的)’건물의 이름은 무목적. 목적을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른다는 뜻을 담았다. 지역성이 강한 곳에 4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건축주에게도 큰 모험이었다. 변화가 드물고 고집스러울 만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동네에서 억지로 콘셉트를 내세우다 보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건축주이자 공간 기획을 책임진 권택준 무목적 대표는 건축물이 조용히 스며들기를, 목적 없이 배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지트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랐다. 치열하게 앞서 나갈 필요 없고 도도하게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서촌과 닮은 그런 공간으로….

외관은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출 콘크리트다. 하지만 일반 노출 콘크리트 마감과 달리 콘크리트를 두껍게 바르고 의도적으로 스크래치를 내 거친 느낌을 더했다. 신축 건물임에도 이질감 없이 서촌과 어우러질 수 있는 이유다. 건물의 형태도 흥미롭다. 밖에서 보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대가 다른 2개 동을 이어 냈다. 마치 미로 같기도, 서촌 골목길 같기도 한 내부에 들어서면 머무르는 장소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계단을 오르고 가로막은 벽을 지나면 비밀의 정원으로 통할 것만 같은 샛문이 나타나곤 한다. 이름처럼 목적 없이 찾아도 물 흐르듯 떠돌게 되는 곳이다.
미로처럼 설계된 무목적 내부 / 무목적 제공
미로처럼 설계된 무목적 내부 / 무목적 제공
거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 무목적 제공
거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 무목적 제공
상업 빌딩이지만 공공성으로 높이 평가받아 37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권 대표는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던 건물 1층에 샛길을 만들어 단절된 두 도로를 연결했다. 한 블록을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 없이 건물 밑 지름길을 통해 필운대로와 뒷골목을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샛길뿐만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열린 공간으로 존재한다. 주차장 터에 설치된 공용 벤치에서 잠시 쉬어 가거나 상시 개방된 옥상에 올라 아름다운 인왕산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
무목적 3층은 컨템퍼러리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 무목적 제공
무목적 3층은 컨템퍼러리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 무목적 제공
건물 1·2층에는 편집숍·서점·스튜디오, 3층은 갤러리 ‘무목적’, 4층에는 카페 ‘대충유원지’와 루프톱이 들어서 있다. 1층에서 소품을 구경하고 3층에서 전시를 본 뒤 4층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하루가 이곳에선 가능하다.

권 대표가 가장 공들인 공간이자 무목적의 정체성을 담은 공간은 갤러리다. 전통 전시장이 아닌 컨템퍼러리 전시 공간으로, 다양한 작가의 전시가 비정기적으로 펼쳐진다. 마치 건물의 외관처럼 공간의 정서에 스크래치를 낼 수 있는 파격적이면서도 낯선 작품들이 갤러리를 가득 채운다. 권 대표는 “무목적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담기길 바랐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카페 대충유원지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다. 상대방의 말소리보다 공간 가득 흐르는 재즈 음악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곳이다. 바 형태의 테이블에 앉으면 통창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누하동 한옥과 그림 같은 바위산 뷰가 펼쳐진다. 커피 한잔, 혹은 위스키 한잔을 곁들이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기 좋다.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