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정부는 2021년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신고제를 도입하고 자금 세탁 방지 의무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자금 세탁 방지에 집중한 특금법 개정만으로는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지난해 5월 막대한 규모의 피해를 초래한 테라·루나(Terra·Luna) 폭락 사태로 인해 가상자산의, 가상자산에 의한, 가상자산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7월 발표한 120대 국정 과제에 ‘35. 디지털 자산 인프라 및 규율 체계 구축(금융위)’을 포함하며 ‘디지털자산기본법(현재의 가상자산법)’을 제정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즉, 기존의 자본시장법에서는 대응할 수 없었던 가상자산 산업 고유의 영역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신규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의도였다.
해당 법안은 한국에서 선제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우선 마련하고 이후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단계적 규율 방침에 여야 간 합의했고 지난 6월 30일 가상자산법 1단계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그 첫 발을 내디뎠다.투자자 보호에 집중한 가상자산법 1단계투자자 보호 및 가상자산 산업 질서 확립에 집중한 해당 법안은 크게 가상자산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 금융 당국의 감독·제재 권한 강화를 담고 있다.
고객의 가상자산을 운용하는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예치금과 고유 재산을 분리해 신탁할 의무, 대통령령이 정하는 비율 이상의 가상자산을 인터넷과 분리해 콜드 월렛(Cold Wallet)에 보관할 의무, 가상자산 거래 기록을 15년간 보존할 의무 등을 부과함으로써 테라 사태와 같이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를 방지하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세 조종, 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부당 이득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이후 하위 규정 마련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법무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실무자 쪽에서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상자산법 1단계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미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9월 8일 개최된 ‘2023년 제3회 대검찰청 형사법 아카데미’에서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가상자산법 제7조 2항에 따라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한국에서 서비스가 불가하다”고 밝혔다.
가상자산법 제7조 2항은 ‘가상자산 사업자는 자기의 가상자산과 이용자의 가상자산을 분리해 보관해야 하며 이용자로부터 위탁받은 가상자산과 동일한 종류와 수량의 가상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의 이와 같은 결정에는 지난 6월 한국 가상자산운용사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에서 연쇄적으로 입출금 정지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고 헤이비트의 서비스 종료 역시 해당 법안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발행과 유통에 집중한 가상자산법 2단계가상자산법 1단계가 투자자 보호와 건전하고 투명한 거래 질서 확립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는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 등 산업 전반에 주목한다. 금융위원회는 8월 2일 ‘가상자산 관련 국회 부대 의견에 따른 규제 사항 검토 연구 용역’을 모집하며 1단계가 시행되는 내년 7월까지 입법 의견을 보고할 예정이다.
금융위에서 공개한 가상자산법 2단계의 검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상기한 사항들 중 특히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특별 규제 필요성은 지난해 12월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에서 발표한 ‘암호자산 규제 관련 주요 이슈 및 입법 방향’에서 다뤄져 왔고 이미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된 규제가 시행됐거나 가결된 상태다.
가상자산 법안을 제정하는 데 국제적인 흐름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 금융위의 행보를 고려할 때 가상자산법 2단계를 통해 한국에도 스테이블 코인 특별 규제가 확립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규제와 발전, 균형이 핵심 포인트한국의 가상자산 산업 규제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가는 현재 규제와 발전의 조화로운 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핵심으로 보인다. 투자자 보호와 가상자산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적절한 규제는 산업에 신뢰와 효율성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지나친 규제는 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발전 속도가 빠른 신기술 산업은 초기 시장 형성에 규제가 가지는 영향력이 더욱 막대하다.
실제로 가상자산 규제의 선두 주자인 일본은 초기 대규모 거래소의 연쇄 해킹 사태로 인해 엄격한 규제를 정비했지만 현재는 해외 자본 유출과 산업 발전 부진 등의 이유로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추세다. 다가올 가상자산법이 한국의 가상자산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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